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프러스 Feb 26. 2024

9.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하는 이유

어느 아이의 탄생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어


제 친정엄마는 다른 종류의 암 수술 두 번, 인공관절 수술 한 번 총 3번의 큰 수술과 작은 수술 몇 번을 받았습니다. 첫 암수술은 10시간이 넘는 지독히도 힘든 수술이었 그 수술보다 더 고통이었던 관절수술을 마쳤죠. 힘든 고비를 넘기면서도 엄마는 본인의 아픈 몸보다 혹시라도 이렇게 아픈 게 딸들한테 유전될까 봐 걱정하셨어요. 그래서 저희한테 조금만 아파도 병원 가라 하고 저희가 어디 아프다 하면 대재앙이 밀려온 것처럼 성화였죠. 성인이 돼서도 칼에 좀 베인걸로도 난리.. 장염 한 번 걸리면 수술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걱정하셨어요. 제가 그리 갸날프지도 않는데 말이죠. 저는 그게 너무 과잉보호하는 것 같아 싫었습니다.


왜 사람은 뭐든 겪어봐야 알까요. 엄마가 그렇게 자식 걱정하는 마음을 아이를 낳아보니 알겠더라고요. 혹시 내 안 좋은 유전자가 아이한테 가면 어쩌지. 나 때문에 내 아이가 아프면 어쩌지. 조금만 기침을 해도 걱정, 설사만 해도 걱정이 이어지더라고요. 엄마는 큰 병을 앓았으니 걱정이 얼마나 컸겠어요. 좋은 것만 물려줘야 하는데 아프고 힘든 걸 줬을까 봐. 


20년이 넘었지만 처음 엄마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때의 기억과 감정이 생생해요. 공포를 넘어서 세상이 흔들리는 기분이었어요. 이런 기억을 제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아요. 물론 엄마는 더 무너지는 심정이었겠죠. 아직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잘못될까 봐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을까요.


인간이

'지금 순간'을

살아야 하는

이유


암에 걸릴 유전자가 제게 왔는지 안 왔는지는 모릅니다. 엄마에게서 많은 것이 유전 됐겠지만 저와 엄마는 신체적으로 참 많은 것이 다르거든요. 그럼에도 안 해도 될 걱정을 왜 사서 할까 싶으시죠? 


엄마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언니까지 가족들이 크고 작은 병마와 싸우는 것을 지켜보며 자고 그 병으로 결국 세상을 뜨는 걸 보면서 많은 좌절감을 느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참담한 무력감, 아픈 가족을 두고 난 친구들과 맛있는 식사도 하고 회사에서 동료들과 깔깔 웃기도 할 때 밀려오는 죄책감, 병이 악화되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뒤엉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요.


없이 누구네 엄마는 감기 한번 안 걸리는 체질이고 옆집 아저씨는 그렇기 술담배에 찌들어도 건강하기만 한데 우리 가족은 왜 이럴까 하는 1차원적인 생각도 했 적도 있어요.


부모님 모두 큰 병을 앓았기에 제게 그 병이 오진 않을까 두려움도 점점 커졌고요.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요한데 혹시라도 내가 병에 걸리면 어쩌지. 이러다 보니 행복한 일이 생겨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고 '이 행복은 반드시 깨질 텐데 어떤 고통이 찾아올 때 내가 견딜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엄습했죠. 병은 천천히 예고한 뒤에 찾아오지 않잖아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예보에도 없던 천둥, 번개가 치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요.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요. 단 1분 뒤도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기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 때문에 불안에 떨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재앙을 견디지 못할까 걱정하다가 지금 행복한 것도 즐기지 못하면 제 인생에서 행복했던 때가 전혀 없게 되는 거잖아요.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듯 제 행복도 언젠가 끝나고 시린 겨울이 오겠죠. 하지만 지금 저의 봄날이 혹독히 추웠던 겨울을 보내고 맞이한 봄이기에 겨울이 와도 다시 봄이 올 것을 압니다. 벌써 겨울을 걱정하느라 불안에 떨지 말고 제 사랑하는 아이들과 이 순간순간의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8. 직장에서처럼 아이를 비교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