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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Feb 13. 2022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시간

학부생 강의는 내 삶의 활력소

대면 강의가 시작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개강 직후 첫 3주는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다가 4주 차부터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기 시작했는데 지난 학기부터 학부생 강의를 맡기 시작한 나로서는 두 번째이긴 하지만 여전히 긴장되는 외국어 강의인 데다가 대면은 생전 처음인지라 첫날 무려 강의 시작 40분 전부터 교실에 가서 이것저것 확인하고 강의를 준비했다.


노력한 게 아깝지 않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무탈히 순항 중인 듯하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잘 웃고 곧잘 자기 생각을 말하고 질문도 잘한다. 이 얘기를 학과 동료에게 했더니 '오, 걔네들 어린 언어학도(young linguists) 구나!'하고 말하길래 그걸 그대로 애들에게 전해주며 앞으로는 너희를 어린 언어학도들이라 부르겠다 했더니 아이들이 미소를 지었다.


강의는 매주 월수금 오전에 있다. 1교시 수업이라서 내 앞에 다른 수업이 없는데 덕분에 얼마든지 일찍 가서 강의를 준비할 수 있는 점이 좋다(물론 첫날 이후에는 시작 10분 전에 가고 있다). 그리고 일단 아침에 후딱 강의를 해치우고 나면 이후에는 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 학기에도 무조건 1교시 강의로 배정해달라고 학과에 요청할 생각이다.


대면 강의를 앞두고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학부생 대상 강의가 있는 월수금이 유독 나는 텐션이 높고 기분이 좋아 곰곰 생각해보니 이게 내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영어로 강의를 해야 하고 간혹 애들이 나도 잘 모르는 질문을 할 때면 식은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줌으로 온라인 강의를 할 때는 랩탑 한편에 대본을 펼쳐놓고 읽어도 되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이제는 정말 대본 외우듯 애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생방송으로 강의를 해야 하다 보니 조금 부담은 되지만 그래도 그것도 두 번째 학기라고 나름 입에 좀 붙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들과 실시간으로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내게는 아주 즐거운 일이다.


학과 내 나와 같이 학부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강의를 말 그대로 즐기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신기한 일이다. 어차피 나중에 교수가 되면 연구와 강의를 둘 다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연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많은데 강의를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적어도 내 주변에는). 특히나 온라인으로 강의하던 지난 학기에 비해 대면 강의는 물리적으로도 교실로 오가는 시간, 애들과 직접 만나서 수업해야 하는 시간 등 소요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더 들다 보니 그걸 불평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내게 있어 강의할 때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단연 애들 에세이 채점할 때다. 가만 보면 나는 좀 평균치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쏟는 것 같긴 하다. 며칠 전에는 애들이 제출한 첫 에세이를 채점했는데 한 사람당 400-500자 정도 쓴 에세이 10편을 채점하는데 5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총정원이 20명이니 아직 절반밖에 못한 셈이다. 중간 에세이와 기말 에세이는 무려 1,500자를 육박하는데 지난 학기의 경우에는 기말 에세이 채점하는데 정말 거의 일주일을 다 썼다. 내 에세이도 쓰고 내 연구도 해야 하니 틈날 때마다 채점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사실 대충 읽고 채점만 하면 금방 할 수 있을 텐데 내 성격상 또 대충 하는 것은 안되다 보니 엄청 공들여 읽고 피드백을 주렁주렁 달아준다. 애들은 당연히 좋아한다. 뭐든 교사가 희생하면 아이들은 덕을 본다.


에세이 채점하느라 내 시간을 정말 많이 빼앗기긴 하지만 서두에 밝혔듯이 학부 강의는 요즘 내 삶의 활력소다. 강의가 있는 월수금에 유독 기분이 좋은 걸 보면 확실히 나는 강의가 맞는 타입인 것 같다. 아이들이 내 피드백에 기뻐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그렇게 보람찰 수가 없다. 나는 원체 리액션이 풍부한 사람인지라 친구들이 하는 말에도 곧잘 빵빵 터지고 반응을 잘해주는 편인데, 이게 고스란히 수업시간에도 적용되어 애들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에 격하게 반응해준다. 귀엽게도 그렇게 격하게 반응해주면 아이들은 신나서 더 열심히 한다. 칭찬을 더 듣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스물 혹은 스물하나 정도 되었을 텐데 생각해보면 한창 어린 나이다. 아니, 어쩌면 나이와 상관없이 칭찬 앞에서 한없이 어린아이 같아지는 건 인간의 공통된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고 싶어 하고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니까. 개강하고 한 번도 수업 시간 중에 입을 연 적이 없던 학생이 며칠 전에 한 마디 말한 것을 내가 크게 칭찬했더니, 그에 용기를 얻었는지 이후에는 매 수업시간마다 자신 있게 손을 들고 자기 의견을 이야기한다. 어제는 심지어 수업이 끝나고 내게 와서 오늘 수업의 어떤 내용이 재미있었고 인상적이었는지 감상도 읊고 갔다.


어제는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하는데 교수님이 어디서 들으셨는지 '너 학부 강의 아주 잘하고 있다고 익히 들었어'라고 말씀하셨다. 이전에 온라인 수업 때 참관하신 적은 있지만 대면 강의 이후에는 내 수업에 들어오신 적이 없는데 대체 어디서 들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수업에서 칭찬을 듣는 학부생들 기분을 알 수 있었다. 강의를 할 때 나는 비로소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것 같다. 여러모로 기분 좋은 한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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