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먼저, 퇴사한 나의 동료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다. 내 동료는 퇴사 의사를 밝힌 뒤에도 회사에 한참을 더 다녔다. 약 2개월간 동료는 당시 속해있던 팀원들의 인수인계, 나와 팀이었을 당시에 맡았던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까지 해주고는 마침내 퇴사했다. 그는 3개월마다 나오는 성과급은 받지 못했다. 퇴사자는 성과급의 대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남 좋은 일만 하고 퇴사했다.
그가 퇴사한 후 일주일이 조금 넘은 시점에 메신저를 주고 받다가 그가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3년 조금 안되는, 그리 대단한 커리어도 없는 자신을 어떤 회사에서 써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안쓰러웠다. 그리고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도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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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사를 그만 둘 당시, 나는 대리 직함도 달지 못하고 1년 반만에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3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는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었다. 3년 동안 방송사에 입사하기 위해 숱하게 원서를 썼지만 어느 곳에도 들어갈 수 없었고, 공백기가 길어진 탓에 1년 반의 커리어조차 쓸모없게 됐다. 첫 시작은 호기로웠으나,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30살이 되던 해, 불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정말 없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원서를 넣었다. 그토록 원하던 방송사가 아니라 다시 대행사에, 그것도 신입으로 원서를 넣고 있는 내 모습은 정말 초라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다. 나는 이곳에서 꽤 이쁨을 받았다. 1년 반의 직장 경험이 있는 중고 신입이었다보니 시작이 조금은 달랐을 테다. 메일 쓰는 법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아무래도 경력이 하나도 없는 신입보다는 나았을 것이란 소리다. 나를 좋게 본 다른 부서 팀장님이 팀을 옮겨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주시기도 했으니까. 이전 회사보다 연봉도 적었고 내세울 만한 복지도 없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기를 펴고 다닐 수 있음에 감사했다. 긴 취준으로 한껏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조금씩 치유받고 회복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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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퇴사, 그리고 재취업까지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고 동료에게 이런 답장을 보냈다.
'우리가 쌓은 경력은 어디 가지 않아요. 그리고 회사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운명처럼 만나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침내는 자신이 가야할 회사로 가게 된다고 믿어요. 믿기 힘들겠지만 지금 회사가 저한테는 그런 곳이었고 앞으로 이직하게 될 곳도 같은 맥락으로 정해질 거라 생각해요. 이력서를 많이 써도, 적게 써도, 잘 써도, 못 써도 결국은 운명이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안내해 줄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의 이력서를 쓰더라도 최선을 다해 작성하되 마음의 부담은 많이 내려놓았으면 좋겠어요.'
아마 매일 이런 식으로 마음 먹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잠깐은 그렇게 생각했다가도 다시 불안해지고 조급한 마음에 아무 회사에나 원서를 넣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결국은 자신이 만나야 할 회사로 가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사실 이건 동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에게 해주고픈 말이기도 하다. 나도 현재 이직을 준비하는 중인데 정말 막막하다. 편안함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로 부러 몸을 들이미는 작업이 될테니까. 하지만 더 경험해보고 싶어서, 그래서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행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려 한다. 어차피 내가 소망하는 곳에 가 닿을 것이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