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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넘 Jun 20. 2019

그 탈출은 불가능하다-<겟아웃>

영화 읽기 (4)

주인공 크리스는 여자친구 로즈의 집에 방문하지만, 사실 그곳은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가족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흑인으로서의 신체를 경매당하는 경매장이었다. 아미티지 가문은 오랫동안 백인의 우월한 두뇌를 흑인의 우월한 신체에 이식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로즈는 흑인을 수술실인 아미티지 저택으로 불러들이는 미끼였고,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부모님인 줄로만 알았던 미시 아미티지와 딘 아미티지는 희생양의 신체를 무력화하는 최면술사, 이식 과정의 집도의였다.


최면에 걸려 강제로 침잠의 방에 들어가야 했던 크리스는 '목화솜을 따서' 그것을 막고, 사냥당하던 사슴, 즉 'Black bucks'를 무기삼아 지하 수술실에서 탈출한다. 이후로는 중산층 백인의 상징이자 최면도구인 찻잔을 깨트리고 저택에서 나가고, 제레미가 흑인들을 납치할 때 사용하던 자동차를 타고 동네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세계에서 탈출하게 해준 것은 친구인 로드가 몰고 온 '경찰차'였다.


<겟아웃>은 소수인종의 엑소더스(Exodus)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는 3중의 탈출구조가 제시된다. 첫째는 침잠의 방(Sunken Place)에서의 탈출, 둘째는 수술실에서의 탈출, 마지막은 아미티지 저택을 포함한 '백인의 세계'에서의 탈출이다. 모든 탈출 과정에서 크리스는 흑인들을 억압하던 도구를 무기로 사용해 탈출에 성공했다.


첫 번째 탈출 과정에서는 흑인 노예의 노동을 상징하는 솜을 이용했다. 손과 발이 가죽끈으로 결박당한 것 또한 노예를 결박하고 노동을 시킬 때 사용하던 수갑 내지 채찍을 상기시킨다. 


두 번째 탈출에서 제레미를 무력화할 때 사용한 당구공은 그 잔인한 억압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가해자의 유희도구다. 사람을 가두고 수술 준비를 겪게 하는 공간에 당구대와 축구 게임기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은 아미티지 가문이 이 일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게 해 준다. 크리스가 손과 발을 결박당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쇠고랑에 달려있는 동그란 쇠 추를 연상할 수도 있다. 


수술실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딘이 혐오하던 사슴, 백인에게 반항하는 흑인을 의미하는'Black bucks'였다. 박제된 사슴은 영혼 없이 껍데기만 남아 있는 모든 월터, 조지나, 로건 킹이기도 하다. 크리스는 자신의 미래일뻔 했을 그것으로 딘 아미티지를 살해한다. 그의 살해는 차라리 '네가 그렇게 혐오하던 사슴에게 죽는 기분이 어떠냐?'라는 외침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크리스는 사슴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심지어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벽에 달려있던 사슴을 여러 번 쳐다보고 그 박제된 사슴과 눈을 맞춘다. 그 때 크리스는 잠시 후 스스로가 저 박제된 사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마지막 탈출 과정은 가장 지난하다. 중산층 백인의 상징인 찻잔을 깨고, 미시 아미타지와 싸운다. 찻잔뿐 아니라 미시 아미타지가 무기로 사용한 '편지 칼'도 백인 중산층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 칼에 손이 뚫리고도 물러서지 않는다. 편지칼로 우리를 억압하는 것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말이다. 이후로는 자신을 잡으러 온 제레미와 대립하고, 종국에는 제레미의 차를 타고 도망한다.


제레미의 스포츠카는 영화 초반에도 잠깐 등장했다. 'Run rabbit run'을 배경음악 삼아 사람을 납치할 때다. KKK단의 것과 비슷한 모양의 투구를 쓰고, 부유함의 상징인 스포츠카를 타고 그는 흑인들을 토끼나 사슴처럼 사냥해왔다. 그 사냥의 도구인 흰 스포츠카를 타고 아미티지 저택을 탈출한 것은 이전까지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어떤 조마조마한 통쾌함을 만든다.


그리고 크리스는 자신을 포획하는 미끼였던 로즈를 만난다. 로즈는 아미티지 저택으로 크리스를 데려온 가장 결정적인 인물이자, 아미티지 저택이 있는 동네에서 빠져나올 때도 가장 결정적 관문이다. 로즈가 들고온 엽총은 사냥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도구다. 도망가려는 크리스를 잡기 위해 할아버지-월터에게 '할아버지, 잡아요'라고 명령할 때 로즈는 단순한 미끼가 아니라 사냥꾼이 된다. 월터의 신체는 로즈의 사냥개처럼 사용되는데, 이런 일련의 장면은 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사냥꾼-사냥감' 메타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크리스를 죽이려 했던 할아버지-월터는 크리스의 카메라 플래시로 침잠의 방에서 일시적으로 빠져나오고, 크리스를 죽이려 했던 바로 그 엽총을 이용해 박제됐던 신체에서 영원히 탈출한다. 조지나의 눈물과 죽음, 월터의 죽음은 비극적인 탈출이다. 


크리스는 또 다시 인종차별의 상징물, '경찰차'를 마주한다. 이 때 크리스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다. 그 순간에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으리라. 하지만 경찰차에 타고 있는 것이 로드임을 알게 되고, 차별의 상징인 경찰차를 타고 동네를 벗어난다.


그러나 그의 탈출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아미티지 저택이 있는 동네를 벗어난 로드는 다시 브루클린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곳은 크리스와 로드, 모든 소수자에게 또 다른 침잠의 방이다.


감독인 조던 필과 크리스 역을 맡은 배우 다니엘 칼루야는 인터뷰에서 '침잠의 방'이 흑인으로서 매 순간 받는 차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리 소리쳐도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는 곳. 소수자의 몸은 그런 곳이다.


크리스의 엑소더스는 불가능하다. 그가 겪은 탈출 여로, 또 앞으로 있을 어떠한 탈출도 그를 가나안으로 이끌 수 없다. 애초에 그의 가나안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탈출 과정을 겪고 도달하는 공간도 차별의 공간이다. 세 번째 탈출은 그를 네 번째 탈출이 필요한 공간으로 이끌 것이다. 그래서 그의 탈출은 불가능하고, 그의 엑소더스는 실패할 것이다. 영화에 제시된 크리스의 탈출은 해방이 가능한 공간으로서의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는 탈출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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