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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Feb 12. 2024

캘리그래피, 그게 뭐라꼬 - II

아내에게 주는 선물


국립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공연이 열리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 바빌론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당시 공연을 본 파리 시민들의 반응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혹평과 '인간 실존에 대한 부조리 극'이라는 찬사가 함께 나왔다. ‘고도(Godot)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많은 추측과 평론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작가인 베케트 자신도 ’Godot‘가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 오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는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수많은 부조리를 겪으면서도 무엇을 기다리면서 살아갈까. 나는 누구를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사랑했던 시간들일까? 그 마지막 종착역은 죽음일 텐데. 지금 이 순간 나를 살게 하는 “Godot’는 무엇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희곡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끝내 ‘‘Godot’의 의미를 밝히지 않아 약간 허탈해지면서 궁금증이 일어났던 기억이 난다.  ‘고도가 과연 뭘까~’라고 말이다.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처한 각자 삶 속의 상황과 이해도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 무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전 세계 연극무대에서 극찬리에 공연되고 있다. 마침 외국에 계신 브런치 애독자로부터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의 국내상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연극을 보기 위해 예매하려고 인터넷에 들어갔다. 근데, 웬걸. 이미 2개월간 전회, 전석이 매진되었다.

'이렇게 인기가 있구나!‘      


아직 결재를 하지 않는 좌석에 대해 예매 대기를 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 혹시나 취소하거나 결재를 안 하는 좌석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약 대기를 신청했다. 하지만 며칠 후, 대기 예약금이 환불되었다는 문자만 받았다. 오랜만에 주연으로 나오는 신구, 박근형, 박정자 등 원로배우의 묵직한 연기를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대신 유튜브를 통해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연극배우 신구, 구야형이 나온 장면을 보았다.   

   

올해로 여든여덟, 미수를 맞은 나이에 매일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분이 새삼 더 존경스러웠다. 유재석이 미수를 맞은 소감을 물으니 “아직 숨 쉬고 걸어 다닐 수 있으니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싶다”라고 한다. 2년 전, 신구가 나온 연극을 본 관람자 한 분은 “86세가 되신 신구님께서 84세 때보다 더 좋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찼다”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그 연세에도 매년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구나. 대단한 분이다...     


화면에서 웃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귀여운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든다. 유재석과 대화 중에 “지금 일이 중요하고 앞으로 일은 더 중요하지”라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의욕에 찬 말이 기억이 남는다. <꽃보다 할배>라는 배낭여행 프로그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이라고 해서 더욱 놀랐다. 그때 출연진의 평균 나이가 76세라고 하니 세월이 정말 빠르기도 하다. 그렇게 온화한 성품을 보인 신구도 아내가 개인 카메라로 촬영을 잘 못하니까 곧바로 “꺼~!”라고 짜증 내는 모습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안타까운 소식은 작년에 급성심부전증 증세로 인공심장박동기를 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 여든여덟 연세에도 연극 섭외가 오면 건강 때문에 잠시 고민하지만 ‘꼭 하고 싶은 작품’이라면 수락을 한다고 했다.      


참으로 존경할만한 배우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 물었다. “나는 취미가 별로 없어서 다양하게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했는데 일만 하면서 살았죠!” 일에 워낙 몰두하니까 일이 취미고 취미가 일이 된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놓고 가겠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마지막 멘트다.


“나도 젊을 때가 있었죠. 그 순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살았죠. 근데 이제 마지막 고비에 와보니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고맙고, 남의 도움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게 너무 고맙고, 매사가 다 쏘 땡큐..! 그런 걸 느껴요”     


나는 그 나이가 되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저렇게 최선을 다하면서 의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일과 취미가 구분되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일이 아닌 뭔가에 푹 빠져본 적이 있었나?      


생각난다.

바로 지금 하는 이 행동이다.    

 

글쓰기다. 


몇 년이 되지 않았지만 글을 시작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잡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한다. 누가 돈을 준다고 시킨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책을 내어 인세를 받아보겠다는 생각도 없다. 다만 나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성찰하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고 다짐하는 시간이다.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냥 머릿속에서 맴돌다 금방 흩어지고 만다. 결국 내 생각, 감정, 의지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글을 쓰려면 또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게 된다.

책 읽는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도 즐겁다.    

  

그리고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캘리그래피를 그릴 때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그림과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마음을 전하는 글, 힘든 이에게는 위로의 그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주는 메시지들이다. 나쁜 생각이 담긴 글은 당연히 없다. 캘리그래피 그린 결과물을 타인에게 선물로 주면 또한 더 즐겁다. 받는 사람도 역시 기쁠 것이다. 그래서 좋다. 더구나 캘리그래피 속의 글과 그림은 내 생각을 구체화할 뿐만 아니라 그 말과 그림대로 살아가도록 희망과 의지를 나에게 준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지만 글과 그림은 눈으로 보이기 때문인지 마치 땅에 씨앗을 뿌려 삶의 의욕을 향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히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것과 같다.

신기한 일이다.      




지난주, 캘리그래피를 그려 아내에게 선물했다.

60세 생일 선물이었다. 내 마음이 한껏 기뻤다.    

  

작년 가을 즈음, 아내의 60주년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에서 올라오신 장모님과 함께 간단하게 외식을 했다. 지나 보니 뭔가 부족했던 것 같았는데 딸이 엄마만을 위해 파티를 하자고 슬그머니 제안했다. 구정을 넘겨 새해가 오기 전, 늦게라도 기념을 하기 위해 딸들과 사위를 호텔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요즘 누가 환갑 기념식을 하겠냐만은 그래도 가족과 함께 조촐하지만 근사한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아내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지난주에 수업시간에 연습한 ‘생일기념엽서’를 만들기로 했다. 내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싶었다. 값비싼 보석보다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주고 싶었다. 아무리 의미를 담았더라도 아둔하게 달랑 그림만 선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역시 선물 중에 최고는 넉넉하게 돈으로 선물하는 것일 게다. 그건 그것대로 준비해야지. 다시 책상에 앉아 집중해서 캘리그래피를 그리고 있는데 그날따라 아내가 서재로 들어온다. 그림에 정신이 빼앗겨 아내가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뭐 하세요?’ 묻는다.      


‘깜짝 선물’을 하려고 했는데...

할 수 없다. 60회 생일 선물에 대해 설명했다. 아내의 표정이 밝아진다.

나도 기분이 좋다.      


캘리그래피, 2024년 2월 1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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