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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Jul 26. 2021

무엇이 공부하게 만드는가

끝까지 점프하는 바퀴벌레가 될 테야

써놓고 보니 너무 거창한 제목이라 0.3초 정도 고쳐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이 제목 말고 딱히 다른 대안도 생각나지 않으니 그냥 두기로 한다. 제목 그대로 이 글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하게 만드는가에 관한 글이므로.


"학창 시절에 국어 성적 몇 점 받았는지 기억나세요?"


워딩이 정확히 저게 맞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은영 박사님이 저런 비슷한 질문을 패널들에게 하시는 걸 채널을 돌리다 본 적이 있다. 질문을 들은 모두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오은영 박사님의 대답이 핵심이었다. 그렇지만 밤을 새우며 힘들게 공부한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라고. 아이들은 그 기억으로 공부한다고.


바다 건너 타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나로서는 대한민국 인구의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기간 동안 공부를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었다. 처음엔 사실 한 학기 정도 하다 말겠지 생각하며 가볍게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막상 하다 보니 아이들도 너무 귀엽고 학교 측에서도 생각보다 좋게 평가해주셔서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훨씬 다양한 과목들을 강의할 수 있었다. 티칭 경력이 많다는 건 TA 자리를 따내기에도 유리한 조건이기에 유학을 와서야 그 경험의 소중함을 실감했던 나다. 아마 유학을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학교에서 계속 강의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한다면 매 학기마다 아이들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이름도 익히고 정이 들 때쯤이면 학기가 끝나고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해야 한다. 말 안 듣고 공부 열심히 안 하는 애들을 만났을 때는 종강이 반갑지만 성실하고 착한 애들을 만났을 때에는 종강이 다가오는 게 아쉬울 정도다. 요즘 아이들 무섭다고들 하지만 사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대개 후자에 속했다. 아직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 때가 타지 않은 그 나이 또래의 순수함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엄마미소를 띠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출국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를 했던 날 아이들이 건네주었던 편지들은 지금도 내 책장 한 구석에 꽂혀 있다. 타국에서의 공부가 힘들어질 때면 그 편지를 꺼내 읽곤 한다.


사실 영어라는 게,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아닌 대학교에서, 그것도 고작 한 학기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길 바란다면 욕심이다. 이미 스무 살을 넘긴 이 '청년'들은 언어 학습에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critical period, 즉 만으로 13세를 훌쩍 뛰어넘은 나이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열심히 해도 4-5개월 남짓 되는 단기간 동안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실력을 올리기 힘들다. 게다가 대학교에서 수강신청을 통해 구성된 학급은 중고교에서처럼 실력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개 실력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아이들마다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 영어 관련 수업은 이미 영어를 꽤 잘하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과목이다. 대학교 때 일본어 수업을 들었던 난 이미 그런 경험을 뼈저리게 한 적이 있었다. 중급 일본어 회화라고 해서 신청했는데 첫 수업에 들어가 보니 이건 뭐 고등학교 3년 동안 일본어 공부하면서 꽤 잘한다 소리 들었던 나였음에도 나를 제외한 수강생 대부분이 일본에서 5년 7년 10년 넘게 살다 와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학생들 뿐이었다. 결국 열심히 했음에도 C가 나왔던 내 최종 성적표....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서 정했던  가지 규칙이 있었다. 시험문제는 무조건 교과서에만 출제한다는 . 기본기가 없는 학생들에게 교과서 밖의 문제는 무조건 버려야 하는 문제이기에.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교과서만 열심히 풀어도 어느 정도 점수가 보장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기본기가 부족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수업에 임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교과서를 씹어 먹을 듯이 달달 읽어야만   있는 문제들을   섞어 두면, 만점자가 속출해 평균이 무의미해지는 참사를 막을  있었다.


두 번째는 출결 점수와 과제 점수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었다. 실력만 믿고 매일 지각을 한다거나 수업을 빼먹는 아이들은 교사 입장에선 얄밉기 그지없다. 과제는 늘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오답노트를 만들어오는 것으로 했다. 많이 틀린 애들의 경우 거의 절반을 다시 풀어와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문제와 보기, 정답, 해석까지 다 손으로 직접 써야 했기에 몇 시간 투자해서는 어림도 없는 양이었지만, 아무리 많이 틀려도 오답노트만 열심히 작성해 온다면 과제 부문에서는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아이들에게는 필요했다. 더불어 오답노트를 채점하면서 아이들이 뭘 지속적으로 틀리는지 파악이 되니 기말고사 출제를 할 때도 그 부분을 반영하기 좋았다.


5년여 강의를 하면서 별의별 일들이 다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가장 남는 학생을 하나 꼽으라면 떠오르는 아이가 한 명 있다. 바로 앞서 오은영 박사님의 질문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 학생이다. 아이는 첫 수업을 마치고 교탁으로 와서 내게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다. "교수님, 저는 영어를 진짜 너무 못해서 그러니 수업시간에 제게 질문을 안 해주시면 안 될까요?"


