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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ing Tree Feb 09. 2018

엄마, 마음을 그림에 담다 II

왜 그림책인가?

누군가 나에게 '왜 미술치료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꼭 미술치료일 필요는 없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상담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과정에 필요한 소통의 도구는 여러 가지다. 그것은 때로는 언어일 수도 있고, 문학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움직임일 수도 있다. 굳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꼽는다면 아마도 그것이 말을 하기 이전 아이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명료한 언어라는 것, 또한 솔직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지만 굳이 모두가 알아듣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최적의 언어라는 것 등이 있겠다. 이런 면에서 음악과 움직임을 이용한 상담과 비슷하다. 하지만 표현하고 나면 사라지는 다른 소통의 도구들과 달리 그림은 표현을 하고 나면 내 손안에 실질적으로 만져지는 어떠한 결과물로 남아 나의 기억을 안전하게 보관해준다. 이런 점은 글쓰기와 비슷하기도 하다. 결국 나에게 미술치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이다. 더 나아가서는 창조적 과정을 이용한 자기표현이다. 그래서 한국의 미술치료라는 말보다 나는 expressive therapy 혹은 creative process라는 서양의 표현을 선호한다. 

디사나야케라는 인류학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생물학적 필요에 의해, 곧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예술을 해왔다고 설명한다. 동굴 벽에 사냥할 동물들을 그리는 행위부터 태어남과 죽음을 기리는 예술적 의식, 그리고 아픈 사람을 위해 행했던 다양한 형태의 주술들만 살펴보아도 예술은 인간의 삶 속에 깊게 자리 잡아 감정을 표현하고, 삶을 연구하고, 치유와 축복의 과정을 담는 그릇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예술은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많은 사람들만의 특권이 되어버린 것 같고, 예술을 이용한 상담마저도 어쩌면 너무나 사치스러운 행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니 어쩌면 상담 이란 것 자체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아주 특별한 영역에 속해 있는 것 같다.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의 저자 정은혜 작가는 
"목적이 있는 것, 용도가 있는 것,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면 다 쓸모없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 문화에서, 그러한 가치가 없는 것을 기꺼이 하는 행위가 예술이다.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이 같은 예술이 쓸모없는 행위이지만, 통제가 안 되고 예측 불가능한 안티프레질한 삶의 영역에서는 예술이야말로 우리를 불안에도 불구하고 온전케 하는 힘이다 (51쪽)"라고 이야기해준다. 저자는 이런 용도의 예술을 미술관이나 무대에서 감상하는 예술과는 다른 삶의 영역 안에서의 예술, 즉 '생활예술'이라고 구분하고 있는데 예술을 이용한 상담 영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예술이 바로 이렇다.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고 의미를 덧입혀주고 불안을 잡아주는 그런 생활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예술이 시간과 공을 들여 쌓아야 할 기술적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거나 신이 선물한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예술을 즐기고 감상하는 모든 행위 가운데 남겨지는 감정은 자괴감과 질투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한편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단지 특별한 누군가의 재능을 마냥 부러워하지만은 않는다. 그 속에 녹아든 삶의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거나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오버랩되면서 공감하고 위로도 받는다. 감상하는 것,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림 도구를 집어 들고 (그것이 연필이나 붓이거나 혹은 흙이나 꽃이든 간에) 나의 자국을 남기는 모든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술치료가 가능한 (가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효과적이고 이롭다) 이유다. 

