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결핍에 대해서 거의 얘기하지 않는 편이다. 사실 결핍을 내놓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어떻게 내 결핍을 얘기해야 할까. 그래서 요즘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지금보다 좀 덜 성숙했을 때는 결핍을 결핍이 아닌 척 내보이곤 했는데, 그것도 금세 그만뒀다. 불행을 행운인 척하는 것도 왠지 역겨워서. 행복해 보이는 누구나 각자만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결핍은 깊은 공감을 주지 못한다.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해도 속으로는 ‘내가 더 힘들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고. 이렇게 말하니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인간 본질의 선함과 따뜻함을 아낀다. 다만, 가난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 불행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결핍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각자의 세계에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건 인간의 한계다. 아니, 나의 한계다. 그래도 가끔은 내 결핍을 내놓고 이해받고 싶다. 모르는 사람에게 얘기를 털어놓고, 나 이만큼 힘들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래도 결국에는 하지 못하겠지. 나는 동정을 받기보다는 오해하게 두는 편이 더 편하니까.
라고 스스로를 단정했던 4년 전의 내가, 스스럼없이 본인의 결핍을 얘기하는 사람을 만나서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안 생겼다. 어쩌면 스스로의 결핍을 가장 싫어했던 건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