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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그미 Mar 13. 2024

나의 글쓰기는 언제 합니까

최고의 핑계: 글 쓸 시간이 없던데요?

'글짓기를 잘한다'는 수식어를 가지고 지내던 학창 시절에도, 혼자 쓰는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일기장을 때로 샀지만, 한 권을 다 채운 적은 없습니다. '일기'라고 부르되 '월기, 계기'로 쓰는 뜸한 끄적임에 불과했어요. 학창 시절 나에게 조금 색깔을 입혀준 그 수식어는, 무개성하고 평범한 나를, 막연히 아는 아이들이 설명하기에 애매하니까 붙인, 그런 말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나는 공부하다 딴짓한다, 싶으면 교과서 옆머리에 만화나 그리는 애였는데 말이에요. 손이 저절로 가는 짓을 적성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차라리 만화를 공부하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요.

그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죠. 나이 들수록,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더욱 조명하기만 하는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맞습니다. 가지 않은 길을 자주 이야기하죠. 벌써 밑천을 드러내긴 싫으니, 그 이야긴 그만하겠습니다.

내가 실제로 살아온 어리석은 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할게요. 하여간 저는, 잘 안 썼어요. 자신을 위한 글쓰기도, 남을 위한 글쓰기도, 그 중간에 있는 어느 것도. 안 쓸 핑계가 많았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무슨 글짓기를 해? 어떤 어른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혼자서 그런 금욕적(?) 태도로 글쓰기라는 취미를 터부시 했더군요. 수험생에게는 어떤 취미도 사치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이런 태도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요즘을 사는 학생들은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이에요. 나는 몰랐죠.

20대 초반의 글쓰기는,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대학생활을 하느라 기계적으로 뱉어내는 글이었어요. 쓸모없는 글이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이 시기에 나는 누구 하나라도 나를 돌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토로하는 사적인 글을 썼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했어요.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용한 글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모습 속에서 그들과의 관계와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했어요. 이때의 내 글들이 배설이었다고, 벌써 말했습니다. 해로운 글이었어요.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걱정하게 만드는 글을 썼죠.

내가 위태로운 상태였기 때문이긴 합니다. 그때 그런 글을 쓰지 않고 참았다면 내가 더 나쁘게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글이 지금 나에게는 부끄러운 것일지언정 그 시절의 나에게서 그런 글쓰기마저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 시간을 돌려 돌아가도,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차라리 그렇게 쓰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렇게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나는 거리의 풍경처럼, 변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뭘 많이 쓴 것 같지만, 또 그 정도로 많이 쓴 건 아닙니다. 써봤자 싸이월드였어요. 흠칫 놀라셨나요, 제가 지금 몇 살로 보이십니까? 카카오톡이 없는 시대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보이는 것에 비해 그다지 쓸만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블로그도, 일기도, 친구와 스터디처럼 쓰자고 한 약속도, 전부 다 용두사미로 끝났어요.

왜 그랬냐고요? 시간이 없었어요. 학교생활, 누군가와의 만남, 웹서핑, 용돈으로 한껏 지르는 쇼핑, 때때로 그게 성에 안 차서 푼돈을 벌기 위한 알바, 어쭙잖은 대외활동.... 한비야의 여행기가 대학생을 고무시키고, 사양세에 접어들었어도 국토대장정의 낭만이 남아있고, 하이힐을 신고도 공부와 아르바이트, 연애까지 잘하는 알파걸이 이상으로 여겨지던 시절, 뭔가를 따라잡고 싶지만 아무것도 따라잡지 못한 채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나면 공부도, 한 줄 글도 쓰지 못하고 잠들던 생활이었어요. 시절 탓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의 생활이었어요.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가, 그저 게을렀던 것이지요. 그렇게 뭔가를 이룩하기 위해 달려야 할 때, 차라리 글쓰기를 열심히 했다면 현명했을 텐데. 후회한다는 이야기예요.

수업이 급해서, 입을 옷이 없어 웹 서핑이 급해서, 배가 고파 먹고 봐야 해서, 우울하고 무기력해 무엇도 할 수 없어서, 친구가 부르면 나가고 싶어서, 나는 체력이 부족하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하여간에 시간이 없더라고요. 30대가 되어 결혼생활을 하니 마음이 바빠져서 시간이 없었고, 아기를 낳으니 시간이 없었습니다. 일을 하니 퇴근하면 쉬어야 해서 시간이 없고, 휴직을 하니 살림을 하고 쉬어야 해서 시간이 없습니다.

계속 시간이 없으면, 이렇게 미루다 결국 죽어서는 쓸 수 있을까요?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나를 저승 입구에서 맞이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드러누워 자기 전에, 모든 식구들이 잠든 이때, 그 좋아하는 유튜브를 켜둔 채 노트북을 열어봤습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쓰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오늘은 조금 덜 망설였네요. 일단은 썼으니까요. 내일도, 내일이 안되면 모레도, 내가 덜 우물쭈물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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