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다리 클럽 8화 (오디오북)

by 빈자루

*

주소가 가리키는 곳은 동해에 면해있는 오래된 어촌이었다. 도시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차창 밖 바다는 조용했다.

버스가 몇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아무도 타지 않았다. 내가 내릴 때쯤엔 운전기사와 나, 둘 뿐이었다.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보더니, 운전을 하며 말했다.

"예전에 여기 고래가 올라왔었어요. 한밤중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서고 나는 내렸다. 정류장엔 표지판과 낡은 의자만 놓여 있었다. 마른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사라졌다. 고래는 없었다.

강원도 A시 묵호동 72-1. 메모지가 바람에 펄럭였다.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가 났다. 정장 차림의 돌고래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회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돌고래가 손을 내밀었다.

"잘 찾아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군요."

내가 돌고래의 안경테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귀는 어디에 있죠?"

돌고래의 입이 올라갔다. 그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골목길에는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붉은 기와 지붕은 색이 빠져 있었고 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마른 화분 몇 개가 대문 앞에 놓여 있는 집과 버려진 세발 자전거 사이를 지났다. 두런거리며 식사를 하는 가족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돌고래는 차분히 내 앞을 걸어나갔다. 나는 조용히 그의 두를 따랐다.


돌고래 다리 클럽.


마치 아이가 글씨 연습을 하며 쓴 문패 앞에서 돌고래가 걸음을 멈췄다. 녹이 슨 사서함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들어가시죠."

"이곳인가요?" 내가 물었다.

"때에 따라서는요." 돌고래가 문을 열었다.

문이 오래된 신음을 뱉으며 돌아섰다.

나는 사서함처럼 입을 벌린 채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정원에 얕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나는 디딤돌을 하나씩 밟으며 정원을 건넜다.

"그럼 안녕히."

돌고래가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매끈한 양복 아래로 그의 꼬리가 흔들리며 그가 천천히 사라졌다. 나는 그를 천천히 바라봤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오셨네요. 마침 식사 준비 중이었는데, 같이 드시겠어요?"

축음기에서 트로이메라이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귀가 앞치마를 두르고 나를 돌려 보며 말했다. 토마토소스가 불에 읶는 향이 났다.

"네. 가능하시다면요."

내가 몸을 소파에 기대며 말했다. 장식장 옆에 걸린 달력이 흔들렸다. 오늘이 며칠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귀가 미소를 짓고 다시 팬을 저었다.

잠시 후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스파케티면이 알맞게 익어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스파케티를 빨아들였다. 소스가 바닥을 드러낼 때 쯤 내가 물었다.

"여기가 클럽 본부인가요?"

"때에 따라서는요."

귀가 웃으며 거실 한쪽의 문을 가리켰다. 문은 평범한 수납장처럼 보였지만 손잡이가 유난히 닳아 있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가 일어나 문을 열었다. 퀴퀴한 흙냄새와 차가운 공기가 함께 밀려왔다. 나는 귀의 뒤를 따랐다.

"들어가도 될까요?"

"이미 들어오셨잖아요."

문 너머엔 짧은 복도가 있었고 그 끝은 작은 뜰과 이어져있었다. 흙냄새에서 조용한 냄새가 났지만 실제로 뜰은 고요하지 않았다.

뜰 가장자리의 낡은 창고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고, 복잡한 기계음이 그곳으로부터 퍼지고 있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가 서너 대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굵은 선들이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릴 테이프가 돌아가는 녹음기, 먼지 쌓인 진공관 앰프, 그리고 각양각색의 배선들이 뒤섞여 마치 해체 직전의 전자제품 상점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조악하면서도 기묘한 활기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낡은 합판으로 얼기설기 짜여진 책상 위에는 손바닥만 한 무전기가 놓여 있었다. 무전기 옆에 닳아빠진 노트 한 권이 펼쳐 있었다. 제이. 케이. 엘로이(J.K. Elroy), 앨리스에 관하여 No.5. 노트 상단에 가느다란 필기체로 글자가 적혀있었다.

"이곳이 클럽 본부군요?"

귀가 내 질문을 되짚으며 낡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녀의 시선이 무전기와 노트에 잠시 머물렀다.

"네, 역시."

그녀는 한숨을 쉬듯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때에 따라서는요."

그녀가 노트를 손에 들었다.