시카고 아동 인권 보호소에서 아동 성폭행 피해자들과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작업은 TRAUMA NARRATIVE였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 트라우마 나래티브는 자신이 겪은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실대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담자가 안전함을 느끼는 것이다.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극도의 외상 후 스트레스를 느끼는 내담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이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부정적인 감정에 대비할 수 있는 많은 훈련을 한다. 최대한 안전한 방법으로 아주 조금씩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내담자를 천천히 인도하는 것은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PTSD)을 심하게 겪는 내담자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목적이 될 수 있으되 결코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사건을 돌아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PTSD 증상이 심한 내담자들이 있다. 특히나 트라우마의 충격으로 인해 verbal declarative memory (어휘 서술성 기억) 기능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트라우마가 기억을 관장하는 기관 중 하나인 hippocampus (해마라고 물리는 우리 뇌 중 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영향을 받은 아이들은 말로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주로 이런 내담자들과 상담을 많이 했는데 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이 말로는 서술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있었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묘사하지는 못해도 사건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가해자의 모습이나 자신의 처지를 여러 가지 상징을 사용하여 그려낼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내담자들이 산발적으로 표현한 상징들을 가지고 그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게 하는 작업을 많이 하였는데 그 과정이 아픈 기억을 직면하지 않고 아픔을 풀어내는 아주 안전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트라우마 나래티브가 가진 속내이기도 하다. 

내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진행했던 작업은 이 이야기를 책이라는 포맷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책이 가진 구조적 장점은 내가 이야기를 직면할 수 있을 때 열고, 이야기가 나를 힘들게 할 때 덮어둘 수 있다는 안전성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두고, 용기가 있을 때 꺼내보고, 머물러 보고, 힘이 들 때는 덮어서 그 안에 잘 보관해 둘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조를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모든 결정권이 이야기의 주인인 내담자에게 있다. 또 한 가지 장점은 이야기를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토는 언제나 상처이지만 이야기의 안에는 상처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해결과 치유의 과정이 담겨있고 때로는 공포가 또 때로는 유머와 재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완벽하게 결말이 나지 않고 이야기가 끝나버리기도 한다. 내담자들의 이야기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자신의 상처와 회복의 과정을 매우 진실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들은 언제나 투비 컨티뉴드 (to be continued)라는 오픈 결말을 동반하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결국 정해지지 않은 결말로 끝나버리는 이야기책의 저자는 언제든 이 이야기의 미래를 자신이 창조해 낼 수 있다는 희망과 힘을 확인하며 상담을 마치곤 한다. 

이야기를 만들고 표현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잡지에서 이미지들을 빌려다 콜라주 기법을 이용하기도 하고, 내담자의 손으로 그린 캐릭터들을 복사해서 각 페이지마다 종이 인형처럼 붙여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라이프 스케일로 자기 자신을 그린 후에 몸의 부분 부분마다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가져와 리폼을 하기도 한다. 페이지마다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기차와 괴물만 반복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추상적인 페인팅만 이어지고 가끔 여기저기 단어들만 등장하기도 한다. 정말 여러 가지 버전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내담자의 심리상태와, 인지능력, 소근육 발달 정도, 감각에 대한 반응, 나이, 환경, 좋아하는 소재와 주재, 재료 등 정말 많은 것을 고려해 개개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면 함께 감상을 했다. 어떤 페이지에서 말없이 머물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에선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고 또 어느 장면에선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부모님과 결과물을 나눌 때면 어김없이 공감의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상처를 이겨내려는 몸부림의 산물인 그림책이 아이를 걱정했던 부모님들에게 아이의 강인함을 깨닫게 하고 아이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소통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그저 대화로만 해결하기엔 너무나 큰일이기에 그림과 책이라는 요소가 도전과 안전함 사이를 적절하게 오가며 튼튼한 바운더리가 되어주었다. 

