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시장통에는 여름이면 빙수를 파는 좌판이 있었다. 커다란 얼음을 파란색 기계에 끼우고 드르륵 드르륵 돌려서 갈아주면 빙수 기계 밑에 놓인 대접으로 갈린 얼음이 꽃가루처럼 쌓인다. 수북하게 쌓인 눈꽃 같은 얼음 입자는 손으로 만지는 순간 사라져버릴 것처럼 얇디얇다. 그 위에 팥 앙금을 무심하게 툭툭 떠서 담고 분유와 미숫가루를 올려주던 옛날 팥빙수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는다. 시장에 따라가면 얻어먹을 수 있는 여름철 최고의 간식은 누가 뭐래도 팥빙수였다. 동생들에게 말하지 말라며 사 주던 빙수의 달짝지근하면서도 입안이 얼얼한 그 맛을 잊지 못해 나는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는 날을 기다리곤 했다.
요즈음은 예전처럼 팥으로만 맛을 낸 전통 빙수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토핑을 올려주는 유명 프랜차이즈 빙수 전문점의 가격은 서민들의 한 끼 평균 식사비보다도 비싸다. 그런데도 SNS에는 모 호텔의 7만 원짜리 빙수를 먹는 인증사진이 경쟁하듯 올라온다.
빙수뿐만이 아니다. 우리들은 먹는 것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고 살아간다. 유명 맛집이라고 입소문이 난 곳은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숟가락을 대기 전에 구도를 잡고 사진찍기에 바쁘다. 음식이 식든 말든 중요한 것은 예쁘게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먹으러 간 것인지 사진을 찍으러 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사진을 찍어서 끊임없이 인증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안간힘은 자존감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빼고 남들은 다하는데 혼자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은 불안감이 끝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보여주고 과시하기에 열광하게 만든다.
외적인 것을 통해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생명력이 짧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면을 살찌우는 것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자긍심은 주체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여름은 보여주기보다는 내면을 채우고 가꾸기에 열중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