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 잔을 잡을 때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형님의 손 끝은 베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베듯 가늘게 떨렸다.
그 떨림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형님이 베고 계신 그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형님은 무엇을 보고 계신지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도 부러 형님에게 그것을 묻지 않았다.
나는 다만 말하지 않은 형님의 무엇을. 부정하듯. 부정하듯. 더는 짐작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스승님...
칼을 배우기 전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칼은 남을 해하는 것이야요. 저는 칼을 배우지 않을 것이야요."
조평 형님은 내게 칼 쥐는 법을 가르쳐주셨었다.
"흠. 됐다."
양명 형님이 내 손아귀에서 칼을 뽑아 버리고는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나는 칼에 힘을 빼는 법을 양명 형님에게 배웠었다.
"왜 강해지고 싶은 게냐?"
조평 형님이 물으셨었다.
"예 사형."
"너 지금 사형이라고 불렀느냐?"
조평 형님이 벙긋 웃으며 물으셨었다.
"한번 더 그 따위로 칼질을 할 생각이면 내 손에 댕강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줄 알아라."
양명 형님이 크게 소리치셨었다.
"흥."
무림촌에 스며들어 칼을 배우는 나를 보고 명월이 치맛바람을 날렸었다.
"오라버니를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것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어."
형님들이 떠나가신 후 명월이 그렇게 말했었다.
스승님.
스승님...
사형들과 스승님을 만나기 전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홀로였다.
나부끼는 살구꽃.
흔들리는 분홍치마.
다시 사형들과.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양명이 실패했습니다."
구걸륜이 정사홍에게 보고했다.
"흥. 역시. 쓸모없는 자이군."
정사홍이 대답했다.
"후보를 교체할까요?"
구걸륜이 물었다.
"아니. 아직 그대로 두게. 아직은 타이밍이 아니야."
정사홍이 이어 말했다.
"마타도어들을 기용하게. 태극기 부대와 사랑땡일교회 목사에게 연락을 취하고."
그가 말했다.
"싸이버 렉카 몇을 뿌려. 뺏어올 수 없다면. 깎아내리면 그만."
그가 입을 꼬았다.
"이제 개싸움이 시작되는군."
만족하다는 듯 그의 웃음이 계속되었다.
*
"실패했습니다."
조평이 김사인에게 말했다.
"양명은?"
"장수 후보를 설득하기 위해 왔으나 그자도 실패하였습니다."
조평이 대답했다.
김사인이 말이 없었다.
"고작 0.2%에 불과할 뿐입니다."
조평이 말했다.
김사인이 말이 없었다.
"아직 무림맹과 박빙인가?"
그가 물었다.
"예."
조평이 대답했다.
"개딸들과 똥팔육을 소집해."
김사인이 하명했다.
"존명."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집결시키도록.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존명."
조평이 물러났다.
"흥. 고작 0.2%에 불과해?"
김사인이 홀로 말했다.
"믿을 수 없군... 조평."
조평이 사라진 곳을 김사인이 응시하였다.
그의 눈이 싸늘하였다.
*
[속보] 똥팔육 포럼 성명 발표 "양명은 민주화의 대의를 팔아먹는 수박"
[실시간] # 사랑땡일교회 # 전땡땡 #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출근시각.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장수는 아랑곳없이 지하철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거북한 표현이 있다면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