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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희 Nov 09. 2021

왜 딸은 엄마에게 못되게만 구는가

미운데, 애틋하고, 미안하고, 보고 싶고, 걱정되는 사람

15년 만에 본가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내심 효도하는 생각으로 돌아왔던 것도 있었다.


본가에 놀러 올 때마다 세월이 흐른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내가 부모님의 곁에 오래 있는 게 내가 해야 될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가로 돌아가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 중 하나는 – “어차피 시집가면 나와서 살아야 할 텐데 부모님이랑 잠깐이라도 같이 있는 게 좋지 않아?”였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내가 반드시 ‘시집’을 가게 될 거라는 전제를 가지고 고민했던 부분도 잘못됐지만, 반드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효도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간과했던 부분은 내가 충분히 엄마에게 효도할 그릇이 된 어른이라고 믿었던 것이었다.

 

엄마 옆에서는 절대로 어른이 될 수 없는 건 아닐까, 핑계를 대어 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곁에서 보이는 모습들이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돌아서면 후회할 말들인 줄 알면서도, 돌아서면 늘 자책하게 되면서도 왜 엄마 곁에만 있으면 옛날 철부지 중학생 내 모습이 다시 나오게 되는 걸까.

 

고마우면, 고마움을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데.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인데.

왜 어른 아이가 된 딸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을 까.


어른 아이가 된 딸은, 본가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효도는커녕 다시 칭얼거리기 바쁘다.

 

“엄마, 나 지금 출근 준비 중이라서 그거 봐줄 시간이 없어.”

“엄마, 나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니까, 그런 것 좀 제발 먹으라고 하지 마.”

“엄마, 내 속옷 다른 거랑 섞어서 빨았어? 왜 그랬어….”

“엄마, 제발 내 방에 물건 건드리지 말아 줘. 못 찾겠잖아.”

 

본가로 돌아온 이후 계속해서 불편한 감정이 드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마치 내가 호텔 살이는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본가에서는 편한 생활을 하는데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을까.



매일 출근 후 집에 돌아오면 내 방은 늘 깨끗이 정리정돈이 되어있었다.


이불은 주름 한점 없이 예쁘게 침대를 뒤덮고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하는 빨래는 다 입은 옷을 빨래통에 넣는 것 까지가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왜 그게 좋으면서도 싫었을까.

 

분명히 좋은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가 당연하게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주고 있었을 때. 그리고 그걸 해주는 사람이 내 엄마일 때.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꿈꿔왔던 서른 두 살의 내가 겨우 내 빨래도 스스로 하지 않는 사람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 실망감은 나를 향한 화살로 돌아왔다.

 

엄마 옆에서는 아직도 철부지 중학생인 서른 두 살 어른 아이는 속에서 곪아버린 생각들을 구태여 밖으로 내보내 소중한 사람들을 다치게 해 버린다.


서른 두 살의 어른 아이는 본가에 돌아와 부모님에게 또 다른 상처만 주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그런 이유들로, 또다시 내가 반드시 독립해야 할 이유를 찾고, 오늘도 열심히 피터팬을 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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