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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곰 Jul 24. 2016

2. 조직 문화의 차이

호주에서 나는 내 상사와 매일 싸웠다



나는 호주에서 랩티스라고 하는 생선 공장에서 일을 했다. 매일 새벽 밤새 잡은 생선을 꽁꽁 얼려 배로 실어 오면, 그걸 해동하고 종류별로 크기별로 분류하는 일을 했다. 한국과 다르게 생선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그냥 운반만 해도 힘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생선이 아니라 고기(肉) 같았다. 더군다나 생선의 신선도를 위해 냉장고 안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는 몸이 추워서 견딜 수가 없는 그런 곳이었다. 한마디로 힘든 일이었다.



쉬는 날엔 바닷가로 낚시를 하러 다녔다. 하늘이 정말 파랗다.



워홀 비자로는 한 회사에서 최대 6개월 동안 일을 할 수 있었고,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 1년 안에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 평균 3~4개월 정도 일하다가 지역을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난 6개월을 꽉 채워서 일을 했고 힘쓰는 일은 잘했기 때문에 후반에는 자연스럽게 선임 취급을 받아 슈퍼바이저에게 직접 일을 지시받았다. 사실 나는 내 슈퍼바이저와 매우 친했다.



다만, 일을 할 때는 그와 나의 입장이 달랐기에 우린 자주 언성을 높였다.




호주는 우리나라와 임금 체계가 달랐다. 내가 일하던 당시에 정규직은 15불, 캐주얼 잡(비정규직과 비슷)은 17불 정도가 최저 시급이었고 야근 시에 1.5배, 야근 3시간을 초과하면 2배, 주말도 2배였다.(상세한 건 오래된 기억이라 다를 수 있다) 그때 당시 환율이 1달러에 900원 정도였으니 시간당 1만 5천원 정도였는데, 워홀러들은 당연히 캐주얼 잡이었고, 한 번에 많이 벌어서 여행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야근과 주말 수당을 선호했다. 호주 친구들은 야근에 관심이 없었고, 호주인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이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슈퍼바이저에게 호감을 사려했다. 일이 넘치는 날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야근과 주말까지 일을 하면 버는 돈이 꽤 컸다.


슈퍼바이저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평소 일 잘하는 친구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추가 업무가 필요할 때만 퇴근할 때쯤에 일을 더 하고 가라고 말해주곤 했다. 슈퍼바이저에게는 그런 막강한 권력이 있었다. 우리는 일을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최대한 밉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처음엔 나도 밉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순 없었다. 일을 열심히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 있는데, 모르고 그러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되지 않는 수준으로 독려를 할 때가 있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점점 심해지길래 난 항의를 했다. 그 후로도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목소리 높여 다퉜다. 그땐 하고 싶은 걸 다하며 살던 때라 그랬지만,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날 자를 것인가. 아니면 어떤 식으로 보복을 할까. 호주에선 상식이 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몸소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날 자르지 않았다.




어떤 보복도 없었다. 야근이 있을 때마다 날 지정해 줬고, 주말 근무 또한 항상 날 넣어줬다. 오히려 그의 부인이 날 보고 '크레이지 보이'라고 불렀지만(그녀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호주 사람들 중에서도 매우 상식적인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상식이 통하는 직장 상사를 호주에서 만났다.



동네 근처를 자주 걸어 다녔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들어가길 원하는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아무리 한국 조직 문화가 보수적이고 상하 관계가 분명하다고는 해도 상식은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우대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을 더 가르치려 하고, 발전 가능성을 보고 업무를 맡기고.. 아랫사람의 의견을 수용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싸우면 안 된다. 아니, 아예 반대 의견을 내세울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제지를 받곤 했다. 은근히 돌려 말하지만 무얼 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모난 돌은 그냥 모난 돌일 뿐이었다. 난 내 모서리를 깎아내다가 지쳤다. 나중에는 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퇴근길에, 호주에서 다투던 그 슈퍼바이저를 자주 떠올린다. 일하면서 그와 다투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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