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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Dec 09. 2023

네팔 포카라에 가다 - 4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책상에 앉아 그때 그 장소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포카라 여행 순간을 돌이켜보는 이 시간이 나에게 여행에 대한 또 다른 맛을 더 해준다. 여행을 세 번 하는 느낌이다. 첫 번째 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네팔의 카트만두와 포카라 지역을 알기 위해, 미지의 장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터넷을 찾고 남의 여행기를 들여다보면서 이미 마음은 네팔에 가 있다.      


두 번째는 실제 그 장소에 가서 몸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그곳에서의 만년 설산, 바람, 강렬한 태양과 함께 자연이 펼쳐놓은 웅장한 경관을 보면서 감탄한다. 도심에서 네팔 현지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바쁘게 사는 일상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치열함을 다시 느낀다.  

    

세 번째 여행이 여행지에서 돌아와서 이 순간에 하는 시간 여행이다. 내가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내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 귀를 기울이고 그 내면의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처음 네팔 현지 사업가로부터 ‘Ultralight‘  단어를 들었을 때 초경량 거위털 패딩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얼마나 가벼운 거위털이길래 울트라라이트라고 불리나? 자초지종 그 사업가 얘기를 들으니 포카라에서 유명한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것이다. 처음에 귀가 솔깃했다. 오히려 하지 못했던 패러글라이딩 보다 더 흥미진진할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들어본 비행체이기에 두려운 마음은 살짝 가시지 않는다. 남들이 보면 ‘그 나이에 나잇값을 해야지 무슨 젊은이들이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라니..? 아직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말이지.’라고 혀를 찰 수도 있다.     


‘가장으로서 그만하면 잘했어..!’ 오히려 나를 격려하고 싶다. ‘지금 안 하면 나중에 “그때 해 볼걸”’. 후회할게 눈에 선하다. 그래, ‘나잇값?’ 그건 남들의 시선이고 나는 그냥 이 모습을 한 인간 ‘나’이고 싶다.


그때를  다시 생각해 본다. 왜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나의 내면에 억누르고 있었던 ‘저 푸른 하늘을 더 높이 자유로이 날고 싶다’는 조나단의 욕망이 의식의 표면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이 기회마저 놓치면 더 이상의 <갈매기의 꿈>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나의 과거를 돌아본다. 내 삶 속에서 내 의지대로 살아온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과 도덕적 잣대를 대면서 스스로 거기에 맞추어 살아온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특히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거세다. 하지만 이제 그 억압을 멀리하고 나 자신으로,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비숫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을 경구처럼 알고 살아왔다. 간혹 은퇴한 선배를 보면 갑자기 주어진 여유시간에 뭘 하며 지낼지 고민하는 경우를 본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살면 되지 무슨 고민일까 쉽다. 그러나 놀랍게도 60년 이상을 살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현역 때는 남들 따라 산행도 하고 골프도 쳤지만 그리 즐기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평생을 직장 다니면서 먹고 사느라 바쁘게 지내다 보니 정작 자신이 뭘 좋아하고 어떨 때 마음이 평온해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 역시 그랬다.


일상은 늘 지루하다. 은퇴 후는 더 심각할 것이다.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은 오늘과 내일이 별로 다를 바 없다. 누군가 나에게 “작년은 어떻게 보냈어요?”라고 물으면 특별히 해 줄 말이 없다. 그냥 학교에 가서 강의하고 책 읽고 운동하는 일상이기 때문에 기억에서 쉽게 사라진다. 그러나 여행은 다르다. 그것도 익스트림 스포츠라니?     


일단 낯선 곳이다.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많다. 낯선 현지에서 새로운 환경 속에 나를 던진다. 내 몸이 느끼는 반응을 내가 자각하면서 자신과 현지 사람들 그리고 함께 한 친구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사실 이렇게 여행기를 쓰면서 내가 마주했던 그 시간을 다시 반추하여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여행을 통해 예기치 않는 사건과 만남으로 인해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이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여행은 삶의 중요한 이야기들로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간다.


