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지나가고 있다. 바람과 함께 쏜살같이 지나가는 2017년의 뒤꽁무니에서 나는 두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독립출판이라는 것을 경험해 봤고 몇 분의 엄마들과 네 명의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심리상담과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 내 뇌구조 속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단연 전두엽이며 주로 멀타이 태스킹을 유지하는데 전두엽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장염에 걸려 하루에 열 번씩 변을 지리는 둘째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서 세탁기가 언제 끝나는지, 이 아이의 다음 식사 시간은 몇 신지 체크하고, 첫째 아이의 학교 과제의 완성도에 대해 평가하며 저녁 메뉴를 짜고 문자를 확인하며 아마존으로 생필품을 오더 하는 일 따위에 내 전두엽의 80프로가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나 예능을 본지는 백만 년이 지났고 가끔 짬이 날 때 유튜브에 들어가서 JTBC news를 보는 것이 미디어 타임에 전부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도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기는 일도 없었다. 내 삶엔... 적어도 요 몇 달간...
혹시 첫 문장을 읽으며 저 여자가 육아 스트레스로 당장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듯한 마치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삶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섣부른 위로나 공감은 정중히 사양한다. 나는 미친 듯이 바쁘고 육아 스트레스에 덤으로 가족 하나 없는 타지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체 살림 스트레스까지 지고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된 내 삶을 후회한다던지 혹은 지금의 내 상황을 비관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엄마라는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가꾸고 발전시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많은 엄마들이 엄마라는 직업을 힘들어할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연구가 수많은 책과 지인과의 수다와 내담자들과의 상담과 멘토링, 그리고 내가 부딪힌 직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답을 얻어가고 있는 듯하다.
엄마들이 엄마 노릇을 힘들어하는 것은 엄마라는 정체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아와 엄마로서 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준들이 뒤엉켜 자아내는 부정적 감정인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대한민국에서 김 과장으로 살아가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82년생 김지영으로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어떤 위치 어떤 자리든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에 사회적 관심과 구조적 갈등이 집중되어 있다. 그 집중된 관심으로 인해 전혀 엄마라는 위치가 안 힘든 엄마들도 어느새 '나는 힘들어' 아니 '나는 힘들어야만 해' 아니 '나는 억울해' '나는 억울해야만 해'라고 조금은 억지스럽게 자신을 그 틀에 끼워 넣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다 엄마가 되고 어느 정도 엄마로서의 의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시절에 우리 어머니들은 애도 많이 낳고 밭일도 하고 집안일도 다 했다. 물론 햇가족화 되기 이전 시대에 살던 우리 어머니들은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많았고, 친환경 기저귀나 유기농 이유식 따위를 따지지 않아도 됐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굳이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냐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굳이 비싼 교구나 가베, 책 육아, 엄마표 영어 등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 그 시절에 갈아주지 않아 짓무른 아이의 엉덩이를 보고 속상한 엄마 마음은 지금도 우리 시대 엄마들이 느끼는 속상한 감정이다. 하지만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는 않았을 듯하다. 먹기 살기 위해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을 한 엄마가 그것의 고귀함을 자각하지는 못할지언정 죄책감 따위가 웬 말인가? 옆집 엄마가 아이에게 더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아이의 꼬까옷을 더 이쁘게 만들어 입힌다고 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럴까? 왜 끊임없이 비교하고 따지고 가져야 하고 해줘야 하고 그러지 못해 속상해하는 것일까?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이룬 이 시대의 엄마들은 왜 더 불행하고 이미 해주고 있는 것보다 못해준 것, 잘해주지 못하는 것만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그 근본적인 이유가 나라에 있다고 사회적 제도에 있다고 성차별에 있다고까지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한 걸까..?
여자들이 누릴 수 있었던 것들, 선택할 수 있었던 것들, 당연스럽게 존중받아 마땅했던 자신들의 존재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부터 불행한 감정도 함께 증가했다. 여성의 인권이 존중받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그래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는데 선택하지 못한 어떤 상실감에 지나치게 집중해 있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김지영 씨가 살았고 내가 살았던 80년대는 눈에 띄는 남녀차별을 크게 느끼지 않고 살았다. 적어도 내가 그랬고 김지영 씨도 그랬다. 남자아이들처럼,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갔고 운이 좋으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돈을 벌고 독립을 이뤘다. 물론 수많은 수치들이 아직도 이 시대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일하는 엄마가 커리어로 인해 자아성장을 이루는 일만큼이나 엄마라는 풀타임 잡을 가진 엄마가 엄마로서 이룰 수 있는 자아성장의 가능성은 엄청나다. 직업을 유지하기로 선택했다면 집에서 풀타임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임무로 100프로 똑같이 따라갈 수 없으며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 엄마들은 둘 다 다 가지려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마음이 죄책감, 상실감 같은 감정들과 뒤엉키다 보면 내가 왜 애는 낳아가지고..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잔인하지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애 키우는 일'이 아니었다면 당장 당신은 세상에 나가 이루고 싶은 어떤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가? 그 일을 위한 실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왔는가? 아이를 낳기 이전에, 아니 결혼을 하기 이전에 가슴 뛰는 일을 가졌었는가? 혹시 그 가슴 뛰는 일이 당신의 아이가 될 수는 없는가? 애 키우는 일이 버겁다면 다른 일은 버겁지 않을까? 반대로 꿈을 이루기 위해 투자하는 노력만큼 애 키우는데 투자해 보았는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 봤는가?
아니면.. 혹시.. 우리 스스로가 엄마라는 그 고귀한 직업의 가치를 스스로 끌어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사회적 제도가 바뀌고 구조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나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요즘 우리가 많이 느끼는 엄마라는 직업이 동반한 자괴감은 절대로 개선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체로 엄마로서 위치에 만족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지금 엄마로서 혹은 엄마이기에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일이 아이를 위한 일이던 혹은 자기 자신의 개발을 위한 일이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집중하며 내가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 누릴 수 있었는데 누릴 수 없는 것들, 하지 않은 일, 하지 못한 일, 그리고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며 불만을 터뜨리고 슬퍼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제도의 개선을 위해 대한민국 엄마들의 고충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법과 제도를 다루는 사람들과 엄마들이 소통하는 일 또한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육아문제로, 혹은 엄마라는 위치가 부담스러워 고통스러운 엄마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할 수 없는 것과 잃어버린 것을 묵상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세요.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세요.
드라마 속 커리어 워먼을 존경하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애쓰는 남편을 존경하세요.
옆집 아이의 천재성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지금 눈 앞에 건강하게 살아가고 잇는 아이의 존재를 사랑해주세요.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원래 힘들었던 일을 안 힘든 일로 해주세요 라는 요구는 말이 안 된다.
엄마라는 위치는 원래 힘든 것이다. 받아들이면 그 속에 재미와 행복이 있다. 안 힘들면서 엄마 노릇을 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을 살짝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