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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면글면 Jun 06. 2023

뜻밖의 눈물

인생살이

주말, 특히 토요일 오전 10시 즈음 느즈막히 일어나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멍하니 식탁에 앉아있는 그 시간을 참 좋아한다. 잠을 충분히 자서 넉넉하게 부은 얼굴(나는 사실 이 때의 내 얼굴이 가장 마음에 든다. 부어서 그런지 몰라도 피부가 굉장히 탱탱해 보인달까), 적당한 포만감, 자연광, 그리고 하루 더 남은 휴일까지, 내 마음에 여유가 가장 넘치는 시간이다.


그 날도 어김없이 토요일 오전이었다. 동생과 각자의 기호대로 아침을 먹고 멍타임을 보내다가 진로 이야기를 하게 됐다. 동생보다 3살 많은 나는 그럴 때마다 허세 조금 보태서 나도 그랬는데 잘 살고 있지 않냐, 괜찮다, 잘 할 수 있다는 식의 격려하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그 날도 그랬다.


"나 봐봐. 재수, 편입 다 잘 안됐어. 방송국 입시도 결국 잘 안됐지. 그치만 지금 회사 생활하면서 제 밥벌이 하고 있잖아. 그 정도면 충분히 내 몫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새드 스토리였지만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대차게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갑자기 따라울었다. 햇살 좋은 토요일 아침에 자매 둘이 식탁에 앉아서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는 풍경이라니 말 그대로 웃기면서 슬펐다. 나는 긴 취준에 지친 동생이 내 이야기에 위로받아서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물으니 동생은 내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문득 나는 내 실패의 지점마다 충분히 슬퍼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실패의 순간마다 무척 쓰리고 아팠지만 애써 센 척하고, 아무렇지 않아보이려 안간힘 써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합리화라고 할 수 있을, 그러나 당시엔 내가 살기 위해 끊임없이 되뇌어야 했던 말들도.


'원하던 길은 아니지만, 나에게 열린 길이니 결국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거야.'

'간절히 바라더라도 결국 길은 정해진 운명을 따라 열리는 거야.'


기대가 절망으로 바뀐 지점들에 스스로 주문을 걸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걸로 나를 충분히 다독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간절히 바랐으나 얻지 못한 것들로 인해 생긴 상처를, 상실을 깊이 들여다보고 치유해줄 용기가 없어서 그저 듣기 좋은 말로 어영부영 마무리해버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의 실패에 동생이 대신 눈물을 흘려줬다. 나조차 마음놓고 슬퍼하지 못한 나의 실패. 동생이 나의 실패를 대신 애도해준 것 같아 그 짧은 시간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삶에 있어 진정한 감동과 위로를 얻는 순간은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은 그래서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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