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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Aug 20. 2024

마음의 흉터가 아무는 때는 언제인가 1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이 글은 그 누구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기 위함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불행을 겪은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그로 인해 현재도 진행 중인 정신적인 트라우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쓰는 글임을 밝힌다. 행여 이 글에서 내가 언급할 당사자(내가 이런 트라우마를 겪게 한 장본인)가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지만) 이 글을 우연히 보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오해가 없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일은 약 두 달 전에 일어났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며, 너무나 많은 일들이 그 사이에 일어난 관계로 굉장히 길고도 지루한 글이 될 수 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이미 트라우마로 남은 이 일을 더 상기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어 (그리고 너무 긴 이야기라 사실 쓰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저했지만, 아무래도 글을 쓰며 해소를 해야 내 마음이 더 나아질 것 같아, 조금씩 나누어서 올려보려고 한다.




의료 사고를 당했다. 생명과 직결된 사고는 아니었고 얼굴에 아주 크고 깊숙한 흉터가 생겼다. 한국에 와서 일주일쯤 지났을까? 미국에서 공부만 하느라 바쁠 땐 신경 쓰기 힘든 피부 관리나 받으러 갈까 하고 대학생 때부터 다니던 단골 피부과를 찾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 병원은 상당히 낡고 오래된 건물에 위치한 피부과인데, 강남이나 압구정 같은 노른자 땅과는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하지만 의사 선생님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전주나 부산처럼 지방에서도 올라오는 환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방학 때 한국에 올 때마다 들렀던 피부과이기에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갔는데, 내가 미국에 있던 사이 원래 계시던 의사 선생님이 일신상 이유로 인해 급하게 병원을 닫게 되어서 다른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보고 있었다.


병원 이름도 바뀌었고 내부 인테리어도 바뀌었지만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나는 예전에 하시던 선생님이 급하게 그만두셔야 해서 잘 아는 의사에게 물려주었구나라고만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전 병원 이름은 'OOO 피부과'였는데, 바뀐 병원 이름은 'OOO 의원'이었다. ('피부과'와 '의원'의 차이를 아주 오래전에 듣기는 했었는데, 일이 안 되려다 보니 나는 그 차이를 알고 있음에도 가볍게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새로 만난 의사는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관리를 하자며 특정 레이저를 권장했다. '이 레이저는 좀 세기 때문에 피부가 한 차례 뒤집어질 텐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이후에는 다시 새 피부가 돋아나면서 오히려 전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 말을 안 들었다면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겼을 때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하고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을 텐데, 의사의 말만 철썩 같이 믿었던 나는 피부가 정말 회복이 안될 정도로 뒤집어지는 상황에서야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마저도 안 가려는 나를 내 얼굴을 본 부모님이 '아무래도 이상하니 한 번 가보라'는 채근해 마지못해 갔던 것이었다. 병원으로 가면서도 나는 '엄마는 참... 어련히 의사가 알아서 했으려고... 유난이시네'라고 생각하면서,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면 '내가 말한 대로 된 거고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돌아온 의사의 답은 기대와 정반대였다. 내 얼굴을 본 순간 의사 얼굴이 굳어지는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화상이며 영원히 흉터가 남을 것'이라고 했다. 너무 청천벽력 같은 말을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들어 처음에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흉터는 눈 바로 밑 얼굴 한가운데였고 붉은 십자가처럼 생겼다. 마치 살인자 얼굴을 보는 듯했다. 이마나 턱 쪽이라면 어떻게 가릴 수라도 있지, 눈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으니 가릴 수도 없었다. 의사는 당황하면서 정말 죄송하고 필요한 치료는 모두 다 해주겠다고 했다. 얼떨결에 일단 해주는 치료를 받고 메디폼 같은 밴드를 붙여줘서 집에 왔다. 집에 오는 길에 부모님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의사인 친척 오빠에게도 급하게 연락을 했다. 혹시라도 잘 아는 피부과 의사가 있을까 해서였다. 오빠가 급하게 잘 아는 동료 피부과 의사를 소개해 주었다. 이미 집에 온 상황이라 오빠가 소개해준 병원까지 다시 가려면 한 시간은 걸릴 테지만 상관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여기 가면 깨끗이 치료될 수 있겠지?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그 병원에서는 더 잔인한 말을 들었다. 아니, 더 '정확한'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흉터이든 모든 흉터는 일단 한 번 생기면 영원히 남으며, 이 흉터는 상당히 깊어서 잘해야 50% 정도 원상 복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에 하는 의사의 말은 한마디 한 마디가 정말 가슴을 찌르는 말들 뿐이었다. 앞서 문제의 병원에서 붙여준 메디폼을 보더니 의사가 한숨을 쉬었다. 화상 흉터는 드레싱이 제일 중요한데 이 따위로 해주면 큰일 난다고 했다. 그래도 전문의가 하는 병원에 와서 드레싱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구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화상으로 인한 상처는 초기 대응이 제일 중요한데, 이때 드레싱을 얼마나 잘해주냐에 따라서 흉터의 정도 자체가 달라진다고 한다.)


