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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Apr 25. 2022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산다

'친하지 않다'의 동의어는 '싫어하다'가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길을 걷다 발견한 무지개. 하와이에서는 무지개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


언젠가 휴대전화가 고장이 나면서 어쩔 수 없이 한동안 SNS를 쓸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엔 내가 미처 접속하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버릴 피드들을 놓치는 게 아쉬워 휴대전화 언제 고치나 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강제로 며칠 SNS를 끊다 보니 정신적으로 편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일하다 쉬는 시간이면, 혹은 잠들기 전까지 곧장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인스타그램 어플부터 찾던 내가, 쉬는 시간에 접속할 어플이 사라지고 나니 가만히 하늘을 보거나 아니면 재미없는 뉴스 몇 자 읽다가 관두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쉴 틈 없이 업데이트되는 온갖 피드들을 보는 것은 마치 도박처럼 재미있지만(실제로 창을 스크롤 다운해야 새 피드가 업데이트되는 것은 카지노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그만큼 쉬는 시간에도 우리 뇌로 하여금 쉬지 못하게 만든다. 끝없이 밀려드는 시청각 자극에 뇌는 계속해서 흥분한다. 며칠 동안 그런 자극이 없으니 당장은 재미는 없고 단조로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 후로는 SNS를 가급적 멀리하고 있다. 쓰더라도 내 일상 기록용으로 쓰느라 업로드만 할 뿐 남의 피드는 보지 않는다(너무 나르시시즘인가 ㅋㅋㅋ).


SNS가 피곤한 건 일단 첫 번째로 그게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만드는 것에 가장 기본 원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들 잘 먹고 잘 사는 순간을 포착해 편집하고 각색해서 올려둔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파자마에 똥머리 하고 라면에 김치 얹어 먹는 내 저녁은 너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나 인스타그램은 스토리라는 기능을 활용해 안 그래도 순간의 정보에 근거하는 인스타그램을 더 '찰나'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스토리는 단 24시간 동안에만 유효하고 이후에는 사라지기 때문에, 길어봤자 23시간 이내, 짧게는 불과 몇 분 전, 몇 초 전에 지인들이 찍어 올린 멋진 사진과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 사는 소식을 알게 되어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들까지 알게 되는 피곤함이 있다.


가령 친구 A가 분명 어제 나와 대화할 땐 이번 주 내내 바쁘다고 했는데 오늘 보니 점심에 B랑 브런치를 먹으러 다녀왔다는 걸 스토리를 보고 알게 된다든지, 주말에 어디 바닷가라도 가고 싶었지만 같이 가자고 급하게 물을 만한 사람이 없어 혼자서 책을 보며 뒹굴거렸는데 나중에 스토리를 보니 나 빼고 다들 모여서 좋은 곳에 가서 맛난 음식들을 먹은 회식 사진을 보게 된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알게 된다고 엄청난 피해나 충격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굳이 알게 되어 좋을 일도 없는 일들. 오히려 알게 돼서 괜히 속이 상한다거나 내 처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정보들. 우리는 너무 쓸데없는 정보의 홍수에 살고 있다.


SNS를 끊고 그 대신 하늘을 좀 더 자주 올려다보니 하루가 편안해짐을 느꼈다


서론이 길었는데 최근에 공부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이 몇 있어 거리를 두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싫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냥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고, 그래서 그들과 엮이면 자꾸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한 일이 생기다 보니, 당장 학업에 집중하기도 버거운 나에게는 이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편이 내 정신건강과 학업 진도에 좋겠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마도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하긴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거리를 두니 오해를 하려면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하지 않다고 해서 싫어한다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닌데, 그들은 아마도 그렇게 오해한 것 같았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 그냥 아무 생각 없는데, 그들은 내가 싫어서 피한다고 여긴 듯했다. 그냥 나는 내 공부가 버겁고 할 일은 너무 많아서 한정된 내 뇌 자원으로는 도저히 모든 걸 통제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 거 아니라고 해명할까 하다가 뭐 그렇다고 그들이 내게 따지거나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도 아닌 데다 그럴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아 그냥 놔두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만 건사하기에도 내 에너지는 간당간당하다.


하다 못해 피 섞인 가족도 24시간 붙어있으면 싸우는데, 어느 것 하나 접점 없는데 그저 타국에서 만났다고 해서 베프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가 나를 피한다고 해서 그게 나를 싫어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그건 그냥 그 사람의 문제다. 나처럼 본인 일 건사하기도 벅차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차원에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설령 진짜로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감정이지 내 감정이 아니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거리를 두더라도 그로 인해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막상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속상해한다).


하와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 나만의 힐링 플레이스, 동네 공원 ㅋㅋㅋㅋㅋ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모두에게 편한 것 같다. 나의 약점과 고통을 너무 다 오픈하며 상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것도 지양해야 하고, 듣기 좋은 말들, 행복한 일들만 공유하기에도 인생은 짧은 데다가,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인생 굳이 내 힘든 얘기까지 공유하면서 자기 인생만으로도 힘들어하는 그 사람에게 내 짐까지 지워주지는 말자. '친하지 않다'의 동의어는 '싫어하다'가 아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러니 우리 각자 알아서 잘합시다'라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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