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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Jul 24. 2021

너를 사랑할 자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자와의 관계 맺음’일 것이다. 타인의 관심과 사랑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잠재력을 끌어내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을 포함한 예술의 주제로 다뤄져 왔지만, 딱 부러지게 개념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그 범주도 매우 넓어서 가족애, 인류애, 우애, 이성애와 같이 교제 대상에 따라 다양하고 표현 방법도 다 다르다. 


  타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숭고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하다. 그러나 때로 연인 사이의 사랑은 대상에 따라 사회적 통념의 잣대로 비난받거나 심지어 제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에 빠져도 되는 두 사람의 적당한 나이 차이가 있을까? 몇 살 이상의 차이부터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우리들이 평가하는 기준의 잣대는 무엇일까?


   영국의 81세 여성과 이집트의 35세 남성의 결혼 이야기가 최근에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남편인 이브라힘은 "어머니보다 몇 십 년이나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며,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며, 사랑에 빠지면 여성의 나이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자신의 사랑관을 밝혔다. 


  상대를 향한 마음에 그 어떤 불순한 의도도 섞이지 않고, 진심이라면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나이 차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한에서의 차이일 것이고, 그 선을 넘어서면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10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부부나 연인의 이야기는 우리가 종종 접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여자가 연상인 경우에는 놀라움을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말이다.


  모든 인간은 다양한 사고와 감정을 지녔으며, 각각의 개별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양성이 억압받고 사회가 정해놓은 준거의 틀 안에서만 행동하고 사고하기를 강요하는 획일적인 사회는 창의력이 발휘될 수 없고, 발전적인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의 뜻에 따라 자신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개개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개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의 추구는 그 사회의 기본질서를 헤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사고와 행동이 사회 질서에 위배된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제지하는 것은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사랑할 자유는 사회적,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주어져야 한다. 나의 자유로운 감정의 발로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 구성원의 허용 수준을 넘어서면 법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인 사이의 사랑은 육체적 매력과 정신적인 감정의 교감이 동시에 충족이 되어야 성립이 된다. 그런데 이 두 조건을 충족하는데에 사회적인 통념으로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 경우 국가와 법의 제제를 받거나 윤리적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나이가 차이나는 연인들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하물며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과 교제의 경우는 아무리 개인적 감정이라고 해도 윤리적 비난과 함께 법의 제재를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시각은 성과 사랑에 관해 보수적인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성년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이 『롤리타』일 것이다.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어도 로리타가 나이 든 남자들이 성적 매력을 느끼는 조숙한 소녀를 일컫는다는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러시아 출신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에서 출발한 ‘로리타 콤플렉스’는 이후 소아성애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당시 일반인들은 역겨운 소설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작가가 근무하던 대학의 학부모들은 혹독한 비난과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가 아무리 도덕적 잣대로 자신의 작품을 보지 말라고 요청한다고 해도 의붓딸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탐하는 소아성애는 부도덕하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미성년자와의 사랑을 다룬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술 작품으로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보다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 더 많이 알려진 이 작품도 부도덕한 사랑으로 비난을 받았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15세의 가난한 프랑스 소녀가 자신보다 12살 연상인 중국인의 정부 역할을 했던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을 떠나며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작가의 경험담이 녹아 들어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15세 소녀의 육체적 사랑, 게다가 매춘까지 소설을 구성하는 서사는 자극적이고 부도덕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보다 사랑과 성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서구에서도 미성년자와의 사랑이나 성관계는 비난받는데 그들보다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사회는 미성년자의 사랑에 대해 왜 더 민감해지는 것일까? 이성 간의 사랑은 나의 주관적 감정의 표현이긴 하지만 교제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 수반되는 감정이다. ‘나’가 아닌 ‘ 타자를 향한 뜨거운 감정은 상대가 존재하는 쌍방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것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성년자의 사랑, 그중에서도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이 상대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하는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석연치 않다.


  이성 간의 사랑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인격적인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등한 인격체의 교제가 아닌 법적으로 미성숙한 대상과의 사랑이 금기시되며 비난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 간의 사랑은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이기주의에 의한 지배와 복종의 관계 맺기는 아니다. 자신의 열정적인 사랑의 대상인 상대를 향한 존중과 헌신의 감정이 사랑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인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미성년자와의 교제 관계가 대등하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다. 불균형적인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미성년자와 성인의 교제에서 미성년자의 자기 결정권은 성인보다 낮을 가능성이 많다. 피동적으로 이끌려야 하는 관계에서 올바른 성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경제적으로 예속된 관계에서의 사랑은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연인 간의 사랑에 대해서 제3자가 논의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의 상대가 미성년자인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사랑의 자유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 사이에서의 감정에만 국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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