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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스케 Aug 08. 2020

나에게 전하는 마지막 편지, 유서

죽음은 타인과의 헤어짐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작별이기도 하다

“대학 가는 날도 있겠지?” 고등학생 때 틈만 나면 야자실에서 친구들과 이 주제로 얘기했다. 술도 먹을 테고, 클럽도 가볼 테고, 과 CC도 해볼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도 쉬는 시간이 끝날 무렵이 되면, 항상 아련한 한 마디로 얘기가 마무리됐다. “이 순간도 언젠가 추억이 될 거야”.

막상 대학에 가니 상상과는 달랐다. 술도 먹고 클럽도 가봤지만, 과 CC는커녕 여대를 가게 됐다. 대학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말도 거짓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습관은 못 버렸다. 이제는 ‘취업하는 날도 오겠지? 결혼하는 날도 올까?’라는 생각을 이어간다.

그렇게 자꾸자꾸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이 물음에 봉착한다. ‘언젠가 죽는 날도 오겠지’, ‘유서 쓰는 순간도 오겠지.’ 유서를 쓰기 위해 펜을 드는 그 순간, 나는 어떤 얘기로 글을 시작할까. 첫 단어는 무엇일까. 유서를 쓸 때 나는 병을 앓고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노쇠해 죽음을 느끼고 있을까. 죽음이 다가오는 느낌은 어떻게 감지할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질문, 주변에 유서를 줄 사람이 있긴 할까.

유서를 남길 사람이 없다고 할지언정 나는 그래도 유서를 쓸 거다. 수신자는 바로 나. 나에게 쓰는 유서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다. 내게 편지는 헤어짐을 앞두고 상대방에게 차마 얼굴 보고 전하지 못할 진심을 전하는 매개체다. 애인과 헤어질 때도, 동료가 일을 그만둘 때도 편지를 직접 건네며 진심을 전하곤 했다. 굳이 나에게 편지를 왜 쓰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죽음은 타인과의 헤어짐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작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유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몇십 년간 살면서 내 속마음을 외면한 때가 있었을까. 차마 인정하지 못한 내 진심이 있었을까.

별생각이 다 들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순간 한 가지는 꼭 지금의 상상과 일치했으면 한다. 나여서 행복했다고. 나로 태어나 나로 살아서 뿌듯하고 고마웠다고. 그렇게 나한테 말할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숱한 고비도 있었지만, 잘 버텼다고. 더 이상 버티지 않아도 되는 삶이 아쉽지만, 또 다른 시작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이 세상 마지막 나에게 보내는 유서를 쓰고 싶다. 유서를 쓰는 순간도 언젠가 추억이 될 진짜 마지막 순간, 나에게 수고했다고 손 내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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