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동아리를 통해 배운 세상살이
지난 6년간의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술이고 그다음은 연극이다.
연극동아리에 들어간 순간부터 난 끝까지 할 줄 알았다. 중간중간 힘들어서 선배들한테 투정도 부리고 나간다고 이야기한 것도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런 경험도 해봐야 후배들한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모든 경험을 다해보자는 주의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험은 담배, 마약 그리고 죽음이다.)
연극에 어느 정도 진심이었냐면.
마지막 본과 4학년 때 떠나기가 너무 아쉽고, 연극을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계속 있던 차에 동아리 지도교수님과 이야기할 자리가 생겼다.
"넌 병원 수련 남을 거야?"
"교수님, 전 치과의사도 잘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연극하고 싶어요.."
"...."
"어시나 잘해"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지만 맞는 말이다. 지금 주어진 일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무슨 새로운 일을 또 찾아 나서려고 했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참 좋고 재미있다.
설경구, 유오성, 이문식, 송강호, 김태리, 류덕환, 이성민, 염혜란, 조우진, 김선영, 이정은 등..
영화나 드라마에 나와 어디서 이런 연기력 탄탄한 배우가 나타났지? 싶으면 대부분 연극배우로서 경력이 있는 배우분들이 많았다.
나 또한 그런 "연극"을 해봤다는 동질감에 연극을 했던 배우들이라면 더 눈을 초롱초롱 뜨며 연기를 보게 된다.
연극, 극단 생활을 시작하면 막내로서 휴지통 비우기, 바닥 청소, 선배들 밥 준비, 화장실 청소 등과 같은 하찮은 일부터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연극동아리는 달랐다.
과 동아리다 보니 사람이 귀했고, 이미 교내의 중앙동아리만큼 많은 20여 개의 동아리들 중 힘들고 다수가 기피함과 동시에 존경하는 동아리 중 하나였다. 숱하게 TV로 봤던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들처럼, 나도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을 당하는 건 줄 알았는데, 웬걸 처음부터 바로 연기를 하라고 투입이 됐다. 신입생들이 모두가 연기를 할 수 있게 투입이 되는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이 바로 예과 1학년 때의 첫 공연이다. 그 이후엔 동기들과 같이 무대 위에 서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더 의미가 있고, 모두 처음이라 서툴지만 함께 처음을 견뎌내라는 의미로 오디션도 보지 않고 투입시키나 보다싶었다.
우선 연극동아리 선배들과의 약속이 쭉 잡힌다. 내가 맛있는 걸 먹어서 기분이 좋은지, 좋은 사람과 함께해서 기분이 좋은건지 헷갈리게 하려는 선배들의 아주 탁월한 전략이다.
그렇게 한두 달간은 내 돈 안 쓰고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멋진 형들과 보낸다. 그러면 어느덧 중간고사 기간. 그즈음에 해서 이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이 시작된다.
대략 그 과정을 적어보면
의 과정을 일주일에 나눠서 한다.(난 항상 학교 축제기간이 연극학교 일정과 겹쳐 축제를 본과 3학년이 됐을 때 처음 가봤다.) 그리고 연극학교가 끝나고 쫑파티를 하면 학기 중 활동은 종강모임을 하고 끝이 난다. 정기 모임은 없고 2주 정도의(재시를 안 걸린다면) 방학을 노리고 나면 본격적인 연극 연습기간 시작이다. 대략 40~60일 정도의 연습기간 이후 본 공연을 올리고 쫑파티 후 그다음 주에 평가회까지 하면 한 학기가 연극 한 편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위 내용들은 이후에 또 자세하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들을 예과 2학년 선배들이 조교 역할로 연극학교를 진행한다. 본 1은 강사 역할 본 2(회장단) 이상은 고문 역할로 동방에 찾아와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신다.
처음 무대를 서면서 느꼈던 감정들, 연극 연습과정에서 느낀 재미는 내 기대 이상이었다. 연극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기대 두배 이상의 만족감을 느껴 굳이 모든 방학을 헌납하면서까지 연극동아리를 계속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말씀해주셨다.
" 한번 선택한 거면 끝장을 보라고"
그 덕에 졸업할 때까지 연극동아리 끝장을 본 사람이 내 학번엔 나 혼자였다. 연극을 이루는 다양한 직책들(연출, 새끼 스탭, 조명, 음향, 무대감독, 분장 등)을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 겪어보니 첫 무대 경험을 하고 나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가 깊은 연극동아리여서 20-30년 차이 나는 높은 개원해있는 선배들도 종종 찾아와 지원금을 주시기도 하고 조언도 해주신다. 주로 그렇게 선배가 오시면 술자리가 만들어지는데 그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하고 즐거웠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는 충분했다고 생각하고, 대학에 와선 공부 이외의 활동들을 더 열심히 했다. 몸과 마음이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책상물림이던 난 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쉴 새 없이 도전하며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로바로 실천으로 모든 것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는 연극동아리라고 하지만 정식 명칭은 극예술연구회다. 연극이 종합예술이라는 사실은 학년이 올라가며 다양한 경험이 쌓일 수록, 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더 와닿았다. 특히 연출을 하면서 무대 구성, 조명을 생각하면서 건축학도, 디자이너가 된 것 같았고, 배우들 분장, 의상을 신경 써주면서 의상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도 해보면서 10명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을 내가 추구하는 주제의 연극을 올릴 수 있게끔 설득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경험을 했다.
처음 연극동아리를 선택할 때 골랐던 이유는 이때 아니면 절대 연극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치과의사라는 안정된 전문직에 일찍이 편함을 추구하고, 나름 안정된 돈벌이가 보장되어있던 난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혀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려고 했고,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연극은 그래서 좋다. 지나고 나면 이렇게 고생한 기억들도 다 추억거리가 되고, 내가 성장하는데 거름이 되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콘텐츠라서.
조진웅, 김선영 등 TV에 나와 배우들이 극단시절 이야기하는 힘듦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는 힘듦을 좋아하는 변태여서가 아니라, 연극 과정의 힘듦을 극복해낼 수 있고, 그렇다 보면 그 이후 다른 힘든 업무는 미소를 띠며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성적순이라고 생각하는 교수님들도 여전히 많다. 성적이 전혀 모르는 누군가를 평가하는데 좋은 지표가 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책상머리 공부 외 다른 세상이 많다는 것을 연극을 통해 알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연극의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야. 틀을 벗어나, 연극을 봐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