"에휴, 여자 얼굴이 이래서 어떡해.... 이렇게 흉터 생기면 의료 소송할 때 재판부에서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노동력 상실'이라고 해요. 그 문제 병원에서는 아마 치료비 한 푼도 안 주려 할 거예요. 가서 피켓 들고 바닥에 누우셔야 겨우 받을까 말까예요. 안 되면 의료 소송으로 가는 방법이 있는데 해봤자 사실 보상받는 건 최대 천만 원 정도예요. 원하시면 아는 변호사 소개해 드릴 수 있어요."

"막 피부 뒤집어졌을 때 즉시 오셨으면 그래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흉터가 남진 않았을 텐데... 왜 이제야 오셨는지... 피부가 관리하기는 정말 어려운데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에요."

"근데 이건 피부과 전문의가 하지 않는 의원에 제 발로 환자가 찾아간 본인 잘못도 있어요. 피부과 전문의가 했으면 이렇게 엉성하게 메디폼 같은 걸로 처치하지 않았을 거예요."


실력이 좋은 의사를 만났으니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던 마음 한 켠의 마지막 희망까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쩌면 지금까지) 마음속에서 끝없는 자책이 시작되었다.

'나는 왜 그 새로 생긴 병원 이름이 '피부과'가 아니라 '의원'인데도 한 치의 의심 없이 내 발로 찾아갔을까?'

'피부가 막 고름이 생기고 뒤집어지기 시작했을 때 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왜 나는 한국에 들어왔을까? 그냥 미국에 있을걸....'

'내가 너무 멍청해서 이런 일을 겪게 되었어...'


가족이 너무 보고 싶고 외로워서 온 한국이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미국에서 외로움에 질식해 우울증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 있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과거로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며 '이러지 말걸, 저러지 말걸' 자책하고 후회하는 나날들이 도돌이표처럼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그래봤자 그 끝에 남는 것은 더 극심한 정신적 고통뿐이었다.


이미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과거의 잘못(사실 잘못도 아니다. 나도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그걸 어떻게 예견하고 피할 수 있단 말인가)을 환기시켜 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누가 굳이 되새겨주지 않더라도 이미 당사자가 제일 심하게 자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망은 단 한 번으로 족하다. 우울증 환자들이 하는 대표적인 행동 중 하나가 과거를 끝없이 반추하는 것이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불행한' 일을 자꾸 떠올려봤자 바꿀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그 의사는 자기 딴에는 내 사정이 안타깝고 걱정되는 마음에 한 말이었을 텐데, 볼 때마다 '그러게 왜 그랬냐'는 투로 말을 하니 정말 듣기 싫었다. 자책 그만하자 마음먹고 추스르려다가도 의사의 저 말을 들으면 사그라들던 내 우울한 마음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기분이 들었다.




