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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와 딸 Mar 23. 2020

할머니의 자반 고등어

나는 교복에 생선 냄새가 벤다고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자반 고등어 구이


이미지 출처 : Google


어렸을 땐 집에서 자반 고등어 굽는 게 그렇게나 싫었다. 아빠는 양복에 생선구이 냄새가 벤다고, 나는 교복에 냄새가 벤다고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여전히 시장에서 생선을 사다 구워주셨다. 고등어 구워놓으면 우리 손지딸(손녀딸)이 그렇게 잘 먹는담서. 생선 굽다 생긴 화상자국도 새살이 올라 간지러우면 벅벅 긁으며 웃으셨다.





어머니 빈자리를 채워주신 할머니


홀아비 밑에서 자란 내게 어머니 빈자리를 채워주신 건 할머니였다. 내가 어머니의 빈자리에 맴돌 때, 할머니는 어린 나의 손을 잡고 언제나 바른 길로 이끌어주셨다. 손녀가 울기라도 하는 날엔 그보다 더 마음 아파하시던 할머니였다.


첫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회의가 시작되기 3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지막 팀원까지 발표를 마치고 그제서야 팀원들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가봐야 한다고. 터지는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나보다 더 놀란 팀원들이 인사팀에 뛰어가 조부모상 청원휴가를 신청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할머니를 떠나보냈다.


나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서울로 도망친 뒤, 고시원에서 출퇴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첫 월급으로 사드린 게 고작 겨울내복 뿐이었다. 할머니는 그 내복조차 아껴 입는다고 곱게 접어 옷장에 넣어두고는 일절 입지 않으셨다. 그래서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하늘의 별이 된 할머니가 생선냄새보다 더 짙은 향으로 베어서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 손지딸이 잘 먹잖여


2년 후 퇴근길. 아이스박스에 생선을 담아 파는 트럭을 봤다. 문득 고등어 구이가 먹고싶어졌는데 굽기가 귀찮아서 생각을 접었다. 기름도 사방으로 튀고, 후라이팬에도 생선기름이 베어 닦기 힘드니까.


‘아 ....!’


그제서야 깨달았다. 생선 비린내는 굽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냄새가 벤다는 것을. 우리가 싫어하던 그 냄새는 아빠 양복과 내 교복보다 할머니의 옷에 더 많이 베었을거라고. 기름이 사방에 튀어서 닦아야 하고, 어쩌다 팔에도 튀었을 생선기름이 아팠을텐데 , 후라이팬에 눌러붙은 비늘을 닦아내는 게 더 번거로운 일이었을텐데.


그 때 나는 왜 그렇게 할머니에게 고등어 구이를 하지 말라고 짜증을 내었을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후라이팬 모양을 따라 남은 화상자국이 다시는 남지 않도록 내가 구워드릴 수 있을텐데. 미처 작별인사를 드리지 못한 할머니를 부둥켜안고서 엉엉 울며 나를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싶다.


"괜찮여, 우리 손지딸(손녀딸)이 잘 먹잖여 !”


하고 웃으실 할머니 품에 안겨서 정말 맛있다고 몇 번이고 말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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