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호흡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이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는 사실말이다.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냐고? 이런 생각은 운동할 때 가장 많이 든다.
육체에서 일어나는 신진대사 과정을 생각하면 신기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왜 그럴까? 인간의 뇌는 항상 루틴 하게 일어나거나 앞으로도 별 탈 없이 지속되는 것들은 뇌에서 굳이 인식하려고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냥 습관적으로 밥을 먹고 나면 소화가 되어 탄수화물은 포도당으로 분해가 되고 단백질은 근육으로 합성되어 몸이 필요하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모두 쓰고 남은 것은 간, 신장, 대장 및 방광을 거쳐 몸 밖으로 배설이 된다. 그 과정을 상상하면 기적 같은 일이 매일 매 순간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다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어떤 경우에 이런 사실을 느낄 수 있을까? 결핍의 시간이 올 때이다. 몸에 질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때 그제야 그 기적 현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감기만 걸려도 몸에 열이 나고 오한이 오고 식욕이 떨어져서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을 때, 정상적인 체온과 감정을 유지하는 육체의 항상성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아챈다. 하지만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일상을 지날 때면 습관적으로 그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몸이 원하는 이상으로 먹고 마셔 댄다.
이렇게 몸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언제 알 수 있을까? 당연히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다. 아니 일상에서 호흡을 할 수 없을 때가 있을까? 운동할 때이다. 체육관에서 근력 운동을 하느라 레그익스텐션, 레그프레스 등의 기구를 사용할 때, 혹은 물에서 수영할 때 호흡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운동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꾸준하게 계속 일상의 루틴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아마 그게 쉽다면 동네 헬스 클럽장은 벌써 다 망했을 것이다. 헬스장의 수익구조는 보험회사의 그것과 유사하다. 중간에 보험을 해지하는 사람 덕분에, 헬스 사용권을 끊고 중간에 관두는 덕에 그 비즈니스가 돌아간다. 그렇게 삶을 지속적으로 안정되게 이끌어 가기가 만만치 않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면서 다니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전력을 다해 몸을 움직여서 먹이를 잡을 이유가 없어진 지가 오래다. 그나마 농경시대에는 경작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 벼를 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컴퓨터 앞에서 지금의 나처럼 자판을 두들기거나, 회의에 참석하여 머리를 굴리면서 말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몸을 쓸 상황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20만 년 동안 인류가 생존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포맷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진화 속도는 느리고 생활양식은 빛의 속도로 변한다. 이제는 강제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움직이지 않으면 온갖 질병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앞으로 육체의 활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아니다. 더 가속화될 것이 눈이 선하다.
미국을 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체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 눈에 보인다. 그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라서 고도 비만이 되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모두 다 안다. 너무나 잘 안다. 다만 집에 오면 모든 게 귀찮아서 움직이기 싫고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장에 가면 어떨까? 그나마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회의도 가능한 각자의 자리에서 모니터를 통해서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갈수록 몸을 사용하는 시간은 줄고 뇌부위만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그래서 온갖 심리적, 정신적 질병이 생겨난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해법은?
몸을 일부러 움직이는 운동이다.
겨우 해법이란 게 누구나 다 아는 운동이라고?
맞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할 수 없다. 운동은 습관을 들이기 어렵다. 긴 시간의 노력과 훈련이 필요가 때문이다. 특히 수영은 더욱더 그러하다.
매일 습관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소수만이 한다. 매일 운동하는 직장인은 고작 7.7%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매일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누구가 운동을 하긴 한다. 그러다 대부분 온갖 핑계를 대고 중간에 그만둔다. 그러면서도 운동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직장인의 비율은 무려 93%이다. 알고는 있지만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대부분 시간이 없다고 한다. 과연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하지 못할까? 왜 이렇게 운동을 습관으로 만들지 못할까?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그 원인을 알면 해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독자분들께서 학창 시절에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오래전, “공부가 즐거웠어요”,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쓴 장승수처럼 막노동꾼에서 서울대 법대 수석 합격한 인물이 있다. 그런 부류는 극소수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공부가 가장 쉽다’라는 제목은 아마도 출판사에서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뽑은 것일 게다. 그를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어렵다. 당연히 실패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다.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공부가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즐길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이다. 그 지점에서 갈림길이 생긴다. 누구는 어려워서 포기하고 한 편에서는 그 과정에서 작은 것들을 해결하면서 나름대로 기쁨을 얻는다. 그 작은 실패의 쓰라림과 성공 후의 그 기쁨을 경험을 통해 알아차린다. 그렇구나, 그제야 안다. 그 작은 실패에서 포기하지 않고 지속했을 때의 성취감을 맛보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순간이 선택의 갈림길이다.
졸업하고도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공부를 한 사람이 주위에 많은가, 살펴보라. 내 말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자격증을 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느끼는 경험을 말한다. 지적인 학습도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억지로 하게 되고 결국 중도에 포기한다. 운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 운동을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하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이유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여러 운동을 했다. 젊은 시절, 30대는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 40을 지나면서 푸른 초장의 물가로 인도하는 주님을 잠시 멀리하고, 드넓은 초원에 떠오르는 하얀 골프공을 쫓아다녔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정신건강이 중요하다는 시대 흐름에 맞추어, 국선도를 10년 이상 훈련하면서 명상의 즐거움도 느꼈다, 그것이 재미있었냐고? 결코 재미로 하지 않았지만 가끔 그 묘미를 발견하곤 했기는 했다.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으면서 온갖 상념이 떠오르다가 어느 순간, 모든 부유하는 먼지 같은 상념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면 오로지 내 호흡만을 느끼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체험도 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되지는 않았다. 50을 넘으면서 산행과 걷기에 열심을 다했다. 왜 그렇게 지속적으로 할 수 없었을까?
산행도 역시 쉽지는 않다. 숨이 가빠지는 그 순간은 힘들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을 즐기면서 했다. 그것도 60세를 지나면서 관절에 무리가 오면서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내 몸이 따라오지를 못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거기에 맞는 적절한 운동이 있는 것 같다. 산행은 나름 즐거웠지만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운동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평생을 통해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일까? 나이가 더 들어 어떤 상황이 와도 이 운동만은 할 수 있고 더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평생을 해야 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더구나 하고 싶고 즐거움까지 주는 운동이 생겼다. 이제 그것을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고, 평생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동이 끝나고 난 다음의 그 상쾌함을 느낄 수 있기에 더욱더 사랑에 빠진다.
그것은 수영이었다.
일반적으로 평생을 함께 하는 배우자, 가족처럼 아끼는 애완견을 가리켜, 그 단어 앞에 ‘반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내 평생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을 ‘반려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반려운동’은 수영이다. 골프도 나의 ‘반려운동’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글쎄, 나이가 더 들면 어느 순간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에 아쉽게도 평생의 ‘반려운동’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평생의 반려자인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가끔 갈등을 일으키면서 티격태격하고 정을 쌓아 나간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반려운동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 켜켜이 쌓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다.
수영이라는 ‘반려운동’과 밀고 당기면서 쌓아가는 그 갈등과 기쁨 속에서 차츰 즐거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나와 함께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