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는 무엇입니까
안 쓰는데 왜 나는 괴롭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왜 아무것도 안 쓰고 지내는데, 자꾸 글쓰기가 나를 괴롭힙니까?
어린 시절, 뭣도 모르고 무언가를 자꾸 쓴 적이 있습니다. 방과 후에 남아 다섯 시까지 매일, 동시 한 편을 지어 선생님께 검사를 받곤 했지요. 그게 인생 최초의 특별활동이었습니다.
글쓰기 특별반이니까, 백일장 같은 대회가 있으면 출전했지요. 수업을 빼먹어도 괜찮으니 좋았습니다. 상은 대부분 참방이었습니다. 참가상이었다고 풀어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대충 짐작이 가실 겁니다. 90년대였고, 내 글은 고만고만했습니다. 그때의 급우들 중 누구라도 매일 두 시간씩 글을 썼다면 잘 썼을 겁니다. 초등학교 때 몇 년 정도 방과 후에 두 시간씩, 동시를 지은 일이 기록이 되어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가끔 뭔가를 쓸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은 글을 제출하고, 심사위원들 간에 적절한 타협의 선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하고 못 받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보다 좋은 글을 쓰는 아이를 보면, 조금 이해가 안 되기도 했어요. 나는 매일 썼는데, 그렇지 않은 너는 왜 잘하는 거지?
그런 의문이 누군가에게는 더 쓰는 이유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어요. 재능의 영역과 노력의 영역을 알지 못하는 나는, 글쓰기는 언제나 학교활동의 사소한 일부인 것만 같았어요. 제법 순진하게 자란 나는, 그때는 학교생활의 성공지표는 무조건 성적이라고 여겼습니다. 성적을 위한 노력 외에는 이렇다 할 노력을 즐겁게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뭐랄까, 조금 부끄러웠어요. 글 쓰는 것이 부끄러웠달까. 아니 내가 쓴 글이 부끄러웠달까. 어떤 글을 쓰고 나면 한 달 후에는 그 글이 창피하고, 아무도 이 글을 모르면 좋겠고,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고. 또 그다음 달에는 내가 쓴 글이 재미있고,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중에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비웃으면 한없이 작아질 것만 같아서, 글을 쓴 채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고요. 알쏭달쏭했네요.
글을 잘 쓰는 아이로 여겨진 적도 있었을 겁니다. 모두가 나가지 않는 글짓기 대회에서, 글 지었다고 상을 받아오면,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여겨지게 마련이지요. 작은 고장에서, 학교급이 바뀌어도 졸업과 입학을 거의 함께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식은 오랫동안 자리 잡았지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감동적인 글을 쓰는 날이 있어도, '이 반에 글짓기 잘하는 애 누구 있니?'라고 할 때 그 친구보다 나를 먼저 떠올리는, 그런 도식 속에 내가 있었더랬지요. 나는 그런 도식 속에 지내며 내가 봐도 이상한 글을 가끔 제출해 선생님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회의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기대를 받을 때 오히려 긴장해서 아무것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몇 번, 나의 글을 한없이 낮추어 보면서도, 나는 나의 글이 너무 소중하기도 했습니다. 은밀한 자기애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나는 글짓기 잘하는 아이'라는 인식이 나 스스로에겐 없었을까요? 모두가 나를 그런 줄로 믿는데, 나만 아닌 줄 알았을까요? 나도 나에게 속아 넘어가고, 그 때문에 쓰고, 나에게 다시 배신당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대학 진학을 위한 논술반에서 글에 대한 지도를 받을 때는 오히려 아주 힘겨웠습니다. 논술에 틀에 맞춰 글을 쓰는 게 어려워져 버린 것이에요. 내 글머리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쓰였고, 대학 진학을 위한 논술에서마저도 거의 쓸모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논술시험을 보지 않는 입시전형들이 있어, 어찌어찌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문과는 대학에 가서도 내내 책 읽고 글 쓰는 게 할 일입니다. 전공이 국어국문학이니, 읽고 쓰고, 그랬지요. 얼마나 많이요? 아, 뭐.... 아마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게요? '나는 속 빈 강정이다.' 오랫동안 이 생각이 나를 지배했습니다. 모두가 우스갯소리로 아는 것도 없이 리포트를 쓰고 있다고 떠들곤 했지만, 그중에 제일 모르면서 글자 수를 채우는 건 바로 나였던 것 같아서, 어느 자리에서나 괴로웠습니다. 한참 학문의 경계에서 탐구를 해야 할 때, 나는 조금씩 그 학생의 의무를 외면하고 나를 토로하는 글을 쓰곤 했습니다. 불안하고 외로운 나를 절절하게 토로하고 나면, 좀 나아졌어요. 모두가 내 글을 영원히 모르기를 바라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 때는 누구라도 내 글을 읽고 나를 돌아봐주길, 돌봐주기를 바랐습니다.
청년기의 초입, 내 영혼의 일부를 불살라 먹은 듯한 그 시절을 지나면서, 내 글은 배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는 내 글이 배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끔 썼습니다. 소소한 블로그 글들, 어떤 상업성도 없이, 그저 신변잡기적인 글들.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의 아주 사소한 일상.
언젠가부터는 그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오랫동안 뭔가를 쓰지 않았습니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뭔가를 씀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때로 의미 있는 뭔가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생각한 만큼 주제를 엮고 글의 짜임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 글쓰기에 필요한 잔근육들이 모두 퇴화한 지 오래가 된 상태예요.
그런데도 괴롭습니다. 아무것도 안 쓰면, 편해야 하는데, 왜 안 편합니까? 이제껏 써온 것들 중에 건질 것이 하나도 없는 것만 같은데, 왜 나는 괴롭습니까? 한때 글로 밥 먹고 살기를 꿈꿨지만, 어차피 이미 오랫동안 그런 길과는 상관없는 시간을 살았습니다. 글로 밥을 먹고 싶었다면, 밥 먹듯이 썼어야죠. 나도 아는데, 왜 아직도 글쓰기를 생각하면 나는 괴로운가요? 뭔가를 자꾸 써야만 할 것 같고, 그건 반드시 전과는 달라야 하고, 더 나아져야만 하는데, 뭘 써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전문분야도 없고, 남에게 알릴 가치가 있을 만큼 좋은 정보를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요. 빨려들 듯 재미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뭔가를 쓰라는 말은, 내 주변을 계속 맴돌고, 나는 또다시, 어떤 플랫폼이든 글을 쓰기 위해 기웃거리곤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며 또 내 마음을 꺾곤 했어요.
대체 나는 무엇이 문제인 걸까요? 안 쓰는 게 불현듯 괴로워서 또 써봅니다. 글쓰기는 나에게 도대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