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여섯 개의 피드백을 손에 들고
박사 과정 3분의 1을 지난 이 시점에야 나는 중대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내가 비판에 어마 무시하게 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매 학기마다 대부분의 수업에서는 기말 과제로 페이퍼를 쓰고 마지막 수업 시간에 교수님을 비롯 수강생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 발표 후 피드백을 받고 그것을 기반으로 내 논지를 보강해나가는 것이 그다음 할 일인데, 열심히 발표를 하고 피드백을 받을 때만큼 긴장되는 순간이 또 없다.
비판에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드물 테지만, 그리고 또 연구에 대한 비판이 나라는 사람에 대한 비판도 아닌데, 그런데도 신랄한 코멘트는 때로 나로 하여금 주눅이 들게 한다. 이건 어쩌면 완벽주의자인 내 성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늘 100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120을 해냈고 그 20에 대해 칭찬을 들을 때 뿌듯함을 느끼는 나이기에, 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후에는 100은커녕 80도 해내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사실 속상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내 나라 말도 아닌 타국 언어로 수업을 듣고, 그 수업이 어디 유치원생이 듣는 쉬운 내용도 아닌 걸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충분히 내 할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데, 내 괴로움의 근원은 너무 큰 욕심과 완벽주의 성향에서 비롯되는 걸까?
내가 무슨 어디 노엄 촘스키 급의 학자가 아닌 이상(아니 심지어 촘스키도 비판을 받는다) 내 연구의 약점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이 분야에 몸 담는 이상 늘 들어야 하는 소리일 텐데, 왜 나는 이렇게도 몸을 사리고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직 연구자로서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이겠지? 이게 내 길이 맞는지, 나는 정말 학자가 될 사람이 맞는 건지 날마다 고민하고 지금 선 이 자리가 맞는지 끊임없이 돌아보며 자문하는 나이기에,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비판을 받을 때마다 흔들리는 것일 테다.
꽤 오래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본 텔레비전에서 프로파일러로 유명해진 표창원 씨가 경찰대학에 재학 중이던 시절에 자신은 이곳에 정말 안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고백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누가 봐도 그분은 그 직업에 딱 맞는 분이었는데 말이다. 이영표 선수도 토트넘에서 뛰던 시절 매일 아침 훈련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버스가 굴러 떨어져서 훈련장에 안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 저렇게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는데 하물며 나 같은 중생이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지사 인지도.
어렸을 땐 스무 살이 넘으면 의젓한 어른이 되고, 서른이 넘으면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나는 지금도 인생이 뭔지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근로자처럼, 매일 아침 만나를 받아 그날 먹을 양식만 믿고 광야를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저 오늘만 보며 살 수밖에 없다.
소논문을 언제까지 끝내야 하고 박사논문을 언제쯤 시작해야 하며 그 후에는 또 어떻게 커리어를 채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그러니 그만하련다. 물론 아무 계획 없이 살아도 안 되겠지만 너무 많은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지금의 나는 너무 하찮으니깐... 오늘 하루를 잘 살면 그게 쌓여서 평생이 될 거라 믿는다. 자 그러니 이제 하나 남은 기말 페이퍼를 마무리하러 가볼까? 라떼 한 잔을 들이켜고, 수북하게 쌓인 열여섯 개의 피드백을 하나씩 찬찬히 읽으며 수정 작업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