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인드 컨트롤하기 위해 (나 보려고) 쓰는 일기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문제라는 것을 매일 실감하는 요즘이다. 하와이는 아무리 더워도 그늘 밑에선 괜찮은 편이라 그런지 요즘 같아선 한국이 하와이보다 더 더운 것 같다(어제 기온을 확인하니 한국은 35도, 하와이는 24도였다). 잠드는 순간까지도 푹푹 찌는 더위에 날마다 에어컨을 켜는 것도 부담이라 오늘은 아침 일찍 엄마와 집 근처 카페로 피난을 왔다. 오전에 하와이에 있는 사람과 줌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미팅에 필요한 랩탑과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챙겼다.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줌 미팅 시간까지 10분 정도밖에 남지 않기도 했고 오늘 같은 불볕더위에는 현관을 나서는 순간 익어버릴 것 같아서 차를 갖고 가기로 했다.
주말 아침이라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주차장에 자리가 별로 없었다. 다행히 딱 한 자리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엄마가 먼저 들어가서 주문하라며 나를 먼저 내려주었다. 내리자마자 차를 후진해서 하나 남은 자리에 집어넣으려는 찰나, 갑자기 끼익! 하는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SUV 차량 하나가 카페 입구와 우리 차 사이로 마치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듯이 들어와 멈춰 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차에서 내린 나나, 아직 운전석에서 주차하려고 하던 엄마나 모두 벙쪘다.
그런데 그 차는 들어선 그대로 멈추더니 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보고 있는데 운전자가 시동을 끄더니 차에서 내렸다. 이제 보니 차를 제대로 세운 게 아니라 아까 미끄러져 들어온 위치 그대로 삐딱하게 세우고 내리는 걸 보니 테이크아웃을 해서 가려고 대충 세운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카페 입구 앞을 완전히 막아서서 그 옆에 그나마 하나 남은 (우리가 당초 주차하려 했던) 공간까지 다른 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상태로 세우는 건 이기적인 것 아닌가? 보다 못한 엄마가 클랙션을 울렸더니 그제야 카페로 들어가려던 운전자가 고개를 휙 돌려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먼저 내려서 카페 앞에 서 있던 내가 운전자에게 말했다.
"차를 이렇게 세우시면 저희가 주차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씀하실 건 없잖아요?"
순간 기분이 확 상함과 동시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주차하려고 주차 자리를 보고 후진했다가 방향을 틀어서 집어넣으려고 전방으로 살짝 나가는 사이에 과속을 해서 얄밉게 훅 들어오는 모습을 본 터라 기분이 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좋게 말했는데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그렇게 공격적으로 들렸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말하는 내내 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저희 여기 주차하려고 하고 있었던 거라서 차를 조금 빼주시면 좋겠는데요"
"아 예, 몰랐어요. 모르고 그런 거예요. (두 손으로 워워 하는 제스처를 하면서) 말투를 그렇게 공격적으로 하시면 안 되죠"
내 목소리가 대체 어디가 공격적이라는 건지 이해도 되지 않았고(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운전자는 아마 엄마가 울린 클락션 소리에 기분이 상해서, 그다음에 들린 내 목소리까지 공격적으로 들렸던 게 아닌가 싶다), 설령 공격적이라 해도 남들 다 들어가는 카페 입구에 대각선으로 차를 세워 놓은 것부터 상식 밖의 행동이니 공격적인 말을 들어도 싸지 않나 싶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타인에게 투사한다는데, 어쩌면 내 말투가 공격적이라고 말하는 저 사람의 머릿속에서 '방금 클랙션 소리를 들었으니 저 사람은 내게 싫은 소리를 하겠거니' 예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딱히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나는 그냥 말없이 그 운전자의 눈을 바라봤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침묵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주말 아침부터 순식간에 벌어진 불쾌한 상황에 기분이 확 상했다. 그 운전자는 결국 원래 세웠던 곳에서 차를 빼서 다른 쪽에 주차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원래 주차하려던 공간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고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이 일이 이렇게 기분이 나빴는지 모르겠다. 한국과 미국을 자꾸 비교하려던 건 아니지만, 미국 같았다면 이렇게 멀쩡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었다가는 총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카페에 들어와 주문을 하고 줌 미팅을 하는 내내 머릿속 한 켠에서는 그 운전자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할 것 없지 않냐'고 그 사람은 몇 번을 말했다. 우리가 주차하려던 걸 못 보고 그대로 쑥 들어와서 그 운전자 말대로 우리가 주차 중인 걸 몰랐던 것 아닐까? 그 운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지만 그 차 전방에서 우리 차가 후진등을 켜고 있었으니 사실 그 운전자가 우리 차를 못 봤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게다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듯이 너무 빨리 그 차가 들어와서 사실 그 앞에 서있던 나는 사람이 서 있는데도 저렇게 빨리 들어오다니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었다. 내 말투가 공격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자기가 어떻게 차를 세웠고 이게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먼저 인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내게 했던 '말투가 공격적'이라는 말은 '네 말에 내가 지금 기분이 상했다'는 항의의 표시가 아니었나 싶다. 난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네가 공격적으로 말하니 내가 지금 굉장히 불쾌하네?
미국 속담 중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신고 있는 신발에 내 발을 넣어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아직 상상력이 부족한가 보다. 이해하려 해 보았지만 자신이 잘못한 것에 앞서 상대의 말투가 공격적이라며 되려 '공격'하는 사람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브런치는 글 올리자마자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곳이지만 어차피 내 브런치는 나중에 내가 읽으려고 쓰는 공간이니까....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