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생
재롱이가
보이지 않는다
소변 패드에는
피가 이곳저곳에 묻어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소파 구석진 곳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혼자 나올 수 없어
엉거주춤 끼어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꼬리를 건드린다
살짝 움직인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두려웠고 힘들었을까
살아있구나
고맙다
한참을 안고 있으면서 숨을 쉬는 움직임에
재롱아,
살아있어서
감사하다.
그 순간,
나 역시 지금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
몸으로 느낀다.
공원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바람이 빰에 스치며
지나갈 때
아침 햇볕이
내 정수리에 꼿이면서
얼굴과 온몸에 따뜻하게 전해질 때
그 순간,
난 온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감사하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아프고 병이 들어야 그 소중함을 그제야 느낀다.
수술 후,
목욕을 당분간 삼가하라는
의사의 말에
따뜻한 욕탕에서
온몸을 담그면서 그 온기를 느낄 수 없을 때야
그 소중함을 느낀다.
상실과 결핍이 있을 때
그제야
그 존재의 귀중함을 안다.
나무
꽃
물
공기
건강
삶
이 모든 것이
그러하다.
그리움
사랑도
그러하다.
젊음이 지나가고
걸음걸이가 불편해지고
친한 친구의 이름까지 잃어버리고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맛에 둔감하고
냄새를 잘 맡지 못하면서
건강을
그리고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난 후
그제야
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고
귀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간은
왜 이리도
어리석은 것일까
손에 보물을 들고 있으면서도
그 귀함을 모르고
행복을 찾으려고 안달하는 것일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울음을 터트렸을 때
가족들은 웃음꽃을 피웠지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족이 슬퍼할 때
나는 웃으면서 떠나고 싶다.
아니,
가족과 함께
웃으면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재롱이를
그렇게 보내고 싶고
나도 그렇게 가고 싶다
지구별에 여행 와서
잘 놀다가
가족이라는 소중한 선물까지 받고
그 선물마저도
뒤로 남겨두고
다시 내가 왔던 그 별로 돌아가려 한다
무거웠던 삶이
이제야 무엇인지
어슴푸레 느끼는 순간
가벼운 죽음의
시간이
뒷문에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