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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Jul 28. 2023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 - 캘리그래피

첫 수업시간이었다.


첫 시간은 항상 긴장된다. 그것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늘 낯설고 약간 설레기도 한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니 카페 안에 온 것처럼 재즈 피아노 곡이 부드럽게 방 안을 채우고 있다. 일단 마음이 차분해지고 왠지 느낌이 좋았다. 한쪽에서는 수강생들이 모여 품평회를 하는 듯 조금은 소란스럽다. 가까이 가본다.


"어머머~ 너무 예뻐요..!"   


수강생이 약간은 과장된 톤으로 감탄한다.                 


“어쩜 이렇게 잘했어요.? “


선생님 역시 같은 반응이다.


“나도 더 잘하고 싶어요~ ” 나 같은 신입회원이 부러워한다.

“고마워요.. 칭찬해 주셔서..” 그 그림을 그린 수강생이 부끄러운 듯 대답한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은 서로 모여서 노는 듯한 분위기가 좋다.

집 근처,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리는 수업이다. 아침에 들어오면 서로 인사하며 자신이 일주일 동안 그린 작품을 내놓고 즉석 품평회를 한다. 물론 하고 싶은 사람만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올해 2월부터 시작한 <감성수채 캘리그래프> 수업이다.


한 시간 수업이 언제 지나 간 건지 모르게 후딱 지나간다. 벌써 6개월이 흘러 어느새 고급반으로 승급했다. 선생님이 매번 새로운 소재를 가져와 지루할 새가 없다. 오늘은 오랜만에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도 쓴다. 물론 선생님이 먼저 어떻게 그리는지를 설명하면서 시범을 보인다. 미리 액자로 만들어 가져온 그림을 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림과 글씨의 분위기를 익혀야 한다. 선생님이 그리는 동안에 유심히 관찰한다. 연필로 스케치를 하여 밑그림을 그리고 본격적으로 물감을 개여 붓으로 그린다.


얼마만인가?


어린 시절, 당시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 때 <어린이 야외 사생대회>에 참여하여 공원에서 크레옹으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재미있었지만 오래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그림과 멀리 떨어져 살았다. 직접 그리는 것보다 눈으로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 그림을 그린 결과에 대해서만 눈으로 보니 그리는 과정이 상상되지 않아서 그림에 몰입할 수 없었다. 단지 유명하다는 그림을 찾아보면서 조금은 안목이 생겼지만 작가가 그 유화와 수채화를 그리기 위해 어떤 힘든 시간을 통과했는지에 대한 느낌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 직접 자신이 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은 붓끝으로 직접 화폭에 닿으면서 그 감촉을 느낀다. 붓을 놀리면서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내가 직접 하고 있지만 신기하다. 물론 연필 스케치부터 제대로 되지 않아 몇 번을 지우고 다시 그린다. 그리는데 집중하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음영을 넣고 덧칠을 하니 조금 더 지저분해진다. 그래도 끝을 봐야 하기에 글씨를 쓰고 이름을 넣고 낙관으로 마무리한다.  


짧은 시간에 뭔가를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몸 전체에 퍼진다. 글 한편을 '어찌어찌~' 미진하지만 마무리하고 브런치에 발행한 느낌과 비슷하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과정이 긴장되면서도 재미있다.


이런 느낌?
 ..
오랜만이다.!



작은 일이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있다. 캘리그래피는 아름다우면서도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인내와 연습을 통해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그리는 그림과 글씨를 따라 하면서 연습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더 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일전에, 선생님이 다음 시간에 나무젓가락을 준비하라고 했다.

'나무젓가락으로 무엇을 하려고?'


'젓가락으로 어떻게 붓글씨를 쓸까?'


호기심이 생기면서 궁금했다.


수업시간에 젓가락 끝을 뾰족하게 만들라고 하였다.

'젓가락 끝으로 쓴다고?'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는데 젓가락 끝으로 먹을 이용하여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쓴다.


'오호라..?'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군...!'


나도 젓가락 끝은 칼로 다듬어 먹물을 묻혀 그림을 그렸다. 글씨까지 넣었다. 그릴 때의 그 터치감이 색달라 좋았다. 젓자락 끝에서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 '싸각 싸각~~?' 하는 느낌이 좋았다.





사실 처음에는 <일러스트>를 배우려고 했다. 만약 책을 다시 낸다면 책의 내지에 내가 직접 그린 삽화를 넣어 디자인을 풍부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은 센터에서 열리지 않아 대신 캘리그래프를 선택했다. 근데 강의 타이틀이 <감성수채 캘리그래피>이다. 제목도 마음에 들어 즉시 온라인으로 신청하려고 들어가니 마침 빈자리가 있어 바로 수강신청을 하고 결재까지 완료했다.