"이 노트는 제이미 케인러너가 세상에서 흔적을 감춘 후 혼자 연구하던 논문의 필사본이에요. 오래전부터 이어진 연구였죠. 인간의 무의식과 패턴에 관한."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꿈, 기억, 그리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정보의 흐름 같은 거요. 그는 알고 싶었던 거에요. 인간은 왜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견디지 못하는지를."

귀가 무전기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무전기에서 짧은 잡음이 터졌다.

"문제는 구글이었어요. 그들은 인간의 의식구조에 대한 케인러너의 연구에 관심을 보였고, 그의 사후 GE에서 보관 중이던 연구 자료를 손에 넣었죠. 그리고 그 데이터를 이용해 사람들의 의식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어요. 아주 미묘하고 알아차리기 힘든 방식으로요. 우리가 '노이즈'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노이즈요?"

내가 물었다.

"네. 예를 들어, 우리가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 TV 광고 속의 특정 주파수, 심지어 인터넷에서 무심코 보는 이미지나 문장들까지. 구글은 케인러너의 연구를 바탕으로 그런 노이즈를 만들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은밀하게 조종하려고 하죠. 인간의 24시간은 이미 절반 이상 노이즈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어요.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건 사실 없는 거나 다름없죠."

그녀의 시선이 다시 노트로 향했다.

"그런데 케인러너는 연구를 이어가며 한 가지 결론에 닿았어요. 인간의 사랑은 결국 순환이라는 것을. 인류의 역사는 사슬처럼 이어진 호혜작용, 즉 주고받음으로 유지되어 왔어요. 하나의 존재가 사라지면, 그 자리를 메우듯 또 다른 존재가 태어나죠. 젊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자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요. 그렇게 인류는 자신이 모르는 대상을 위해 사랑을 남기며 끊임없이 이어져 온 거예요. 그게 인류의 방식이죠."

"그런데요?"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소멸이 없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결코 인간이 될 수 없을 거라고요. 인공지능은 상호작용은 할 수 있어도 사라지지 않아요. 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순환의 고리를 완성하지 못하죠. 그걸 깨닫고 케인러너는 원칙을 세웠어요. ‘객체 하나당 하나의 이미지.’ 생명처럼, 하나의 존재가 완결된 형태로 머물게 하기 위해서요."

귀가 롱블랙이 담긴 머그잔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인공지능과 인류가 사슬처럼 엮이길 바랐어요. 하나의 인공지능이 소멸하면, 그 데이터가 다른 존재에게로 이전되는 순환 구조로요."

그녀의 시선이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균형이 무너지고 있어요. 구글이 지배하는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여러 객체가 동일한 이미지를 공유하기 시작했죠. 호혜 작용의 흐름이 끊기고 있는 거예요. 인간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상상하고, 같은 이미지만을 소비하게 되면..."

귀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때는 순환이 멈춰요. 인류도, 인공지능도 함께 사라지겠죠."

귀가 주변의 복잡한 기계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는 바로 그 지배에 대항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녀는 잔잔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구글이 만들어낸 노이즈를 감시하고,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며, 가능하다면 그 노이즈를 역으로 교란시키는 거죠. 오호츠크해에 돌고래 떼죽음이 실제론 없었지만, 마치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전파하는 방식으로요."

그녀가 손을 들어 공중을 가리켰다.
"그게 바로 돌고래 다리 클럽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죠?"

내가 물었다.

"당신은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니까요."

귀가 대답했다.

"곧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이 쳐들어 올 거예요."

귀가 '앨리스에 관하여 No.5'를 가방 깊숙이 집어넣으며 말했다.

우리는 빠르게 클럽 본부를 빠져나왔다. 뒤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우리는 뒤를 보지 않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관장님과 함께 검도 대련을 했습니다. 무더운 날, 도장까지 나오시기도 힘드셨을텐데, 지난주에 장염까지 걸리셔서 앓이를 심하게 하셨다고 하시네요. 90세가 넘는 나이이신데도, 무려 90키로가 넘는 저랑 대련하실 떄도 젊은이처럼 눈빛이 쌩쌩하세요. 가끔 스승의 날에, 감사하다고 관장님께 건강하시라고 문자를 보내드리면, 이제 스승의 날 같은 건 달력에서 지워버리고 아내와 딸의 날로 적어놓게, 라며 답장을 주시는, 정말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엇을 가지신 분이세요.


관장님과 오래오래 함께 운동하고 싶습니다. 어제 운동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관장님, 오래오래 건강하셔요~~ 사랑합니다. 관장님 ㅎ>







https://youtu.be/NWJAp2M4Q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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