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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명품 백을 사다

by 심그미

여성의 사치라 하면 우리 한국인들은 으레 명품 백bag을 떠올린다. 그렇다. 나는 사치에 관한 가장 평범한 관념에 가장 평범하게 부합하는 사치품을 구입했다. 나, 백 하나 뽑았다. 나는 내가 명품백을 사는 사치를 했다는 이 문장을 사실인 상태로 적을 수 있기를 기다리느라 오랫동안 사치에 관한 글을 쓰지 않고 묵혀두었다. 나의 사치는 나의 진실한 취향과 소비를 담아야만 하기 때문에, 가방을 주문하는 순간에 내 글쓰기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고, 가방이 도착해야만 내 글쓰기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 것이었다.

가난한 소피아답게, 가방 하나 샀다는 이야기를 참 구구절절하게도 시작한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측은한 소피아가 버는 족족 탕진하는 재미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노동을 통해 뿌듯하게 번 돈으로 소비를 통해 취향을 실현하면서 자아를 발휘하지만, 결국 시장에는 미미한 영향을 주면서 가계에는 대단한 영향을 끼치는 구매 결정으로 다시 노동 시장과 소비 시장의 호구가 될 뿐인, 앞으로도 그렇게 살 전망이 다분해 보이는 소피아. 자본주의 속에서 지극히 자본주의적 태도로 사느라, 소진되는 동시에 채워지는 모순의 순간을 살아가는 한 소시민의 이야기. 이건 영화 장르로 치자면 블랙 코미디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유쾌하게 깔깔거리지 않으면 좋겠다. 비실비실 픽픽 웃으면 좋겠다. 비웃지는 말았으면. 비웃는 건 괜찮으니 안 웃지는 말았으면 한다. 정색하며 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나를 정말로 동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건 원치 않는다. 난 즐겁게 살고 있다.




어쨌거나, 애초에 나는 '럭셔리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가방을 사고픈 욕망이 그리 크지 않았다. 가방으로 욕망이 뻗칠 수가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내 옷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스타일이란 걸 정의할 수 없는 옷장이다. 그냥 닥쳐오는 상황에 맞춰 되는대로 아등바등 사는 사람의 정신없고 가난한 옷장 그 자체였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임신과 출산을 두 번 반복한 사람의 옷장은 변화하는 몸에 맞추는 데 급급한 천쪼가리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저 가리는 것이 최선의 목표. 꽤나 짠내나는 생활. 이런 몸과 막돼먹은 차림으로 출근을 하고 창피를 잊으려 애쓰느라 성실한 근로의 보람 같은 건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스타일이니 아름다운 가방이니 하는 것은 남의 이야기였다.

지난 가을, 나는 남편에게 생활비를 전부 부담해보라고 말한 뒤(나는 생활비를 혼자 너무 많이 감당해서 고통받은 적이 있다.) 복직 후 받은 월급을 내 의복 마련에 사용했다. 국장님의 비서라는 보직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직장에 다녀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국장님의 손님들에게 차를 내어드릴 때, 너절한 옷차림을 한 비서는 기자나 외부 기관장이 보기에 볼썽사납고 망신스러울 것 같았다. 셔츠 몇 장, 정장바지 몇 장. 초라함을 빨리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요즘은 최소한의 단정함 정도는 갖추게 된 듯하다.

이제는 차림과 꾸밈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오랜만에 패션 유튜브 같은 것들을 시청했다. 비로소 좋은 가죽 가방을 하나 마련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이어야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소비와 관련하여 남편과 소소한 다툼을 반복한 뒤 내겐 오기가 생겼다(그 다툼에 대해 언젠가는 써 보고 싶다). 나는 그때 남편이 너무나 답답했다. 남편의 검소함과 절약, 근면한 저축을 언제나 존경하고 존중했지만 지난 여름 남편과 반목하면서 내가 남편을 존경하기 위해 너무 많은 내 돈을 썼음을 자각한 뒤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남편은 지나치다 싶게 소비할 줄을 모르고, 그건 내게 활기가 부족한 생활이다. 연 5천만원을 벌어도 연봉이 2400만원인 것처럼 사는 남편은 어찌 보면 겸손하고 든든하지만 달리 보면 가진 것에 비해 마음이 너무 가난하고 인색한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의 그런 경제관 때문에 내 소비가 묶인다는 생각이 싫었고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런 좋은 물건 하나쯤 사며 살아도 우리 가계는 지장이 없고, 우리 삶은 망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유감이 깃들어서, 나는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을 골랐다.