'아름답다'는 뜻의 'Calli'와 이미지나 글자의 표현기법을 뜻하는 'graphy'의 합성어로,


글자를 예술로 승화시킨 '문자예술'


을 의미한다고 구글에 나와있다. '아름다운 서체'라는 뜻을 가진 캘리그래피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스티브 잡스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스티브는 Reed College에 입학했지만 대학수업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자퇴하고는 같은 대학에서 오픈한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어 애플에서 아름다운 서체를 탄생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캘리그래피> 수업을 통해 애플이라는 이미지를 창조해 낸 것이다.


근데 아름다운 서체에 감성수채까지 더한다고 상상하니 호기심이 더 생겼다. 오래전 예술의 전당에서 서예를 약 3년 이상을 배웠지만 지속적으로 배우 지를 못했다. 물론 붓으로 쓰는 그 시간은 좋았지만 그렇게 흥미를 계속 가질 수가 없었다. 서예 학습방법이 다양하지가 않고 실력이 그렇게 향상되는 느낌도 없었다. 당시 안식년으로 일 년 미국에 갔다 오면서 흐지부지 끝이 났다. 꾸준히 하지 못한 것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글씨와 수채화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고?'


내 마음속에서 다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이 나이에 뭘 새로운 걸 배워?'

'그냥 생긴 대로 살아...!'


나 스스로 타협했다.

'일단 한번 등록해서 배워보고 아니면 관두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예전에 서예 시간에 배운 것과 비슷하게 이번에는 붓이 아니라 붓펜으로 <선긋기> 연습을 한 시간 하고는 끝났다.  지겨운 시간이 흐르는데 옆에 건너편 좌석에서는 물감으로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말 그대로 <감성수채 캘리그래피>였다. 총무로 봉사하는 수강하는 분께 조심스레 물었다. "얼마나 하면 그렇게 잘 그릴 수 있나요"


"금방 이렇게 그릴 수 있어요..!"

"열심히 하신다면..."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과 글씨가 조화롭게 구성된 아름다움이었다.

그렇게 6개월 시간이 흘렀다.


오늘 아침에 캘리 수업시간에 친구가 카톡이 왔다. 수업이 끝나고 근황을 얘기하다가 <캘리그래피> 얘기를 하다가 카톡으로 "오늘의 작품"을 보냈다. 물론 가족 카톡방에도 함께 보낸다.


친구의 반응이 온다.

"와우!"

"놀라버라"

물론 격려하기 위한 멘트이지만 기분이 좋다. 딸들과 함께 사위까지 함께 응원 메시지가 온다.


"Wow..!"

"물고기인가요..? ㅋㅋㅋ"

"오, 책 표지 같아요!! 이뻐요!! ㅎㅎ"

   


요즈음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

최근에 이런 적이 없었다.


요즈음 방학기간이라 연습할 시간도 많다.

누군가는 이 나이에 무얼 또 배우냐고 핀잔을 줄지라도 배우련다.

'왜 배우냐고?'


'재미있으니까..!'


친구들한테 이런 자랑질하면 분명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때는 밥을 거나하게 대접해야 한다. 자랑만 하면 밥도 먹지 못하고 욕만 먹는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마음껏 즐기면서 자랑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지도 않을 테고 설사 '자랑질하네?' 느끼더라도 그냥 웃고 넘어간다.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그렇게 된다. 타인에게는 누구가 관대해진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은퇴한 후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일상을 권태롭게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인생을 재미있게 즐길 겨를도 없이 치열하게 경쟁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유달리 경쟁적인 사회에서 더 심각하게 그 폐해가 나타난다.


어린 학생들이 교실에서부터 그 치열하고 무자비한 경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무한반복되는 야만의 '경쟁의 틀'을 끊어내야 한다. 내가 학교 다녔던 40~50년 전과 교육문제는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킬러문제>를 없앤다고 교육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런 단세포적인 생각이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줄도 모른다. 얘기가 딴 방향으로 샌다. 워낙 답답하니까 나온 말이라 양해 바란다.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다. 가정과 직장에서 '일상의 삶'을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지 않으면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없다. 특히 가정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나 역시 그런 경쟁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매었다. 심지어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목표를 정해 분주하고 바쁘게만 달려왔다. 고요한 가운데 나만의 시간을 자주 보내면서 즐거움을 찾는데 게을리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을 하면서 즐겁게 보낼까'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죽일 것인가' 고민하는 순간, 삶의 주도권을 놓친다. 그 순간부터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일상의 삶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내 삶의 주도권을 놓칠 수는 없다. 세상의 흐름에 넘기는 순간 삶은 지루해지고 행복은 사라진다. 행복과 비슷한 말은 '일상의 재미'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일상의 삶에서 자주 재미를 느껴야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따분함'이라고 했다.

무기력이 학습되듯이 '행복'도 일상의 삶에서 학습이 필요하다.      


학습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재미를 찾기 위해서 하는 취미를 보면 모두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취미 생활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산행, 골프, 수영, 낚시, 테니스 등 어느 하나 노력과 학습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캘리그래피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난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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