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2)
주인공 루이스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언어학자로, 미지의 존재들이 지구에 온 이유를 해석해 달라는 국가기관의 요청을 받는다. 같은 임무를 부여받은 또 다른 인물은 이론물리학자 이안. 둘은 나름의 방법대로 '미지의 존재'에 대해 알아내려고 한다.
첫 만남에서 이안은 '문명은 언어에서 출발한다'는 루이스의 책 서문을 보고 비웃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낸 것은 루이스뿐이다. 루이스는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이방인들과 연결했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또 다른 사람들을 연결했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했다. 이걸 소통이라고 부른다면 그의 소통 방식은 세상에 없던 유일무이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아니 자주 시간의 불가역성에 슬퍼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그렇게 하지 말 걸,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에 무엇을 해 둘 걸. 시간의 무자비함을 한탄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전무할 터. 영화 내용 상 시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주는 반전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주제는 꽤나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들이 예정된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컨택트>의 주인공은 예정된 미래를 기꺼이 선택했다.
다가올 미래의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선택한다면 그 수고로움에는 얼만큼의 가치가 얼마다 더해질까. (물론 여기에는 과거와 미래를 혼동하게 만든 연출이 큰 역할을 했다. 100여분 동안 관객을 속인 연출력은 거기에 들어간 공을 가늠케 한다.)
루이스가 이 모든 서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힘은 루이스만이 갖고 있던 용기다. 두려움과 싸울 용기, 미지의 존재와 대화하기 위해 기꺼이 보호복과 헬멧을 벗을 용기, 결과를 알면서도 기꺼이 그 미래를 선택할 용기. 그리고 그 용기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가능성에 대한, 연결에 대한, 소통에 대한 믿음.
많고 많은 존재들과 랜선으로 연결된 이 시대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루이스가 갖고 있던 그 믿음이 아닐까? 미래를 알더라도, 알지 못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