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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Oct 18. 2022

그저 건강이 제일이어라

소박하지만 가장 중요한 바람

이곳에서 나와 가장 친한 한국인 친구가 며칠 전 급하게 한국에 갔다. 부모님이 갑자기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지병이 있으시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해서 친구도 내게 자세히 말해준 적은 없었고, 나 또한 친구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묻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병명이고 어떤 상황인지는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알고 보니 꽤 오래전부터 그 병을 앓고 계셨고 달리 해결책도 없어 평생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라 했다. 어쩐지 늘 종강하기 무섭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친구를 보며 저렇게 집이 좋을까 의아했는데 그런 이유였구나 생각이 드니 안쓰럽기도 하고 마음이 안 좋았다.


정신이 없을 것 같아 데리고 나가 저녁을 같이 먹고 그날 마트에 가서 사 온 딸기를 씻어 좀 먹으라며 방에 갖다 주었다. 비행기표를 예매 중이라 했다. 다음날 아침 차가 있는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공항으로 가는 친구를 배웅하는데 친구가 '우선은 일주일 동안만 있다가 돌아오려고 한다'면서, 농담처럼 물었다.


"... 예정대로 일주일 후에 돌아올  있겠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어.”


그럴 일 없고, 혹 그렇다 해도 네가 학업을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 말을 하는 나도 앞날을 알 길이 없으니 사실 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 말을 듣는데 나까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박사 과정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빨라야 20대 중반, 대부분은 20대 후반에서 30대에 해당하는 연령대가 많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들도 덩달아 연세가 많고, 게다가 여기서 우리가 1-2년 공부하다 가는 게 아니라 최소 4-5년, 길게는 7-8년 지내다 보니 그 기간 동안에 다들 한 두 번쯤은 이렇게 가족, 특히나 부모님이 아프신 일이 있는 것 같다.


타인의 아픔을 보며 내 처지를 기뻐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난 아직까지는 부모님을 비롯해 가까운 지인들이 아프거나 힘든 일을 겪었던 적이 없어서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나 또한 여기서 그 흔한 감기조차 걸린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여기서 내 몸이 좋지 않다면 안 그래도 어려운 공부하는 게 배로 더 힘들고 마음이 어려울 텐데, 난 그냥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되는 것이니 이 기본적인 것에서 문제가 없다는 것도 참 다행이지 싶었다.


사람들이 늘 이야기하지만 정말로 건강이 제일이다. 그것은 비단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포함한다. 어쩌면 후자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유학생들 중에는 의외로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공부라는 것이 혼자서 해야만 하는 일이고, 특히나 낯선 환경에서 언어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 나라 말로 해도 어려운 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울증에 시달리며 약을 먹는 이들도 있고, 약까지는 아니어도 임포스터 신드롬(Imposter Syndrom: 자신이 현재 있는 곳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라 여기고 타인들에 비해 열등하다고 느끼며 괴로워하는, 대학원생들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특히 고학력 여성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는 증상)에 시달리며 불행하게 공부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캠퍼스 내에 가장 층수가 높은 빌딩이 하나 있는데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농담처럼 '저 건물에서는 매 학기 정기적으로 떨어져 죽는 애들이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그렇지만 또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꼭 유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에서 방문학자로 오신 교수님과 대화를 하다가 요즘 한국 대학생들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 똑똑하고 야무져서 학과 교수들 사이에서 '잘 키워보자'며 이야기까지 나왔던 학생이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휴학하고 사라져서 1년 만에 다시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치료를 받느라 그런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혼해서 직장 다니고 아이 키우는 내 친구들도 이야기 들어보면 늘 '한국 떠나고 싶다'며 힘든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불황의 늪으로 빨려 들어간 요즘에는 그 간극이 더 큰 것 같다. 지상낙원이라 하는 이 하와이에서조차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팬데믹 이전보다 크게 떨어졌었다. 관광을 주산업으로 하는 하와이 특성상 팬데믹 동안에는 관광객 수가 급감했고 그것이 곧바로 수입 하락과 고용 불안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행복은 어렵다. 정의하기도 어렵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면서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사람마다 그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24시간 중 단 10분만 행복해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24시간 중 정말로 '불행'한 순간이 단 1분이라 해도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뭐 대단히 행복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비교적 몸도 마음도 건강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고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것이 곧 내 행복과도 연결되니까. 친구가 무사히 하와이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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