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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그미 Mar 17. 2024

나의 글쓰기는 왜 합니까

나는 나 자신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건강한가요, 건강하지 않은가요?

나는, 왜 자꾸 쓰고 싶어 하나요?

나에게 물어봅니다. 왜 쓰고 싶은지. 글밥을 먹고살기를 꿈꿨던, 노력 없이 바람만 있어 부끄러웠던 때를 지나, 이제는 글쓰기를 무엇으로 대하고자 하는지 마음은 정하고 온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어쨌거나 글 역시 표현하는 것이니까, 나는 나를 표현하고자 이렇게 쓰고 있지요. 하고 싶었던 말이 입에 맴돌다 가는 게 아쉬워서 쓰지요. 노력 없이 바랐던 마음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씀으로써 살고 싶었던 어떤 정진의 마음을 담아, 씀으로써 살기를 바라던 어떤 헛된 마음을 비운 채 쓰고자 하지요. 이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배설에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아갈 것입니다. 내 글도 나아갈 것입니다. 앞으로든, 옆으로든. 나는 때로 물러날 것입니다. 나의 글도 함께 물러서고, 나와 함께 다시 나아갈 것입니다. 살면서 가장 서럽고 외롭고 슬플 때에, 나는 나의 그림자, 나의 글과 함께 셋으로 남을 겁니다. 살면서 가장 기쁘고 흥겨울 때, 나의 빛을 담아 놓을 것입니다. 나의 글은 나를 위한 전구입니다.

유튜버가 유행하고, 브이로그가 인기를 얻고, 그중에 두각을 드러내는 브이로거들을 보면서, 부럽기는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자기를 대상화해서 돈을 버는 게 부러웠어요. 첫 유행으로 우리가 '뭐? 밥 뭐 먹는지, 쇼핑 뭐 하는지, 핸드폰으로 찍어 올려서 돈을 번다고?'에 놀라던 시절이 벌써 몇 년이 흘렀지요. 이제는 그들의 성실함과, 그 성실함으로 남긴 그들 각자의 삶의 기록이, 부럽습니다. 나에게도 소중한 순간이 많았는데, 저렇게 잘 남겨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나 자신을 대상화하고자 시도해 보니 어떤 상업성이랄까, 셀링 포인트를 가진 사람은 아닌 듯하다는, 판단을, 어느 순간에, 하게 됐어요. 그리고 나는 나를 대상으로 브이로그 같은 것을 해 본다 한들, 또는 다른 어떤 SNS를 한다 하더라도 내 삶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소통한다는 것이 어렵고 피곤했습니다. 말하고 보니, 나는 나 자신을 위한 표현수단을 자꾸만 찾고 있었군요. '이 세상엔 나 같은 인간도 있습니다! 어떤가요? 제가 여기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요, 이 손 모양은 어떤가요? 좀 봐주실래요?'라고.

나는 나의 배설 같은 글을 싫어했고, 그 속을 채운 수식어와 미사여구들이 징그러웠습니다. 내가 나를 화장하고 있는 것 같아 무서웠어요. 그게 나의 문체였을 겁니다. 문체 같은 걸 가졌다면요. 왜 오늘따라 내 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여느 날보다도 더 쑥스러운 걸까요? 어쨌거나 내 글은 화장한 듯도 하고, 맨얼굴 같기도 했지만, 때로는 가장한 맨얼굴 같기도 했고, 때로는 보기에 부담스러운 풀 메이크업 같기도 했습니다. 아니 날씨도 매일이 변덕인데 내 글이 변덕스럽다고 내가 이토록 괴로울 일입니까? 생각을 접어야 해요, 이럴 때는.

자, 어떤 대상화나 치장도 집어치우고, 자기표현과 기억 보존. 아주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나의 글은 다시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뭐가 되어도 좋으니 하여간 뭔가를 쓰기는 쓰고 싶다'는 마음을 곁들입니다. 이렇게 다시 시작하긴 하는데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사실 내 글이 갈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는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한 가지 취미에 깊이 파고들지도 않았고, 아름다움도 잘 모릅니다. 나의 글은 정보를 전달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뭇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도 좋아하는 양질의 정보. 그것은 내가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일단 지금은 그렇습니다. 언젠가 깊이가 있는 공부를 하고, 글쓰기 근육이 튼튼해 자주 그리고 많이 쓸 수 있다면, 그런 유익한 글을 쓰게 될 수도 있겠지요. 지금 내 글이 갈 길은 그저 나 자신을 위한 에세이뿐입니다. 이 길을 곧게 가지 않으면 새로운 가지를 내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욕심을 앞세우기 전에, 쓸 수 있는 것부터 써야겠지요.

대학 시절 쓴 시 중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쓰지 않을 것.' 이 구절은 학우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나니, 지금 나는 나에 대해서만 쓰고 있네요. 내 것이 늘어나면, 쓸 수 있는 것도 늘겠지요. 그러합니다. 지금 이 글은 내가 다음 글을 쓰기 위한 마중물입니다. 불려놓은 씨앗입니다. 내 글쓰기 텃밭을 위한 밭갈이입니다.

오늘은 자주 눈물을 흘리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마터면 '나는 왜 울었는가'를 구구절절 쓸 뻔했지요. 그걸 썼다면, 아마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배설이 되었을 겁니다. 나는 오늘 배설하지 않고, 내가 나아가기 위한 글을 쓰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 작은 성공을 자축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 글이 아주 멋지지 않은 이유가, 밝은 시간에 내내 우는 바람에 나의 하루가 생채기를 얻고 떠나갔기 때문임을, 살포시 적어 둡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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