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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 이야기 :
스칼렛 요한슨은 의외로 털털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면접장에서 만난 그녀는 내가 래리에게 꽂아 넣었던 돌려차기를 다시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뒤돌려차기를 할 때마다 스칼렛은 "Jesus!", "Oh my gosh!", 하며 신들을 연달아 소환했다.
역시 나는 오디션에 합격했다.
스칼렛은 슈팅 현장에서도 나를 각별히 챙겨 주었다.
"귀, 이 장면에서는 나의 빼어난 몸매가 카메라에 잡히는 게 중요해. 쎅쒸하지만 너무 노골적이진 않게. 유 노 왓 암 민?"
나는 뒤돌려차기를 했다.
스칼렛과 스태프들이 다시 신들을 연달아 소환했다.
나는 한 번 더 뒤돌려차기를 했다.
신들이 촬영장에 두 번째로 튀어나왔다.
촬영이 끝나고 스칼렛이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스칼렛은 두 명의 남편들과 이혼하고 아이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험이 많았다.
"아이 노우, 아이 노우, 아이 노우 왓 츄 민."
돌고래를 만나고, 제이미 케인러너의 연구 자료를 접하고, 기린을 만나며,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을 무찌르러 구글의 본사까지 쳐들어갔던 일.
그리고 차마 다른 여자를 그리워하는 기린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던 사정들까지, 스칼렛은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해해주고 공감해 주었다. 이래서 할리웃, 할리웃 하는구나, 나는 한 번 더 생각했다.
"죽은 제이미 케인러너의 목소리가 기린에게 전화를 걸었었다는 게 이해가 되세요?"
내가 물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편. 아르님 졸라."
스칼렛이 이어 말했다.
"귀, 마블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마블 노우즈 에브리씽."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참 남자란 이상한 동물이죠. 어째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여자들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지. 정말 소중한 사람은 옆에 있는데. 잘해주면 귀한 줄을 모른다니까요. 데이아 올 콤플릿틀리 이디엇츠. 바보 멍청이들이야."
스칼렛이 스파클링 와인을 시원하게 넘겼다. 이 여자가 한국에 있었다면 맥주 광고 서 너개쯤은 씹어 먹다가 뱉었겠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의 방에서 제이에 대한 기린의 속마음을 알고 그와 함께할 수 없었단 말에 요한슨은 같이 흥분해 주었다.
나는 말 없이 모스카토를 홀짝였다.
톡 쏘는 맛이 쇄골 아래를 타고 흘렀다.
몸이 조금씩 뜨거워졌다.
"어떻게 그렇게 제 마음을 잘 아세요? 그들은 정말 이기적이고 어리석어요.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심취해 있을 뿐이죠. 그러면서 정작 사랑을 할 때는 몸 밖에 몰라요. 데이 올 모론."
나의 격양된 외침에 스칼렛이 잠깐 움찔했다.
인크레더블 헐크,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호크 아이.
그녀를 스쳐 갔던 많은 영웅들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숨을 가다듬고 그녀가 차분하게 말했다.
"귀, 유아 쏘 뷰티풀. 앤 영. 나도 이 남자 저 남자 다 만나 보고 차기도 하고 차여보기도 해서 알아요. 유아 펄팩틀리 롸이트. 얼간이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즐겨요. 저스트 don't waste your time — live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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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언덕으로 올라갔다.
해는 지고. 별은 뜨고 있었다.
언덕 아래 화려한 불빛들이 지는 해와 맞물리며 지평선이 보라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에 불이 들어왔다.
나는 가로등 아래 벤치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뾰족구두 속의 발가락이 아팠다.
나는 허리를 숙여 노란 스커트 아래의 힐을 벗었다. 가방에 숨겨 놓았던 편안한 슈즈를 꺼내고 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낮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나는 리듬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크고 잘생긴 남자가 어둠 속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팬시한 하얀 와이셔츠에 반쯤 풀린 넥타이. 잘생긴 턱 아래서 짧은 넥타이가 흔들거렸다.
남자가 한 손은 주머니에, 한 손으론 싱글 재킷을 어깨 너머로 넘기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가 벤치 끝에 걸터앉으며 내게 인사했다.
단정한 이마 아래로 긴 눈매와 코가 드러났다.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Hi."
그가 나를 보며말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맙소사.
라이언 고슬링이었다.
<오늘 하려고 했던 작업을 모두 마무리해가네요. 바쁘신 중에도 읽어주시고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어서 마무리하고 딸아이 데리러 가야겠어요. 딸. 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동안 아빠도 열심히 놀고 있단다. 사랑한다.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