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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Aug 23. 2024

19살 재롱이를 지켜보면서

2005년 생

재롱이가

보이지 않는다


소변 패드에는

피가 이곳저곳에 묻어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소파 구석진 곳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혼자 나올 수 없어

엉거주춤 끼어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꼬리를 건드린다

살짝 움직인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두려웠고 힘들었을까


살아있구나

고맙다

한참을 안고 있으면서 숨을 쉬는 움직임에


재롱아,

살아있어서

감사하다.


그 순간,

나 역시 지금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

몸으로 느낀다.


공원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바람이 빰에 스치며

지나갈 때


아침 햇볕이

내 정수리에 꼿이면서

얼굴과 온몸에 따뜻하게 전해질 때


그 순간,

난 온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감사하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아프고 병이 들어야 그 소중함을 그제야 느낀다.


수술 후,

목욕을 당분간 삼가하라는

의사의 말에


따뜻한 욕탕에서

온몸을 담그면서 그 온기를 느낄 수 없을 때야

그 소중함을 느낀다.


상실과 결핍이 있을 때

그제야

그 존재의 귀중함을 안다.


나무

공기

건강


이 아름다운 순간 함께 있어 행복합니다. 2024년 8월 22일 작품


이 모든 것이

그러하다.


그리움

사랑도

그러하다.


젊음이 지나가고

걸음걸이가 불편해지고

친한 친구의 이름까지 잃어버리고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맛에 둔감하고

냄새를 잘 맡지 못하면서


건강을

그리고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난 후


그제야

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고

귀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간은

왜 이리도

어리석은 것일까


손에 보물을 들고 있으면서도

그 귀함을 모르고

행복을 찾으려고 안달하는 것일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울음을 터트렸을 때

가족들은 웃음꽃을 피웠지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족이 슬퍼할 때

나는 웃으면서 떠나고 싶다.


아니,

가족과 함께

웃으면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재롱이를

그렇게 보내고 싶고

나도 그렇게 가고 싶다


지구별에 여행 와서

잘 놀다가

가족이라는 소중한 선물까지 받고


그 선물마저도

뒤로 남겨두고

다시 내가 왔던 그 별로 돌아가려 한다


무거웠던 삶이

이제야 무엇인지

어슴푸레 느끼는 순간


가벼운 죽음의

시간이

뒷문에서 기다린다.


2024년 8월 22일 산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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