피부가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지만 복구는 정말 힘들고 지난한 시간이 든다는 그 의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선 바로 치료에 들어갈 수도 없고, 상처가 아문 다음에나 시작할 수 있으며, 최소 반년에서 일 년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마저도 50% 정도를 목표로 하며, 다시는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 말이 제일 충격이었다. 그 말을 듣고 온 날은 집에 돌아와 휴대전화에 저장된 (의료사고를 당하기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펑펑 울었다. 말끔했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전에도 뭐 얼굴로 먹고 살 정도로 대단한 미모를 자랑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인범처럼 얼굴에 칼자국 같은 상처를 안고 사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이젠 다 끝났구나. 내 얼굴은 마치 살인자나 흉악 범죄자 같아. 이 얼굴로 앞으로 어떻게 살지?'


갑자기 아주 오래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어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이지선 교수님이 생각났다. 물론 내 상처는 비할 바도 못 되지만 건물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된 유튜버 박위 님도 생각났다.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은연중에 그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내 경우는 '장애'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는 얼굴에 난 이 흉터만으로도 인생이 끝나는 것만 같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후천적인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은 얼마나 괴롭고 절망적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그걸 극복하고 건강하게 다시 이후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 또한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번 일을 통해 아주 미약하게나마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첫날 긴급하게 응급 처치를 하고 둘째 날 다시 경과를 보러 피부과를 찾았다. 여전히 절망적인 소견을 듣고 주말에 다시 병원을 찾기로 하고 집으로 가는 길, 절망적인 마음에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 난 다 끝났어. 평생 이 흉터 갖고 살아야 한대....

- 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한국이 얼마나 의료 강국인데. 그 정도로 심각하면 성형외과나 흉터 전문 병원을 찾는 게 어때?

- 흉터 전문 병원? 그런 게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나는 친구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피부과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피부과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성형외과에 가면 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바로 인터넷으로 미친 듯이 검색을 했더니 대한민국 3대 흉터 전문병원에 든다는 곳이 마침 근방에 있었다. 급하게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 나이가 있는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상처를 자세히 봐야 하니 수술대 위에 누워 보라고 했다. 살면서 외과 수술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 눈 위로 쏟아지는 조명을 마주하니 갑자기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현타가 온 순간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상처를 살피던 의사도, 옆에서 돕던 간호사도 당황했다. 민망했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수술대에서 내려와 진료를 받으러 다시 의사 선생님 방으로 들어가려니 진료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이 내 우는 얼굴을 보고는 눈물이 터졌다. 우리가 모두 울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의사도 마음이 안 좋았던 모양이었다.


"지금 너무 걱정하고 계신 것 같은데,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고 나서 자신이 그간 치료한 환자들의 비포 애프터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는데, 정말 얼굴이 피투성이로 된 사람들이 1년 후에는 말끔히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치된 모습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의사 또한 "100% 나을 겁니다" 식의 말은 하지 않았건만, 이미 이전에 피부과에서 '잘해야 50% 회복된다'는 말을 듣고 절망해 있던 나와 부모님은 그 사진들을 보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죽을병에 걸렸다 해도 의사들은 함부로 완치될 것이다, 나을 것이다라는 말을 여간해서는 잘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니 50%라는 의사의 소견도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절박한 상황에 처하니 단 1% 차이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라 해주는 곳에서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에 다시 피부과에 가서 진료를 받기로 했는데 어쩌지? 싶었지만 우선은 성형외과에 예약은 하고 가야겠다 싶어서 나흘 후로 예약을 잡고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이 피부과 선생님에겐 뭐라고 말하지? 다른 병원 가서 진료받기로 했다고 하면 기분 나빠할 텐데...'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의사 기분 나쁠 것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내 흉터 치료받는 게 우선이니 조금 언짢기는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해서 예약을 취소할까 하다가 그래도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오기로 결심했다. 하와이에서 사 온 기념품과 집 근처 빵집에서 비싼 롤케이크도 샀다. 이렇게까지 가서 직접 인사하고 얘기하면 이해해 주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은 늘 예측 불가이다. 내 말을 들은 피부과 의사는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거의 30분 동안 펑펑 눈물을 쏟으며 진료실 안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순간 가장 힘든 건 난데, 대체 다들 내게 왜 이러는 건가 서럽기만 했던 그 날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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