기억력이 좋은 나는 개강 후 한 달 정도만 지나면 아이들 이름을 곧잘 외워 수업시간에 호명하고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첫 시간부터 질문을 했더니 아이는 내심 오답을 말할 자신이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알겠다 대답하고 이후에는 절대 질문하지 않았는데(이름을 기억해야 피해 갈 수 있었으므로 그 학생의 이름을 그 학기에 가장 먼저 외웠다), 약속대로 해주는 게 고마웠던지 아이는 이후 정말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에 임했다.


열심히 하는 만큼 점수가 나오면 참 좋을 텐데, 슬프게도 아이는 기본기가 많이 부족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다음 시간이면 곧잘 잊어버리고 엉뚱한 소리를 하곤 했다. 중간고사 바로 전 시간에 시험 범위에 대한 요약을 해주면서 '책만 열심히 읽으라'라고 몇 번을 강조했지만 나는 그 애가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면서도 나 스스로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 나는 중간고사 시험지를 채점하다가 눈을 의심했다. 분명 그 학생의 이름인데 꽤 나쁘지 않은 (내 기대치보다 훨씬 높은) 점수가 나온 것이다. 중간고사를 마치면 늘 모든 학생들과 1대 1 면담을 가졌기 때문에 그 아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어떻게 공부했는지 물어봤는데 아이 대답이 장관이었다.


"교수님이 교과서만 열심히 보면 된다고 하시길래, 그냥 무식하게 문제랑 정답을 외워야겠다 생각했어요. 한 번 읽었는데 안 외워져서 또 읽고, 또 읽고, 그러다 보니 여섯 번을 읽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외워지지 않아서 일곱 번째 읽고 있는데 어, 어느 순간 이해가 되는 거예요!"


내용을 이해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기대도 없었던 아이는 그냥 무조건 달달 외워서 가자는 일념 하나로 일곱 번을 읽었는데, 어느 순간 그 정답들 사이에서 공통점이 보이고 규칙이 보이더니 문법이 이해가 되더란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 우스갯소리로 내 지도교수님이 유학 시절 그 유명한 Noam Chomsky 논문을 19번 읽었더니 이해가 되더라 하신 이야기를 애들에게 해줬었는데, 아이는 그걸 기억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똑같은 책을 19번까지는 아니더라도 7번이나 읽은 적이 있을까? 나는 가장 많이 읽어본 게 4번이었던 것 같다(그 일본어 시간!). 아무리 재밌는 만화책이나 영화도 두 번 이상 본 적은 없다(아, 어바웃 타임과 노팅힐은 5번 정도 보았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그건 재미있기나 하지, 이 재미 없는 걸 7번 시도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나를 감동시켰던 건 사실 그다음에 이어진 이야기였다.


"저는 지금껏 제가 영어를 잘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곱 번째 읽고 있는데 내용이 이해가 되는데, 와 나도 이해를 할 수 있구나, 어쩌면 나도 영어를 잘할 수 있을 지도 몰라,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몰랐던 건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살면서 내가 했던 강의 경험 중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이 순간을 꼽을 거다. 바퀴벌레는 어마어마한 높이를 점프할 수 있는데 투명한 유리병 안에 바퀴벌레를 가둬두고 그 안에서 한참 점프를 하게 두면 보이지 않는 천장에 등을 부딪히며 한계를 깨달은 바퀴벌레가, 이후 유리병을 치워도 계속 그 높이까지만 점프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스카이, 인 서울이 가장 중요한 요즘 고교 입시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는 학창 시절의 공부는 그 유리천장이 사실은 내가 만든 허구의 것이란 걸 깨닫게 해주는 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노력의 최대치를 알게 해주는 것도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 생각한다. 나는 여기까지가 최대치, 라는 생각은 은연중에 우리의 행동과 태도를 제한한다. 사실은 더 버틸 수 있는데 거기까지 갈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레 발을 빼게 만든다.


어차피 공부가 아니더라도 죽을 때까지 우리는 '노력'이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건 공부일 수도 있고 연애일 수도 있고 부동산 투자일 수도 있다. 아이돌 연습생이라면 노래 연습 안무연습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애초에 10 정도가 최대치라 생각했는데 11을 했는데 되더라, 13도 되더라, 15를 했는데 되더라, 그리고 그 이후 실력이 늘더라.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의 기억이 (적어도 내게는) 공부를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나도 (사실은 가장 최근까지도) 자주 내 한계를 규정하곤 했다. 난 외국인이니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까,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거나 살아본 경험이 없으니까,라고 자위하며 내 한계를 규정했다. 잘할 거 같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논문을 읽다가 하나도 이해되지 않을 때, 페이퍼를 쓰다가 와 이건 진짜 엉망진창인걸,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그 여학생을 생각한다. "어? 나도 영어 잘할 수 있네? 생각했어요!" 세상 행복해하며 뿌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 눈빛을 떠올린다. 그 학기 그 아이의 최종 성적은 B+이었다. A에 비하면 당연히 부족한 점수였지만 애당초 내가 예상했던 그녀의 점수를 웃돌고도 남는 것이었다. 지금 그 아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 20대 후반이 되었을 텐데, 그 순간의 감격을 잊지 않고 뭘 하든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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