여행 중에는 기쁠 때도 있고 불만족스러울 때도 있다. 여행의 시간이 끝나고 돌아보면 후회되고 부끄러울 때가 있다. 이렇게 여행기를 쓰면서 당시에 느끼지 못한 생각과 감정까지 다시 발견한다. 역시 글쓰기는 성찰의 시간이다.

     

다시 포카라, 그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울트라라이트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두툼한 옷을 겹겹이 입고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도 길게 들었다. 사고가 났을 때 조치해야 될 사항을 듣다가 덜컥 겁이 났다. 지상에서 안내하는 사람은 강조한다. 만약 상공에서 엔진이 고장이 나도 얼마 동안 무동력으로 비행하거나 비상 착륙도 할 수 있으며 긴급착륙용 낙하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비행기가 기상의 급격한 변화로 뒤집어진다면 별달리 뾰족이 생존할 방책은 없다. 엔진 고장이 생기거나 급격한 기류 변화로 비행기가 추락하면 가능한 나무 위로 떨어지라는 허탈한 방법만 있을 뿐이다. 위험이 있다는 모든 사실을 인지했고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문서에 사인을 하란다. 마치 대수술을 앞둔 환자 보호자에게 들이미는 각서와 같다.     


멀리 네팔까지 친구 따라 놀러 왔다가 추락하여 사고라도 나면 개죽음이 되는데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그건 아주 쪽팔리는 일이다. 명색이 공군장교 출신이 아닌가?      

난 전투기 조종사는 아니었지만 전투기가 안전 비행을 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지원하는 장교였다. 활주로에서 굉음을 내면서 이착륙하는 전투기를 얼마나 보아왔던가? 이런 장난감 같은 비행체를 보니 한심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두꺼운 바지를 입고 헬멧을 쓰고 나니 몸이 무겁다. 공군사관후보생 시절의 군용 철모인 방탄 헬멧이 기억에 떠오른다. 갑자기 군인정신이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용기가 난다. 공군사관후보생으로 처음 대전 교욱사령부에 입교하고 신체와 체력검사를 받고 난 후 본격적으로 후보생 훈련을 하기 직전이었다. 전투기 앞에서 잔뜩 긴장하여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지만 약간은 어설퍼 보인다.



항상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다던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는 1944년 7월 31일, 지중해 상공에서 정찰 비행하다가 실종되었다. <갈매기의 꿈> 저자 리처드 바크 역시 공군 중위 조종사 출신이었다. 멋지게 날기를 꿈꾸는 리처드는 조나단 리빙스턴을 통해 자신이 추구했던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비상의 꿈을 꾼다.      


나도 조나단처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삶의 진리를 깨우치고 싶다. 나만의 꿈과 이상을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잠시 불안했던 남의 속도 모르고 조종사가 다가와서 하이파이브를 하잔다. 조종사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뒷좌석에서 자리를 잡는데 다리를 놓을 곳이 없다. 조종석 뒷부분에 겨우 걸쳐 다리를 놓았다. 마치 조종사를 백허그한 것과 같은 모양새다. 그와 한 몸이 된 느낌이다.      


‘그래 어차피 지금부터 조종사와 공동 운명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조종사는 한참 시동을 건다. 오래전 군애서, 겨울에 군용 지프가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쵸크밸브를 열면서 힘들게 엔진을 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엔진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에 어느 스탭이 인증샷을 찍어 준다. 그렇게 시동이 걸리면서 놀랍게도 서서히 움직인다. 이 패러글라이딩도 아닌 범퍼카처럼 생긴 비행체는 계속 ‘털털’ 소리를 내면서 런웨이를 향해 허덕거리며 달린다.



이 작은 장난감 같은 게 제대로 날 수는 있을까?

닐 다이어먼드가 부른 영화 <갈매기의 꿈> 주제곡 ‘BE’를 마음으로 들으며 하늘로 날아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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