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그 사이 어딘가

[신앙과 예술 #1]

by SY

C between B and D

"Life is the Choices we make between Birth and Death."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 우리가 만드는 선택들이 결정한다."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가 했던 말이다.


우리 모두가 맞이할 죽음에 대해서 노래하는 곡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이찬혁의 "장례희망"

자신이 죽고 치러질 장례식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곡이다.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갈 확신이 있기에 그의 장례식은 파티가 된다.

'장례'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단조 (minor)를 선택했고, 조곤조곤 일기 쓰듯 덤덤히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더불어, '희망'을 나타내는 후렴구의 반전은 무대를 압도한다. 예술가이자 신앙인으로의 고민과 묵상이 녹아져 있는 곡이자 하나님께 바치는 한 편의 시 같아서 정말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가사의 일부를 살펴보면,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눈물과 곡이 가득한 장례식이 아니라, 축하와 환호성이 가득한 파티가 되길 바란다는 그의 고백에는 '부활 신앙'이 정확하게 담겨있다. 그가 천국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 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본 것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사자와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친구가 되어 뛰어노는 모습이다. 창조 질서가 회복된 모습이자, 유다의 사자이신 예수님이 떠오르기도 하는 장면이다.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이사야 11:6)”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그리고 그의 장례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역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렴구에서는 분위기의 반전을 맞이한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이때 찬혁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뛰며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를 외칠 때, 그 단어는 그저 음 (note) 사이를 채우기 위한 텅 빈 주문이 아니었다. 종종 사람들은 원래 의미를 없애버리거나 아예 반대의 의미로 이 단어를 쓰곤 하는데, 그는 이 단어의 의미와 맥락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다윗이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 뛰며 찬양했던 모습과 겹친다.

머리를 쾅 한 대 맞은 듯하네
이제 머리는 없지만 알기 쉽게
모든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뭣 같고 즐거웠어 삶이란 게

그렇다. 우리는 모든 걸 다 알지 못하는 정말 연약한 존재다. 사르트르가 말했던 것처럼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불완전한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이 삶을 결정하곤 한다. 어쩌면 이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고백이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우리는 너무도 불완전한 인간이고 죄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우리의 꽤 많은 선택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지고 온다. 그것이 나쁘든, 좋든 상관없이. 그래서 우리는, 삶의 선택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공평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정말 기쁘게 "할렐루야"를 부르며 예수님을 만나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그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만 한다.


청룡영화제에서 찬혁이 이 곡을 부른 이유

'파노라마'라는 곡과 함께 '장례희망'을 청룡영화제에서 찬혁이 축하공연으로 부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정말 크다.

누구보다 화려한 조명과 갈채 속에서 살아가는 연예인들 앞에서 샴페인을 흩뿌리며 노래를 하고 난 다음, "Error"가 적힌 관짝에 신나게 춤추며 들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관 안에 들어간 채로 퇴장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가네 파노라마처럼

이건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뜬금없이 할렐루야를 외치더니 관짝으로 웃으며 들어가며 퇴장하는 모습을 보며 시상식장의 연예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존 케이지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고 4분 33초짜리 공연을 했을 때처럼, 그저 괴짜스러운 해체주의 공연쯤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의도적으로 장례희망의 후렴구를 부른 이유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수많은 버킷리스트 다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음 이후의 삶--당당하게 저렇게 관짝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확신--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로 보였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이 주신 삶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에, 파노라마처럼 짧게 지나가버릴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들 실컷 하며 살고 싶다고 외친 것이다. 화려한 조명 뒤에 중독과 자살의 문제로 허덕이는 연예인들에게 죽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외친 것이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으로 수많은 부를 이뤘지만, 최빈국에서 원조국이 되었지만,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인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한 것이다. 절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말라고, 파노라마처럼 너무나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삶인데,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면서.

“핏덩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했다. (에스겔 16:6b)”


그리고 "할렐루야" 후렴구를 부르는 그는,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가 않은 것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게 요즘 현실이다. 크리스천들조차도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남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말한다. 그리고 무신론, 불가지론,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한 대한민국의 상황이다. 여기에 네오막시즘까지 더해져, 손에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나 이상향에 대해 이야기하면 자칫 촌스러운 사람이 돼버린다. 그런데 찬혁의 노래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신앙이 있든 없든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천국”이라는 단어를 상기시켜 주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삶을 위한 선택

찬혁은 예수님을 믿는 선택을 했기에, 죽음이 두렵지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도 예수님을 아는 선택을 하고, 자신처럼 기쁨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라고 외치고 있다.



오랜만에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겸비한 신앙인의 작품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 이런 좋은 예술 작품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리고 나도 이런 내공으로 그림과 출판 작업물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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