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목록에 꽤 오랫동안 올라와 있는 책이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나온 윤홍균 정신과 의사의 ‘자존감 수업’인데요. 나온 지 7개월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왜 자존감에 '수업'까지 필요하게 된 것인지,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 책뿐만 아니라 최근 ‘자존감’이란 말을 유독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독일 심리학자인 슈테파니 슈탈의 ‘심리학, 자존감을 부탁해’ , 어쩌면 그전에 돌풍을 일으켰던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까지 결국 자존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서점가에서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자존감이 떨어졌다” "자존감을 높이세요" 등 자존감이란 단어를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자아존중감’의 약자인 자존감은 살면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이기 때문에 굳이 이를 인지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됐고, 또 각인됐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계속 언급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 크게 상실됐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우리의 자존감은 왜 무너져 내렸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이토록 자존감을 찾는 이유는 결핍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무엇이 그토록 부족한 걸까요. 경기 침체로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결핍은 급속도로 심화됐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무엇 하나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꿈도 사랑도 모두 멀리만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가까스로 이룬다고 해도 곧 공허해집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스스로를 다잡을 기운도 없고, 1인 가구 시대에 나의 말을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들어줄 누군가도 없습니다. 자아는 그렇게 하루하루 위축되고 흔들립니다.
1980~1990년대 초반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할 때 많은 사람들에겐 희망이 있었습니다. 더 많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더 높은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모두가 달리기 바빴죠.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급격히 위축된 분위기에 마음도 움츠러들었습니다. 한때 ‘힐링’ 코드가 유행을 해서 종교 서적 등에 기대 힐링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치유는 곧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보다 마음을 든든히 채워줄 뭔가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아’를 ‘존중’해줄 장치를 찾게 됐고, 이 심리를 콘텐츠 업계는 빠르게 파고들었습니다. 시즌 1이 종료되고 다시 시즌 2로 돌아올 JTBC의 예능 ‘말하는대로’를 살펴볼까요. 연예인부터 작가, 국회의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했습니다. 거리 공연처럼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게 말하는 버스킹을 통해 이들이 전한 메시지는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었습니다.
배우 박진주는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자신을 예뻐해 줬으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걸 아시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방송인 이상민은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해야 세상도 알아준다”고 했고,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쉬는 “호구처럼 살지 말자”고 주장했죠.
그들의 삶은 제각각 달랐을 것이고 느끼는 바도 달랐겠지만, 공통으로 강조하는 점은 똑같다는 게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그만큼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 본인에게도 당신에게도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자존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콘텐츠는 이들의 말을 통해 당신의 결핍을 채워줄 자존감을 새로운 코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 회에선 '2. 業의 회복으로 자아를 되찾다'란 부제로 해당 글을 이어갑니다. 많은 기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