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정확히 일을 시작한지 2년만이다. 2년간 정말 많은 개인적인 사건으로 인해 계약을 끝내고, 새롭게 계약서를 쓰기를 세 번을 반복했다. 고용주의 결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속 모르는 친구들은 아직도 '복지천국 네덜란드'를 언급하며 거기는 휴가가 많아서 좋겠다거나 칼퇴해서 부럽다는 실없는 소리만 한다.
꼬이디 꼬인 마음에 무엇이든 귀에 들어오랴. 지금부터 복지 천국이라는 네덜란드 고용사회의 이면을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해보겠다. -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음 주의.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바로잡아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어느날 출근했더니 매니저가 호출을 한다.
"너도 알다시피, 네가 지금 일한지 2년 됐잖아? 계약한지 2년이 되면 우리가 너한테 퍼머넌트를 줘야 되걸랑. 근데 지금 한국 시장이 매출이 잘 안 나와서 퍼머넌트 주기가 쪼매 애매해. 너 어떻게 할래? 매출 올릴 기가막힌 아이디어 있어? 한번 생각해봐"
얼마나 많은 더치회사가 처음부터 퍼머넌트(정규직 형태의 계약)로 고용계약을 맺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라도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의 고용 형태가 존재한다. 생각보다 많은 회사가 피고용인과 계약직으로 고용 계약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런 경우였다.
처음 6개월은 순탄했다. 나름 신나게 일했다. 물론 힘들었다. 말이 짧았으니까.
그러다 비자 갱신 문제로 원치 않게 계약이 끝났고(아 젠장. 여기 일처리 정말 느리다. 이때 처음으로 더치 사람들의 융통성 없음에 화가 났더랬지), 새 비자가 나온 순간 회사는 다시 나를 소환했다. 그러다 1년 되던 날, 계약을 연장해주었고, 감사하게도 인사고과도 A를 주고 보너스도 내 주었더랬다. 나름 내 소임을 다하고 있노라 생각했다.
단 한 번도 매출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을 받아본 적 없이 일하던 2년째 되던 어느 날(그들은 매출에 관해 물어보면 '아주 좋진 않지만 뭐 계속 좋아지고 있어'라고만 말을 했더랬다), 나는 그렇게 소환되었고 그들은 '좋지 않은 매출'과 '더치 법'을 운운하며 매정하게 굿바이를 외쳤다. 사실 처음에 그들이 스쳐 지나가듯 제안한 것은 '6개월정도 쉰 다음 다시 돌아오거나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것.
그런데 듣자하니 2년을 일한 후, 6개월을 쉬디가, 다시 2년을 일하고, 다시 6개월을 일하는 구조는 네덜란드 회사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란다. 앞서 언급했듯 이 나라 노동법상 1. 고용인은 피고용인이 근무한지 2년이 지나면 무조건 퍼머넌트(정규직)를 제공해야 하고 2. 동일 고용인과 2년 미만의 계약을 여러 건으로 나눠서 진행했다면 그 기간은 합산이 된다고 하니 이 얼마나 피고용인의 노동 권리를 배려한 것처럼 보이는가. 하지만 이 법에도 구멍은 있었으니, 바로 1. 계약과 계약 사이에 6개월 이상의 공백이 존재하면 계약 기간이 리셋되는 점. 2. 해고당할 경우 국가에서 6개월까지 실업급여가 나온다는 점. 이용해먹기 딱 좋은 '구멍' 아닌가. 이 덕분에 수 많은 동료가 떠났고, 또 다른 수 많은 동료가 새로 들어왔으니 세상 어디에도 피고용인을 위한 유토피아는 없는 셈이다. (물론, 그만큼 많은 동료가 퍼머넌트를 받고 일하기도 한다)
더치 회사에서 억울한(?)일을 경험한 다른 동료들의 뒷담화를 몇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앞자리 L은 동일 사장이 운영하던 3개의 사업체 중 한 곳에서 일하다가, 그 사업을 접기로 하면서 다 잘리고 혼자 지금의 회사로 부서가 이동되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했고, S는 자기 친구가 다른 회사에서 2년간 일하다가 회사가 다른 사람 뽑겠다며 계약 연장을 안 해주더니 마땅한 대체자를 찾지 못하자 퍼머넌트를 주는 대신 급여 삭감을 제안했다고.
고로, 말하고 싶은 바는 세상 어디에도 노동자를 위한 파라다이스는 없다는 점.
사실, 어쩌면 퍼머넌트 대신 실업급여 받으며 탱자탱자 노는 게 더 '꿀 빠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나 자신에게 더 없는 자유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