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_ 무엇

by 빈자루

"이놈들!"


불안하게 떨리던 파장이 일순 사하였다.


귀와 골이 세게 진동하였다.


"이놈들! 감히 너희가 칼을 겨누느냐!"


나와 사형들이 모두 칼을 거두었다.


승광 사숙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석장으로 바닥을 크게 치었다.






"너희가 오온을 욕보이느냐!"

승광 사숙이 말씀하셨다.

쿵.

사숙이 바닥을 다시 찧었다.

사숙의 노기가 바닥과 척추를 훑었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쿵.

무릎이 풀렸다.

사숙이 말씀하셨다.

"양명! 너는 의를 위한다는 자가 어찌 사제를 위하는 마음이 없느냐!"

양명의 고개가 꺾였다.

"조평! 너는 협을 행한다는 자가 어찌 도모에 옳고 그름이 없느냐!"

조평의 검 끝이 바닥에 늘어졌다.

"장수! 너는 어찌 너의 입신 없이 사형들의 싸움에 휘말리느냐!"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쿵.

사숙이 석장을 바닥에 찧었다.

"네 세 놈의 치욕이 무림을 가르는구나!"

사숙이 석장을 거두었다.

사숙의 안광이 사라졌다.

사숙이 걸음을 돌렸다.

사숙이 사라졌다.

형님들과 나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

"맹주가 나에게도 너를 포섭하라 일렀다."

양명 형님이 말씀하셨다.

붉은 닭발이 불판 위에서 익고 있었다. 형님이 소주를 털어넣으셨다. 형님이 쓰게 술을 삼켰다.

"무림맹의 사정이 좋지 않다. 하긴. 야인으로 지낸 나를 후보로 올릴 정도니. 조평. 그래도 너는 김사인의 신임을 얻고 있지 않느냐. 김사인은 공과 벌에 엄격한 자라지? 그자의 밑에서 사파밥을 오래 먹었으니 너에게도 공이 있지 않느냐."

양명 형님이 조평 형님에게 말했다.

조평 형님이 말이 없었다.

닭발이 타들어가며 매케한 연기를 뿜었다. 양명 형님이 쿨럭 닭발을 뒤집었다.

조평 형님이 말했다.

"공과 벌에 엄격한 자이지요."

조평 형님이 소주를 넘겼다.

"다만 자신의 공에만 감각할 뿐."

형님이 잔을 탁자에 놓았다. 잔에 다시 술이 부어졌다. 술의 빛이 투명하였다.

"형님. 저도 사표를 가슴에 품고 삽니다. 약한 자들을 긍휼하겠다는 거. 사파는 이미 약한 자들을 표로 계산합니다. 자기들 자리를 보신하겠다는 거. 정파 대가리나 사파 대가리나 한가지입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놈들. 위선이나 떨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형님이 잔에 술을 부었다. 술의 빛이 투명하였다.

"위선? 위선이라도 떠는 것이 어디냐. 정파 놈들은 사람을 개돼지로 안다. 놈들에겐 위선조차 없어. 놈들에게 인민은 표를 가진 개돼지일 뿐이야. 지극히 단순하게 먹고 싸고 욕망하는 개돼지. 놈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거리낌이 없어. 자신들이 개돼지이니 자신들을 지지하는 자들 또한 개돼지로 취급하지. 위선이라도 깔고 있는 자들은 차마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지 못할 것 아니냐?"

양명 형님이 말했다.

형님이 조평 형님의 잔에 술을 부었다.

"형님. 차라리 정파가 낫습니다. 정파는 인간이 가진 욕망을 인정이라도 해주지 않습니까. 사도연합은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인간은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놈들이 투입하면 투입대로 출력되는 것. 그게 사파가 인간을 보는 관점입니다. 놈들은 인간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조평 형님이 다시 술을 부었다.

두 형님의 잔이 지속 비워지고 채워졌다. 형님들의 잔이 빠르게 돌았다.

"쳇. 차라리 마교의 방식이 옳았어. 개돼지와 기계론자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에게 표싸움을 벌이고 있어. 의니 협이니 개소리들 집어치우라지. 어짜피 가진 놈이 다 가질 거라면 지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방식이 나아. 이긴 놈이 진 놈 엉덩짝이나 두들기라고 하라지. 선거니 민주주의니. 다 개놈들 헛짓거리에 병신짓이야!"

양명 형님이 말했다.

형님이 술병을 거꾸로 들었다.

마지막 남은 술의 방울이 잔의 속으로 떨어졌다. 형님이 잔을 쓰게 털었다. 형님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장수야... 너는 장난질에 속지 말거라."

양명 형님이 중얼거렸다.

"대의민주주의? 놈들은 표를 받으면 전체를 다 가진 것 처럼 군다. 정작 중요할 때는 국민들에게 묻지도 않는다. 국민이 뽑은 선출자. 국민의 뜻. 빌어먹을 놈들은 과반을 넘기면 제 욕망에 국민의 뜻을 갖다 붙인다. 놈들처럼 되지 말아라. 놈들에게 너의 중요한 것을 주지 말아라. 너는 사형들처럼 되지 말거라. 너는 괴물이 되지 말거라."

양명 형님이 탁자에 고개를 박고 흐느끼셨다.

양명 형님의 어깨가 떨렸다.

"형님. 그만하시지요. 많이 취하셨습니다."

내가 형님의 어깨를 쥐었다. 형님이 신음하였다.

"... 내가... 사부님의 곁을 지켰어야 해... 내가..."

"형님..."

형님이 대답하지 않으셨다.

나는 더는 형님을 깨우지 않았다.

"많이 취하신 모양이구나."

조평 형님이 말씀하셨다.

그의 손이 느리게 잔을 쥐었다.

형님의 눈매 또한 붉었다.

"저리 술에 취해서라도 잊으실 수 있다면 다행인 것이다. 술에 취한다 한들 더욱 또렷이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형님이 잔을 넘겼다.

형님의 눈이 슬피 보였다.

말이 없으셨다.

형님의 눈이 슬피 보였다.

형님이 잔을 넘기셨다.

잔을 넘기는 형님의 모습에 나 또한 형님이 슬펐다.

형님이 슬피 무엇을 떠올리시는 듯 했다.

나 역시 형님이 슬피 떠올리시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 했다.

형님이 잔을 넘겼다.

형님이 슬피 잔을 넘겼다.

형님은 잔을 멈추지 않으셨다.

형님이 잔을 잡을 때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형님의 손 끝은 베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베듯 가늘게 떨렸다.

그 떨림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형님이 베고 계신 그것을 보고 있는 듯 했다.

형님은 무엇을 보고 계신지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도 부러 형님에게 그것을 묻지 않았다.

나는 다만 말하지 않은 형님의 무엇을. 부정하듯. 부정하듯. 더는 짐작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스승님...






https://youtu.be/YDhIHx5bGIM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육회는 맛이 있는데 소화가 잘 되지를 않네요. 맛이 있지만 조금씩만 꼭꼭 씹어서 먹어야 겠어요. 광장시장의 육회는 정말 맛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자매집의 묵은지육회비빔밥을 추천합니다. 고추장 베이스가 아니라 묵은지 베이스인데 육회와 묵은지의 씹는 조합이 아주 좋습니다. 또 먹고 싶은데 소화가 잘 안되네요. 다음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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