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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ing Tree Dec 26. 2016

당신은 네살때 어땠어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주는 자괴감에 대하여...

네살 반이 막 넘어가는 우리 이대표님이 요즘 유치원에서 심기가 불편하신지 말썽을 많이 피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생님께서 지나치듯 건네주시는 정보에 의하면 옆에 아이를 귀찮게 군다거나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할 때가 종종 있고 최근 한 한달내에 그런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나도 얼마전에 그를 데리러 갔다가 한 선생님께서 산타 할아버지 얘기를 하시며 선물 못받으면 어떡하냐며 겁을 주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고, 아이의 매일 받아오는 메세지에 수업태도에 대한 코멘트를 읽어서 알고 있는 바였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순간적으로 아이에 대해 걱정이 되거나 겁이 난다거나 혹은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수 있지만 그래도 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비교적  평온했다. 사실 뭐.. 우리 아이가 전혀 말썽을 부리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나 기대따위는 애초에 없었고 그런 모습 또한 네살박이 남자아이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도 했기에일단 아이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쿨한 엄마로서의 접근 방법이었다.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엄마가 몸이 안좋아서 충분히 바깥놀이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에 놀러가서 한달동안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까지도 참 좋았다. 아마도 여기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끝냈으면 참 훈훈한 이야기였을 텐데 마지막에 굳이 아이를 계몽해보고자 한 나의 오만함이 문제가 되었다.


하필 다음날은 유치원 크리스마스 파티 공연이 있었었고 나는 아이가 공연에 잘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런 저런 훈계를 하였다. 이를테면 내일 파티에 산타할아버지가 오시는데 산타 할아버지는 누가 착한 아이고 나쁜 아인지 다 알고 계신데. 그래서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시니 너도 내일 공연에서는 선생님 한테 집중하고 친구들 괴롭히지않았음 좋겠다는...뭐 지금 생각해도 내 스스로 너무 부끄러운, 결코 하지 말았어야 할, 씨알도 안먹히는 구닥다리 잔소리 드립을 내가 하고 만 것이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 결국 선물을 받기 위한 지침들로 가장한 내 메세지의 요지는 엄마 창피하지 않게 잘좀해! 였던 것이지.


결국은 나도 내 아이가, 내 앞에서 온갖 우스꽝스런 행동을 해도 마냥 사랑스런 내 네살박이 아들이 남들의 눈이 모임 곳에서는 교양있는 아이로 비춰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He's gonna find out who's naughty or nice라고 노래를 하면서도 '엄마, 나는 naughty 가 좋아, 나리 나리 개나리~'라고 주장하는 분이고, 예배 시간에 다같이 기도하자는 목사님 말씀에 '나는 기도 안할거야. 절대 안할거야.' 라고 큰소리로 얘기해서 모든 집사님들의 궁금증의 대상이 된 분이다. 그렇다고 대책없는 망나니과도 아니라서 사랑이 많고 붙임성 좋아 모르는 사람한테 말도 잘 걸고, 한번 규칙을 세우면 스스로 제법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이쁜 아이다. 단지 거부할 수 없는 B형의 핏발로 인해 자기 주장이 강하고 한번 생각한 것은 입밖으로 꺼내야 하고 목소리가 크고 눈치가 없다는 것.... 체력이 저질이라 쉽게 피곤이 찾아오고 그럴땐 대책없는 짜증드립을 한다는것.. (시작하니 끝도 없군). 이 모든 대표님의 모습이 사실 나에게는 장점/단점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의 모습이다. 내가 다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그의 모습...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만큼의 고집과 기로 지지 않는 그의 모습이 좋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은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버릇이 없거나 욕구불만이 있는 아이처럼 비춰져서 엄마로서의

내 모습에 행여 흠짓이나 갈까봐? 엄마들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지만... 이런 굴레는 빨리 깨졌음 하는 바램이다.


결국 나의 훈계에 기분이 나빠진 대표님은 다음날 공연에서 좀비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입만 벙긋 하고 아무런 율동도 따라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좋다고 그런 아들의 공연을 비디오에 담았다. 공연이 끝나고 대표님은 나와 아빠에게 와서 안겼다. 산타 할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선물을 안주실 지 모르겠으나 엄마 아빠는 그가 공연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건 상관 없이 그를 껴안아줄 것이라는 그 엄청난 믿음으로 우리에게 달려오는 그를 안안아줄 수가 없었다. 공연을 망친 아들 덕분에 나는 아주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나는 절대 존재하지도 않는 산타 할아버지를 이용해 아이에게 댓가성의 선행이나 옳은 행동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대표님은 고작 만네살이다. 아직은 사십분 수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고 줄을 완벽히 설 수 없으며 친구를 대할때 실수도 할 수 있을 법한 나이다. 지금은 이 모든것들 완벽히 해내야 하는 나이가 아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그런 이유들로 선물을 주시지 않는다면 나도 됐다. 그 어떤 선물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이 아이에게 내가 직접 선물을 배달 할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세상에 넘쳐나는 육아지식에 빗대어 볼 때 나는 참 무능력한 엄마다. 그 훌륭한 지침서들을 아무리 지켜내려 노력해도 절대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들을 상담할때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나도 안되는 걸 알고 있기에... 말해놓고 보니 더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더 많은 엄마들이 용기내어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해주길 바란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육아정보를 알고 지침을 따르는 것에 있지 않음을.. 같이 생각해보길 원한다. 육아정보를 찾는 시간에 온전히 내 아이에게 집중하고 바라보고 관찰하고 눈을 맞춰주길....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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