결국 그림책으로 상처를 다루는 과정의 장점들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1. 은유와 상징을 통해 상처를 직면하지 않고도 그것을 표현하고 다루는 일이 가능하다. 
2. 자신의 아픔이나 상처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것들을 객관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어린아이들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곤 한다. 
3. 책이 가진 구조적 장점들(열고, 머무르고, 덮어두는 것)이 안전성을 제공한다. 
4. 완전한 회복을 경험하지 못해도 결말을 편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희망을 갖게 한다. 
5. 다른 사람에게(특히 가족, 부모나 자식) 나를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는 좋은 도구가 된다. 
6.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각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7. 회복과 치유의 주체자가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도구가 되면서 재밌기까지 한 그림책이 아이들에겐 놀이인 반면 어른들에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중독 센터에서 엄마들과 일하며 처음 그림책 프로젝트를 제시했을 때 그러지 않아도 세상에서 막 굴러봤던 엄마들의 리액션은 꽤 거칠었다. '왓더꽥'이나 '오마이 꽥낑 신이시여' 같은 감탄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너 지금 나보고 그림을 그리라고? 글을 쓰라고? 책을 만들라고? '감히 미치지 않고서야 어디 그런 요구를...'라고 하는 듯한 무서운 눈빛들, 혹은 대체 그림책이 중독이랑 뭔 상관이람 하는듯한 무관심한 눈빛들을 대하면서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킬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들 중 많은 엄마들이 어렸을 때 그림책을 접해본 경험이 없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본 경험조차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그림책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같이 읽고 돌려 읽고 크게 소리 내어 읽고 반복해서 읽고 베끼고 변형시키고 하는 작업들을 반복했다. 점점 좋아하는 스토리가 생기고 선호하는 그림 스타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엄마들은 자신들의 기질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아이들에 기질도 궁금해하였다. 그림책은 엄마들에게 자신들 내면의 어린아이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너희들의 엄마가 어떤 그림책을 읽어주길 원하니?" 우리는 이 질문을 토대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썼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배워본 적 없기에 누구보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방어가 심했던 그들이 용기를 내어 흰 도화지에 자국을 남겼을 때 어느 누구도 서로의 자국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색깔의 어떤 모양이던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응원했고 기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들만의 그림책을 어떤 이는 자신의 엄마에게 혹은 자식들에게 선물했다. 이 경험이 그들의 중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수치로 평가할 수는 없다. 중독은 아주 복잡하고 유기적인 도움이 필요한 병이다. 하지만 나는 그림책 만들기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집중하고 엄마라는 정체성에 집중하는 그녀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이 겪었던 결핍과 수치심을 지금 자신의 아이에게는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들었다. 그림책을 그리며 작더라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어린 시절 기억 한 조각을 끌어올려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반짝임을 보았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은 삶에서 그림책의 완성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는지 확인했다. 더 잘 그리고 싶은 부분은 나에게 도움을 청했고 내가 방법을 가르쳐주면 아주 작은 것에도 감탄하고 따라 하고 발전시켰다. 만족할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화도 냈지만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그림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나는 그림책을 만드는 창조적 과정이 중독이나 트라우마 환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자의반 타의 반으로 그림책을 많이 접하게 되는 엄마들이 특히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는 도구로 그림책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책 육아나 엄마표 영어라는 목적이 섞여 있는 경우도 많지만 학습이나 교훈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있는 글과 그림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무엇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림책을 들여다보면 사실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이 배워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피카소가 인생을 다 사용하여 아이처럼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어쩌면 엄마도 그만큼 노력해야 아이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 여정에 그림책을 쓰고 그리고 만들어 보는 과정은 뜻밖의 재미와 공감과 용기와 새로운 힘을 선물한다. 나는 자주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보지 않은 아이들의 그림에서 진심을 느끼곤 한다. 미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시각적 언어를 잃게 되는 케이스를 꽤나 많이 봤다. 그림에 수, 우, 미, 양, 가 같은 평가가 더해진다는 것에 격하게 분노한 날들도 있었다. 예술의 힘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갖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어느 순간 비교와 평가에 의해 누구에게나 있는 예술의 힘이 어느 부류에게만 있는 특권처럼 보이게 된 이 현실에서 당당하게 나도 예술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길 바라본다. 엄마들을 먼저 초청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누구보다 그림과 글을 통해 자신을 진실되게 혹은 새롭게 바라보는 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바라봐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엄마, 마음을 그림에 담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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