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의미
집이라는 단어만으로 저는 달팽이가 됩니다.
자주 몸을 쏙 숨길 수 있는 곳과 기댈 곳이 필요합니다.
달팽이처럼 집을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마다 안식처와 은신처가 되어준 몇 곳의 집과 방이 스쳐갑니다.
이제는 혼자 웅크리는 밍밍한 시간을 더없이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보다는 그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가족의 온기를 통해
안정과 휴식을 갈망하던 어린 날의 제가 떠오릅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한 대문을 쓰는 다세대 주택의 두 곳에 살았습니다.
문 앞에는 연탄보일러와 자그마한 수도가 있었고 두 개의 방과 분리된 하나의 주방 겸 욕실이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엄마와 아빠는 꼭 따뜻한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방까지 올려주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로 세수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은 거북이를 키웠는데 그 해 겨울은 얼마나 매서운 추위였는지,
창가에 둔 어항이 얼어 거북이가 죽었는데, 어찌나 슬펐던지요.
ebs에서 하던 어린이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엄마랑 만들었던 샌드위치의 맛은 어제 먹은 듯 생생합니다.
재료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주는 마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아파트라는 곳에 처음 살게 되었습니다.
복도식 아파트 6층이었는데 네모난 형태로 집들이 나열되어 있었어요.
그때는 정말 이웃사촌이란 단어에 걸맞게 항상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돌보고
요리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으로 서서 그네를 탔고,
지금처럼 차가 많지 않던 시절이니 아파트 주차장 언덕에서 롤러스케이트도 열심히 탔었네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던 저의 고향, 광주의 3곳의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춘기를 보냈고, 첫사랑을 했고, 반짝이던 대학시절을 지냈고, 아빠와의 이별도 했습니다.
시절의 사건이나 깊이에 따라 기억의 공간도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덩달아 집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살면서 가장 넓었던 상가 주택 3층은 제가 가장 좋아했던 집입니다.
동생과 저의 방이 각각 생겼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처음으로 커다란 책상과 침대도 생겼습니다.
침대가 닳을까 한 동안은 바닥에서 침대를 바라만 보았지요.
어둑해진 밤, 스탠드만 켜고 라디오를 듣던 밤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를 좋아했고, 공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컴퓨터가 처음 생겼고, 이메일 주소가 생겨서 매달 '미스터케이' 잡지를 구매하지 않아도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어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고 놀면서 무슨 할 말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우정의 증표로 주고받았던 수많은 편지들은 오래도록 집에 함께 머물렀습니다.
모두의 흑역사니 자주 열어보지는 않기로 합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때도 저는 새롭고 시끄러운 공간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보다,
안정적인 곳에서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놀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땐 참 중요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 비밀 이야기들을 많이도 나눴습니다.
문을 꼭 닫고 소곤거려도 아무 말 없이 바라봐 주시고
간식을 챙겨줬던 부모님의 다정함도 크게 느껴집니다.
그 시절의 저에게 집은 비밀기지이자 즐거운 은신처였습니다.
제 방에는 벽장으로 불리는 다락방이 하나 있었는데 동생이랑
달고나를 만들다 태운 국자를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몰래 올려두었습니다.
얼마 못 가 엄마한테 들켰지만 다행히 크게 혼나진 않았습니다.
큰 창문이 있어 겨울에 보일러를 켜지 않으면 코가 시릴 지경이었지만,
파란 하늘이 잘 보이던 방이 눈앞에 선합니다.
더운 여름이면 옥상에 텐트를 치고 누웠다가 종일 달궈진 바닥의 온기에 후다닥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안온한 곳, 집은 저에게 그런 공간입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지금의 친정인, 아파트 1층에 쭉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한 지 10년 차라 이젠 지금 사는 집이 더 편안하지만, 아직도 제 방의 일부는 남아있습니다.
옷을 좋아했던 터라, 곳곳에 행거를 두고 예쁜 커피잔이 있으면 방에 가져다 두기도 했고요.
가끔 침대 배치도 바꾸고 프레임을 없애보기도 했습니다.
방에 딸린 작은 베란다엔 주광색 등이 달려있었는데, 창문을 열어둔 채로 음악 듣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많이 고민하고, 울고 웃었던 그 때의 저를 보듬어 주었던 것도 오롯이 집이었습니다.
신혼집은 방이 2개 있는 자그만 빌라였어요.
진짜 독립을 한 첫 집이라 열심히 꾸미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원피스와 플랫슈즈를 좋아해, 열심히 사진을 찍어 판매하기도 했고요.
밤새 동대문 시장을 돌며 피곤한 줄도 모르고 지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면, 집에 혼자 남겨져 본 적이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퇴근하면 남편과 함께이긴 했지만, 낯설었던 그 기분과 향수병이 꽤 깊이 남았습니다.
돌아간다면 시간을 아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은 항상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생기고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정착을 했습니다.
층간 소음이 있는 곳이라 아이들이 걷고, 뛰고부터는 1층을 찾아 이사를 했습니다.
집은 적어도 가족 모두에게 편안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습니다.
오래전부터 1층에 살아서 그런지 불편함 보다는 편리함을 먼저 생각합니다.
창 밖에 계절의 변화가 바로 보여 좋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니 좋습니다.
분리수거를 할 때도 편안하고 이제는 아이들과 빠르고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이 집에서의 저는 여전히 매일이 조금 고단하고,
여전히 고민 투성이지만, 살림도 육아도 일상에도 조금씩 내공이 쌓이고 있나 봅니다.
덕분에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많이 단단해진 것 같다 -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들로 지금의 저를 단단하게 키워준 집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