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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곰 Aug 22. 2016

4. 일만 열심히 하면 바보 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그 바보였구나


팀 막내다 보니 팀 내 사업에 두서없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전 준비기간 없이 서포트 형식으로 투입되었고,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6주까지 사업 하나를 성공시키기 위해 투입되며, 사업 기간의 절반은 새벽에 마치기 일쑤였고 주말근무 또한 해야 했다.


다른 선배 팀원들은 그렇게 하나의 사업을 마치면 쉬었다가 또 다른 사업 투입 준비를 하면서 계획을 짜고, 다시 다른 사업에 투입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만 나는 그런 것이 없었다. 막내고 일을 배우는 입장인 데다가, 워낙 사업이 많아서 일손 하나가 아쉬운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업이 끝나면 다른 사업에 바로 투입되거나 잠시 쉬었다가 사전 지식 없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힘들었지만 그러한 상황을 공감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팀에 공헌을 하는 것이 내 임무이자 막내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일은 익숙해졌지만 뱃살이 늘고, 어깨와 허리 통증으로 잠을 자기가 어려운 시점에,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주변의 상황이 어려운 친구들과 비교하며 그래도 난 열심히 살고 있다 위로하며 계속 일터로 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힘차게 나아가고 있지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알 수가 없었기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래도 팀장님이 잘하고 있다고 항상 말해주었고, 일이 더 많아지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나의 발전을 위해 지금 수준에서 약간 어려운 일을 미션처럼 던져주는 것이 희한하게도 나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었다.


팀원으로써 불만이 없진 않았지만, 그러한 배려만으로도 배울 것이 충분히 있는, 따를만한 팀장님이라 생각했다.


정신없이 구르고 있는 와중에도 '너를 위해서'라는 팀장의 논리를 나는 믿었다.



그렇게 서포트 형식으로 계속 일하다가 마침내 규모가 작은 사업 하나를 혼자서 맡게 되었고, 규모가 작을 뿐 처리해야 할 일의 양은 다른 사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쉽지 않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나 스스로 진행하는 그 사업이 재미있었고 보람을 느꼈다. 사람 손이 부족하거나 익숙지 못해서 밤을 새우며 일을 해도 처음으로 맡은 내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일을 하고 거의 끝 마칠 때 즈음에 팀장으로부터 복귀 지시를 받았다. 원래 파견 형식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고객사에 상주하며 일을 하는데, 아직 마무리가 남았기 때문에 복귀를 바로 할 수 없었지만 웬일인지 강하게 주장하는 복귀 지시를 어길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무리를 하며 나올 수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만류를 뒤로 하고 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곧바로 다른 사업에 서포트로 투입되었다.



심지어 나 말고도 사업을 마치고 쉬고 있는 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업을 진행 중인 나를 다른 사업에 투입시킬 거라고 예상치 못했기에 충격이 컸다.


이미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연달아 한 달 정도 고객사에서 일을 하며 고스란히 이어받은 스트레스가 몸을 짓눌렀다. 그때부터 주말을 포함하여 월요일까지 그 사업을 서포트하였고, 당연한 것처럼 월요일까지 서포트를 마치고 다시 원래 내 사업에 재투입되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몸이 아프고, 스트레스를 받고, 야근에 주말 근무를 하는 건 둘째 치고, 평소 내가 믿었던 팀장님의 '너의 미래를 위해서' 나를 굴린다는 그 논리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욕은 욕대로 먹고, 내가 믿었던 팀장님 말의 진위까지 의심이 되는 상황에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결국 저녁에 전화를 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드리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꼭 하나만큼은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여유 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혼자 사업을 진행 중인 나를 무리해서 이사업 저사업 두서없이 굴리는 이유가, 그래도 서포트가 익숙한 내가 다른 선배들보다 손이 빠르고 믿음직하기 때문이리라..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처사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전화를 하자마자 이미 팀장님은 화가 나 계신 듯했다. 내가 이런 일로 전화를 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신 듯했다.


"다른 여유 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었던 저를 무리해서 다른 사업에 투입시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리 나부랭이가 해야 할 일을 그럼 과장을 시킬까?

넌 조직의 논리를 모른다. 그런 직원을 팀원으로 계속 받아들일 수 없다



순간 모멸감이 내 뺨을 때렸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팀장님은 모를 거라 생각하면서도 가끔 이해해 주는 듯한 말을 할 때마다 난 애써 믿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바보였구나..


그런 말을 듣고서도 난 회사를 나가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에겐 나를 아끼고 기대를 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상황을 깨닫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서럽게 울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길을 가다가 토를 했다. 배가 하루 종일 아픈데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퇴사를 되뇌며 출근하는 길은 지옥 같았다.


나는 미련하게 이런 스트레스를 내 주변에 풀었다. 가족에게, 여자 친구에게, 친구들에게 툭하면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내 스트레스를 나누려고 했다. 당연히 트러블이 많았고 내 생활은 점점 황폐해져 갔다.


난 지쳐 버렸다. 하지만 아무런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더 이상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일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일을 겪게 되면서 퇴사는 하지 않게 되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상황은 해결해야만 한다.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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