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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경 Apr 30. 2021

서른 넘어 처음 생긴 내 방_2

정부의 번복되는 부동산 정책에 집값이 하루에도 널뛰듯이 바뀌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집을 팔기로 한 건 큰 결단이었다. 집을 팔아서 빚잔치를 하고 남은 돈으로 서울 외곽으로 나가 다시 깨끗하게 시작하고 싶다는 게 아버지의 소망이었다. 다달이 빚으로 빠져나가는 이자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여기서 잠깐 우리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하자면, 자신의 입으로 파산했다는 얘길 자식들에게 하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자존감이 엄청난 사람이다. 아버지는 잘못을 해도 사과하지 않는 게 본인이 가진 가장의 권리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시대가 변혁할 때 미래로 가는 기차에 탑승하지 못한 겁쟁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 늘 신경질을 혹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불러다 앉혀 놓고 이제 나는 정말이지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가슴이 툭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집이 정말 힘들긴 힘들구나 싶었고, 가능한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대략적인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짧게 말하면 쓸 수 있는 돈이 이 정도니 젊은 너희들의 정보력으로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집을 찾아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바일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나는 부동산 어플을 여러 개 받아서 필터에 우리 사정을 끼워 맞춰 검색을 돌렸다. 사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많지 않아서 다행이면서도 슬펐다. 다른 것보다도 문래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난 무교지만 종교 굿즈는 아주 좋아한다.


집을 고르면서 알게 된 우리 가족 구성원의 개취란- 정말이지 타협점을 찾기 힘들어서 여러 번 속으로 시팔조팔 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건네준 매물 리스트를 가지고 집을 보러 다녔다. 목표는 8월 입주였기 때문에(점쟁이 피셜)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발품을 팔아야 했다. 지구력이 약한 엄마는 집 두어 개를 보고 아아, 그냥 여기로 하자 힘들어서 더 못 보겠어-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어금니가 부러져라 턱을 여물어야 했다. 엄마 제발...!


엄마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말하자면 세상 고민과 걱정을 다 짊어지고 사는 타입이자 유약한 성정으로 바람에 꽃잎이 지면 유한한 삶에 눈물짓는 스타일이다.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캐릭터라서 가뜩이나 예민한 아버지가 엄마 때문에 짜증을 많이도 냈다.(열심히 집 보고 나서 한다는 말이 나는 문래가 좋은데... 니까 열 받을 만도) 나는 어차피 이사가 기정사실이 된 마당에 더 이상 문래에 미련을 갖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열심히 외곽에 있는 아파트를 알아봤다.(엄마 : 빌라는 아무리 좋아도 돈이 안 올라아) 서울과 접근성이 좋고, 출퇴도 너무 힘들지 않으며 적당히 주변 상권이 괜찮은 곳. 우리가 가진 돈으로 이런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운 좋게도 역곡에서 찾았다. 아버지는 당장에 역곡에 집을 보러 갔고 내가 추천한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부동산 업자의 추천으로 그 옆에 있던 아파트(현재 우리 집)에 완전히 꽂혀서 우리에게 전화를 했다. 당장 계약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회사에 있던 나는 일단 우리도 그 집을 좀 봐야겠으니 계약금은 걸지 말고 좀 기다려보시라 했다. 그랬더니 당장 오늘 일 끝나자마자 픽업을 할 테니 가보자 했다.


오케이. 얼마나 괜찮은지 내 두 눈으로 봐주겠어.


카메라를 참 잘 보는 우리 집 댕댕쓰.


동산 업자의 차를 타고 난생처음 역곡에 갔다. 언젠가 가본 적 있는 곳처럼 적당히 번화하고 적당히 노후한 건물이 섞여있는 평범한 동네였다. 근처에 가톨릭대가 있어서 상권이 괜찮다는 업자를 향해 다들 기대 반, 회의 반이 섞인 얼굴을 끄덕이며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우리가 볼 집은 세대수는 적지만 알짜라며 업자 본인도 살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매물이 잘 안 나오는데 마침 운이 좋으셨다고. 나는 진심으로 그 말들이 사실이길 바랐다.


거의 사람처럼 자는 우리 집 댕댕쓰.


아파트는 지어진 지 10년 된 건물로 외관 컨디션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막 해가 질 무렵이어서 검푸르게 내려앉은 하늘이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작은 아파트 단지를 더욱 옹색하게 만들었다. 분리수거하는 곳도 보이지 않게 빠져 있는 게 아니라 후문 옆에 노출되어 있었고 방치된 아이들의 자전거도 어딘지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나는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옆에서 업자가 부지런히 수선을 떨어대고 있었지만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그냥 빨리 보고 나가서 더 괜찮은 곳을 검색해서 아버지한테 알려 줘야겠다 싶었다.


집주인 노부부가 우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뭔가 교인의 느낌이 드는 수더분한 부부였는데 집 곳곳에 놓여있는 성모상과 성경을 보고 역시나, 싶었다. 외관에서 느꼈던 첫인상과는 달리 내부는 넓고 깨끗했다. 손길이 좀처럼 닿기 힘든 곳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마 이 집에서 평생 살 생각으로 신경 써서 관리해오다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급히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았다.(나중에 알고 보니 딩크였던 딸 내외에게 아기가 생겨 딸 집 근처에서 황혼 육아를 하게 됐다고) 부부는 연신 우리를 따라다니며 이 집이 얼마나 좋은 집인지 성토했다. 이 근방에 이렇게 크게 빠진 아파트가 없어요. 채광이 좋아서 해질 때까지 불을 안 켜놔도 환해요. 바로 뒤에 운동하기 좋은 공원이랑 산책로도 있고 버스도 종일 다니고요. 그 말대로 베란다에서 공원이 보였다. 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문래동엔 안양천이 있어서 떠나오면 어디서 산책을 하나 아쉬웠는데 좋은 소식이었다. 몸을 빼서 공원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매미소리도 들렸다. 뭔가, 막혀있던 게 트이는 기분이었다.


거실에서 보는 뷰는 초록으로 울창하다.


안방, 거실, 작은방은 통 베란다로 연결되어 있어서 베란다 문을 잠그지 않는 이상 아무나 방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구조였다. 내 발은 자연히 그 방들과 떨어진 안쪽, 가장 깊은 방으로 향했다. 그 방은 개별 베란다가 딸려 있는, 안방 다음으로 큰 방이었는데 공원과 가톨릭대가 내다보이는 다른 방과 달리 맞은편에 다른 아파트가 있어 시야를 막고 있었다. 아마 한낮에도 빛이 깊게 들어오지 못하리라. 나는 그 방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 이곳으로 이사를 온다면 이 방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넓은 부엌이, 아버지는 탁 트인 거실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동생은 체리 몰딩이 촌스럽다며 끝까지 회의적이었지만.(아버지는 동생을 회유하려고 이사 후 모든 인테리어 권한을 동생에게 넘겼다.)


투어를 마치고 문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을 먹었다. 뭔가를 자축할 때 짜장면을 떠올리는 건 초등학교 졸업식 때부터 변함이 없다.(국룰인가)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에 한껏 들떠서 짜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막상 계약을 앞둔 엄마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는지 내내 울상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이 두 사람의 딸로 살아온 33년의 촉으로 감히 예견했다. 뭔 일이 터져도 확실하게 터질 거라고. 그리고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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