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런 건 사기입니다
영상 번역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일감을 구하기 위해 사람인, 잡코리아, ProZ를 전전했지만 채용 공고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이력서를 보내도 열람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일감을 주는 업체가 없다면 내가 직접 일감을 찾겠다!'는 마인드로 미국 프리랜서 사이트인 Fiverr와 Upwork에 가입했다.
Upwork에 가입한 바로 그날,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한 이메일이 왔다. 캐나다 캘거리 대학교에서 부동산 수업 관련 영한 번역 일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1년짜리 계약에 하루 4시간씩 작업 시간을 확보해 달라고 하니, 앞으로 1년간 일감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영상'번역이 아닌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되는지 걱정도 됐다. 이러다 영상 번역을 영영 못 하게 되면 어쩌지...
계약서 작성에 앞서 번역 경험에 관한 간단한 질문을 받았다. 번역할 때 주로 쓰는 툴은 무엇이고, 정확하게 같은 뜻이 없는 단어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등...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다. 정성 들여 답했더니 계약서를 보내왔다. 설레는 마음에 계약서를 열어 보았는데 글쎼, 주 20시간을 일하면 시간당 $45를 쳐 주어 주급 $900을 주겠다는 것이다! 야호! '역시 기회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 오는구나!' 김칫국을 마셨다. 난 영상 번역을 배반했다는 생각에 약간의 미안함(?)이 들었지만, 영상 번역 업계에서 이런 후한 페이는 영원히 받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덜컥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페이를 받을 뱅킹에 가입했다. 요즘 원달러 환율도 높은데, 달러 벌이를 할 생각을 하니 저절로 신이 났다. 캘거리 대학교에서는 Fortify Banking이라는 은행을 쓰는데, 이 은행으로 페이를 받으면 바로 내 한국 계좌로 돈을 송금할 수 있다고 한다. 흠, 이런 선진적인 시스템이 있었던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최소$300의 잔액이 있어야 한다고? 돈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절차라고 하는데... 그게 돈세탁이랑 무슨 상관인지...
이쯤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다. 홈페이지는 참 그럴듯한데, 아무리 구글링을 해 봐도 포티파이 뱅킹을 쓴다는 사람은 없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사실 돌아보면 시급 45달러를 준다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 냉혹하고 짜디짠 번역업계에서 이런 일감을 경력도 없는 나에게, 샘플 테스트도 없이 맡길 리가 없잖아?
나는 이미 사기라는 것을 확신했지만, 못내 아쉬워 챗GPT에게 물어봤다.
피싱 사이트가 맞단다. 똑똑한 챗GPT는 피싱 사이트도 기가 막히게 판별해 낸다. 확인사살 해 줘서 고마워 챗GPT야. 근데 피싱 스펠링이 phishing이구나... 새로운 정보도 얻어 간다. 고맙다, 챗GPT!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간절히 일감 찾는 사람들한테 이따위 사기를 치다니,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기왕 칠 거면 돈 많은 부자들한테 치던가. 가난한 프리랜서 번역가가 뭐가 있다고... 참내... 벼룩의 간을 빼먹지, 퉤 퉤 퉤, 치질이나 걸려라!! 잠시 저주의 시간을 갖고 다시 일감 없는 프리랜서 번역가의 현실로 돌아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Upwork 사이트 외에서 계약을 맺으려고 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이런 사기가 빈번한 모양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메일로 연락이 오더니 왓츠앱을 통해 담당자를 연결시켰습니다. 업체와 계약을 할 때는 신중, 또 신중! 중요한 정보를 보내기 전에는 절대 의심을 거두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