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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Dec 14. 2023

“내 딸들,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새벽에 잠이 깨서 브런치를 읽다가..


새벽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가 문득 브런치를 보았다. 요즘 가끔 일찍 깨면 ‘밀리의 서재’ 책이나 브런치를 보다가 다시 잠이 들곤 한다. 나에게 책은 수면제 역할을 한다. <슬픔의 얼굴>이라는 글을 읽는다.   

 

수필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작가는 엄마의 일주기를 앞두고 기억을 더듬어 엄마를 회상하는 글이다. 작가의 엄마는 세상을 떠나기 3년 전까지도 연세가 많이 들었지만 서예와 집필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던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부터인가 차츰 인지기능이 떨어지면서 문자를 보내도 오타가 많았다. 하지만 그 뜻은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던 글이 있었다. 두 단어의 글이다.


“내 딸아”     


직접 뵐 때도 생전 듣지 못했던 “내 딸, 이쁘다”를 하시면 미소를 지으셨다고 한다. 이 글을 보면서 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직 밖은 캄캄한 어둠인데, 혼자서 베개에 눈물을 적셨다. 돌이켜본다.


나는 언제 딸에게 “내 딸, 이쁘다”라는 말을 했을까? 기억에 없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에도 그냥 “왔니~?”라는 인사만 서로 주고받았다. 이번 주에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다.      


“내 딸, 참 이쁘다”     


왜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눈물이 났을까?     

나의 엄마를 떠올리며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었던 엄마에 대한 감정이 솟아 올라왔던 것이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를 동요로 만든 노래도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이 노래를 들으면 슬프기도 했지만 아득한 꿈 속에서의 이상향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동요를 떠올리니 이 새벽에 또 눈물이 난다. 요즘 눈물이 잦다. 이제는 그 감정을 참지 않고 쏟아낸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삭막한 도심 환경이었다.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역시 내가 경험할 수 없었던 꿈만 같은 시간이다. 내가 갈 수 없는 금모래 빛 뜰에서, 또한 들을 수도 없는 갈잎의 노래를 상상하며 꿈꾸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어릴 때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이 노래를 혼자 흥얼대곤 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왠지 알 수 없는 슬픔과 함께 꿈같은 희망도 밀려온다. 우리는 더 이상 강변의 금모래 빛을 보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룰 수 없는 첫사랑을 노래한 것 같아 슬프다. 속으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덧 마음은 가라앉고 마치 엄마와 누나와 함께 강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행복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이 노래가 떠오를 때면 늘, 오래전 세상을 떠난 엄마가 생각난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때 학부모 수업 참관의 날이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항상 꽃무늬가 있는 초록색 비로드 한복을 입고 오셔서 교실 뒤에 서서 수업을 참관하곤 하셨다. 가끔 엄마가 왔는지 뒤를 돌아본다. 그럴 때면 다른 친구의 젊은 엄마와 비교를 하곤 했다. 내가 막내란 사실은 잊어버리고 ‘왜 내 엄마는 친구 엄마처럼 젊고 세련된 양장을 입지 않을까 ‘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내게 똑같은 질문을 매번 묻는다.      


“닌, 수업시간에 다른 애들처럼 손들고 질문을 왜 안하노?” 엄마는 막내아들이 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길 바랐던 것이다.


난 대답한다.     

“다 아는데 왜 무할라꼬 물어보노..?”


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면서 교실 안에서 쌓였던 감정을 홱 토해낸다.


엄마는 남의 속도 모르고,

“아이구 우리 막내, 대단하데이..!”


난 속으로는 ‘뭘 궁금해야 물어보는 둥 하지’하고 픽 웃어버린다.     

 

아직도 그때의 서운함과 아쉬움이 기억에 선명하다. 엄마에게 좀 더 다정스레 얘기할걸. 그랬던 내가 지금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자꾸 질문하라고 요구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때의 나 같은 표정을 하고 내 시선을 외면한다. ‘궁금해야 물어보지’라는 투로.  

   

또 다른 기억도 난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력 사정이 좋지 않고 밤에 예고도 없이 정전이 되었다. 어느 저녁 무렵,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누군가 양초를 찾았는데 빨리 찾지 못했다. 나는 마침 목이 몹시 말라서 상 위에 있는 컵을 들어 물을 벌컥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맛이 순간 이상했다.  


그 순간,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간장이 가득 든 큰 종지를 한 입에 털어 넣었던 것이다. 갑자기 토하지도 못하고 속에서는 불이 났다. 물을 마셔도 소용이 없었다. 그 길로 엄마는 나를 업고 집을 나와서 병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엄마 등 뒤에 붙어서 헐떡대던 내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엄마 등에 업혀있어 포근함을 동시에 느꼈다. 엄마가 나를 살리기 위해 허겁지겁 뛰면서 내는 가쁜 숨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더 많이 마셨으면 나트륨 중독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오래된 기억이라 약간 왜곡될 수 있지만 그때의 긴박한 순간은 아직도 뚜렷하다.  

   

그 포근했던 엄마의 등이 지금 생각난다.

그 엄마가 지금 보고 싶다.


     



누나 생각도 난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생일날 아침마다 항상 내 잠자리 머리맡에 뭔가 놓여 있다. 책이었다. 아니 그건 잡지였다.     


<새 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이 해마다 놓여 있었다. 누나가 준 생일 선물이다. 너무 기뻤다. 그 잡지는 나에게 글에 대한 재미와 함께 꿈도 심어주었다. 연재만화, 시사, 과학, 교육, 연예 등의 내용을 며칠에 걸쳐 잡지를 읽었다. 그림과 활자로 된 모든 게 재미있었다. 별책 부록까지 샅샅이 읽었다. 어린 내 마음에 그 책 속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누나는 당시 집 뜰에 있던 봉선화 꽃잎을 꺾어 풀잎과 함께 짓이겨서 내 손톱 위에 올려놓고 고무줄이나 실로 묶어 주었다. 그리곤 다음날까지 기다리면 매직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튿날, 손톱이 붉게 물든 것을 보고는 즐거워했던 기억도 있다.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친다'라고 나를 꼬드기면서 손톱을 물들였던 것이다. 나에게 여성성을 많이 심어준 누나였다.


엄마와 누나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난다. 지금 누나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래서 누나에게 바로 전화했다. 한 시간 이상을 옛 시절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만약 '내일 전화하지 ‘라고 미루면 결국 하지 못하고 만다. 보고 싶을 때 연락했다. 그때 즐거웠고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하니 마음이 후련하다.


나이가 들면서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쌓아둔 감정 표현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말과 글로 표현해야 상대방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상대가 그 정도는 알아주겠지 ‘라는 기대는 오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야 한다.


누군가 '딸바보 아빠'라고 놀려대도 딸에게도 꼭 전해주고 싶은 말,


“내 딸, 참 이쁜 내 딸들”          




지난 캘리그래피 수업시간에 “엄마 사랑해”라는 글귀를 선생님이 가져왔다. '엄마' 대신에 평소에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을 넣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여보 사랑해

라는 글을 넣고 그람을 그렸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얼마만인가? 그동안 아내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약간은 어색하지만 사랑받는 남편(?)이 되기 위해 과감히 내 마음을 캘리그래피로 표현했다. 자꾸 표현해야 익숙해진다. 아니면 후회할 것 같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면 상대는 모른다. 부부 간이라도 마찬가지다. 아들 딸들도. 처음에는 조금 쑥스럽더라도 말과 글로 표현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적극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 나중에 ‘그때 그랬을걸’이라고 더 이상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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