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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곰 Aug 25. 2016

6. 퇴사를 알렸을 때 - 부모님 편

일단 소리를 지르신다.

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내가 자신의 아들이란 건 생각도 안 하시고 내 고집불통을 항상 마땅찮게 여기셨다. 언제나 나를 근처에 두고 싶어 하는 아버지 성정과 정 반대로 나는 국내와 해외를 나돌아 다녔다. 아들에게 언제나 애정이 있으셨지만 항상 꼴통을 바라보듯 하는 눈빛이 날 향했었는데, 내가 대기업에 입사를 한 뒤로는 그 눈빛은 아주 오래전 일처럼 기억도 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내 취직을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부모님과의 소통이 어색해 언제나, 무엇이든 홀로 결정을 한 뒤 통보를 했었는데, 퇴사는 정말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장기간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했는데 마침 또 무슨 선반을 조립하고 계신다 했다. 선반이면 기다란 쇠막대기를 끼워 맞추는 것 아닌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세 시간 뒤에 다시 전화를 했다. 낮잠을 즐기고 계신다기에 어머니께 잽싸게 '퇴사를 팀장님께 알렸다'라고 말했다. 소리를 지르셨다. 설마설마하다가 진짜가 되니 화나셨나 보다. 아버지도 소리를 빽 지르셨다. 개 xx, 소 xx, 멀리서 우렁차게 지르셨다. 본인이 나와 어떤 관계인지 까먹으신 듯했다.


아 옛날에 참 많이 보던 광경인데 오랜만에 보니 낯설고 죄송했다. 그래도 그땐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보다 회사에 대한 징그러움이 더 컸다.


'잘했다. 어려운 일 하나 끝냈다.'라고 그땐 생각했다.



전화를 했을 뿐인데, 녹초가 되어 침대에 누운 채로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내가 뭐하는 짓인가, 부모님께 불효했다 싶으면서도 다시 회사를 떠올리면 잘했다는 말이 절로 입 밖을 튀어나왔다.


그 뒤로도 부모님께 여러 번 전화가 왔지만 나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고, 주말 내내 칩거하며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날따라 내리꽂는 장대비의 과격한 소리를 들으면서 내 머릿속 부스러기가 함께 떨어져 나가는 상상을 했다. 빗소리가 어지러운 내 맘을 잠시 달래주었다.


이틀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수소문해 다녀왔다고 한다. 비를 쫄딱 맞아가며 다녀왔다고 하시기에 그날따라 거칠게 내린 장대비가 떠올랐다. 내가 퇴사하면 그 뒤에 어떻게 될 거고 나랑 이 회사는 궁합이 어떻고.. 나름 흥미 있게 들었지만 내가 부모님께 무슨 짓을 한 건가.. 하는 생각에 상황이 나름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너무 못나게 보였다.


당연히 아버지는 안 가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버지도 다녀오셨더라



아버지는 힘들 때 미신에 의지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시는데.. 어지간히 걱정되셨나 보다.


나는 부모님의 그런 모습에 죄송하면서도 뭔가 위로가 되었다. 희한하지만 정말 많이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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