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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ing Tree Aug 16. 2016

미술치료에서 음악이란..

그들에게 한국 힙합을 들려주었다.

내가 미술치료사로 일하는 곳에서 만나는 청소년 내담자들이 즐겨 듣는 음악은 주로 하드코어 힙합이다. 미술치료를 할 때 유일하게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내 시간은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그들이 선호하는 음악은 대게는 거칠고 선정적인 단어들과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공감이 어려울 때가 많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들이 그런 음악과 메시지를 듣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기관에 온 아이들은 어리게는 14살에 임신을 하고 마약과 술을 접하고 가정과 학교에서 감당이 안되어 보내진 아이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청소년의 거칠고 위험한 행동들은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대변하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힙합을 좋아하지만 메시지가 중요한 나는 너무 오래 그 음악들을 듣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 섣불리, 내가 처음 미국에 이민 왔을 때 한창 유행했던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을 들이댔다가 그들의 비웃음을 산 적도 있다. 한국 청소년들에게 SES나 HOT의 음악을 들이댄 꼴이니... 코웃음 칠 만하다. 


내가 음악을 그들과 나의 관계 형성의 매개체로 사용하기 원했던 만큼, 나는 끊임없이 다양한 음악으로 그들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음악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들만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음악이 가진 또 하나의 큰 장점은 창작 활동에 윤활유가 된다는 것이다. 창작 활동을 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놓으면 하나같이 음악에 집중하는 동시에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과정도 깊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집단 안에는 음악만 흐르고 우리는 침묵한다. 그리고 그  침묵이 엄청난 창작 에너지를 품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 아이들은 떼창을 한다. 주로 반복적인 후렴구나 훅에서 갑자기 아이돌 콘서트에 간 소녀팬들처럼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데, 어떤 애들은 일어서서 트월킹 같은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럴 때 느껴지는 소속감 또한 무시 못한다. 얼마 전에 머리 끄덩이를 부여잡고 싸웠던 애들도 이 시간만큼은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흑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 애들 중에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짙은 흑인 소울을 가지고 노래하는 아이들도 꽤 있어서 때때로 콘서트에 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음악을 얼마큼 들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나는 아이들과 많은 타협을 거쳐야 한다. 아이들이 듣고 싶은 음악만 틀면 집단의 역동이 산으로 갈 때가 많다. 저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달라서 이걸 듣겠다 저걸 듣겠다 말싸움이 벌어지기 쉽다. 대게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신청곡을 받아서 작품 활동 초반에 틀어 주고 분위기에 따라 서서히 내가 선택한 음악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림보다 말이 많아지는 세션에는 음악을 안트는 때도 있다. 


지난주에 나는 요즘 내가 즐겨 듣는 한국 힙합 아티스트의 노래를 몇 개 골라서 회사에 갔다. 모처럼 아이들과 세션 초반에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다가 누군가 갑자기 나에게 "너 Chinese food 잘 만들어?"라고 묻는 게 아닌가. 시카고에서 일할 때, 수도 없이 듣던 질문, "너 중국인이야 아님 일본인이야?" 그리고 회사에 전화해서 "the Chinese lady" 바꿔달라며 날 찾던 클라이언트들이 떠올랐다. 미국의 빈민층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흑인들이거나 멕시코계 스패니쉬 들이다. 아무리 한국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고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이들에게는 아직도 한국은 생소하고 먼 나라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나의 내담자들에게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으로 오해를 받는다. 마침 한국의 힙합 음악을 챙겨갔던 나는 음악으로 한국을 소개했다. 물론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아는 아이들도 있고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한국 힙합이 이 정도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다 같이 한 곡을 골라 들었다. '드뢉 더 비트'가 시작되고 아이들이 인트로에 집중하더니 서서히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Wow, they got some beat!" 


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 말해주고 함께 노래 한곡을 즐기고 다시 세션을 시작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 랩이 뭐라고 귀를 쫑긋 하고 집중하는 아이들이 너무 이뻤다. 그리고 그들이 듣는 음악을 단순히 폭력적이거나 성적이거나 한 저급한 메시지로 치부했던 나의 태도가 반성이 됐다. 나는 어쩌면 음악을 관계 형성과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했지만 그 들이 표현하고 자 했던 이야기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거나 동의할 필요 없다. 그들이 가사조차 이해하지 못해도 한국의 음악에 관심 가져준 것처럼 나 또한 그들의 문화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 공간 안에 함께 머물러 줄 수 있다. 치료 일을 시작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지만 어쩌면 난 나의 내담자들 보다 더 비판적인 태도로 그들의 어떤 부분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나 되돌아보았다.


그날 아이들과 내 몸안에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때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특히 감정을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데 미숙한 이 아이들은 언어로 그 감정들을 표현하기 참 힘들어할 때가 많다. 아니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조차 모르고 지낼 때가 많은 아이들이다. 주로 행동이 먼저 나오거나, 욕이 먼저 나온다.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할 때는 정확한 단어도, 감정에 대한 설명도 필요 없다. 음악 이 그랬던 것처럼 그림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은 진지했다. 나 또한 그들의 그림에 대해 아무 편견 없이 바라봐 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 편견 없이 바라보는 법을 배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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