결심하고 나자 나의 욕망은 더욱 솔직해졌다. 나는 명품백을 원해. 야심있고 잘 배운 디자이너가 충분히 실력있는 공장에서 가공해 내놓아 판매하는 가성비 좋은, 은근히 취향과 감각을 뽐낼 수 있는, 그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가방, 엄청난 검색과 손품 발품을 판 끝에 감각적이고 현명한 선택으로 사는 가방 말고. 직관적으로 사람들이 나의 구매력에 놀랄 가방을 원해. 누가 봐도 오, 저건 비싼 거잖아, 라고 말할 가방. 한눈에 예쁘다, 라고 말할 가방. 말하자면 결혼식에 들고 갈 가방.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지내다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한눈에 알아보고 '뭐, 아주 변변찮게 살지는 않는 모양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들 만한 가방.

그런 가방을 고르는 데에도 여전히 검색과 고민이 필요했다. 명품백을 살 생각을 하고도 명품 매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최대한 싸게 살 방법을 찾아 해외 아울렛 구매대행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궁상맞고 성실한 노력 끝에 내가 고른 것은 백만 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적합해. 아주 적합해. 명품 브랜드의, 적당한 크기와 참한 디자인의, 무난한 검정색 가방. 심지어 백만 원도 안 되다니. 내 심리적 가격 방어선이 바로 백만 원인가 보다. 가방을 주문하고 뿌듯했다.

그러나 주문한 가방은 오지 않았다.




15일 안에는 배송을 시작한다더니.

감감무소식이던 판매자는 내가 언제 보내줄거냐고 문의를 하자 그제야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다리게 해서 몹시 죄송하며, 재고가 없다고. 주문하고 결제한 시점에 내 마음속에 가방은 이미 내 것이었는데, 없다니? 이탈리아에 넣었던 주문을 취소하고, 이번에는 영국으로, 다음에는 독일로. 심리적 소유가 생긴 가방이 허구적 소유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고, 기어이 실제 소유로 실현해야만 하겠기에 나는 가방 물량을 확보한 판매자를 추적하듯 검색했다. 문의, 결제, 취소, 문의. 이제는 소유라는 결과가 더 중요해져 버린 가방을 좇는 동안, 결제해야 하는 가격은 점점 높아졌다. 엄선하여 고른 90만원대 가방이었는데, 실제로 손에 쥐려고 혈안이 되다 보니 마지막으로 결제한 금액은 130만원이었다. 이 정도 차액이면 차라리 평소대로 사던 가방을 사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이렇게까지 쥐어야 하는 물건이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기어코 끝을 보아야겠다는 내 의지는 확실했다.

난 기어이 가방을 배송받았다.


페라가모의 아름다운 검정색 바라 보우 체인 백.

격식을 차린 자리에 조금 귀여운 듯 우아하고 싶다면 이보다 적당한 가방이 있을까. 가방을 개봉하고 한참동안 금속 체인의 반짝임과 단단한 가방의 형태와 유연하기 그지없는 가죽의 감촉을 매만지면서, 130만원의 쾌감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꼈다. 무언가를 열심을 다해 좇았다가, 이루고 나면 허탈해지는 그런 감정을 아주 조잡한 방식으로 느낀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 가방이 몹시 마음에 든다. 바라 보우라니. 수십 년 전에 아름다움을 뽐냈던 그 리본이 올해에도 유효하고, 이제는 내 옷장에 하나 사로잡혀 들었으며, 나도 이 리본의 유효한 소유자가 되었다는 점이 기쁘다. 어느 정장 차림에도 어울릴 이 가방이 마음에 든다. 이 가방을 멋들어지게 드는 아줌마가 되기 위해 뱃살을 좀 빼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생길 정도다. 130만원의 기쁨. 겨우 130만원에 유난스러워서 씁쓸하지만 무려 130만원을 가방에 쓴다는 과분한 소비의 쾌감이 더 크게 휘몰아친다. 이건 기쁨이 분명하다.


꽤나 애잔했어. 축하해, 소피아. 다음엔 무엇을 사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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