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마저 꿈과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린 세상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 중 집안 하녀들의 다툼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하녀 둘이 싸우다가 황희에게 와서 하소연했지.
한 하녀가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를 듣던 황희가 말했어.
“네 말이 옳구나.”
그러자 다른 하녀가 자기가 옳다며 주장을 했어.
“네 말도 옳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황희 정승의 부인이 말했지.
“두 사람이 서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데 둘이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사람은 틀려야지요.”
황희가 말했다.
“당신의 말도 옳소”
이처럼 하나의 현상/사건에 대한 생각은
각자의 입장에서 다 다른 법이야.
어느새 부쩍 자라서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보니
불현듯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것과 이 아이가 보여주었던 놀라운 기억들이 소환 되더라구.
첫걸음마를 시작했던 그 감동적이고 잊지 못할 순간과
이내 주저앉았다가 후들거리는 힘없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다시 일어나려던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고 자랑스럽던지.
혹여나 잘못 넘어질까 손도 잡아주고,
더 익숙해지길 바라며 손뼉을 쳐주기도 하고,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되고,
두 걸음이 세 걸음이 되면서 점차 걸음이 달리기가 되기까지...
그 하나하나 성장의 순간들 속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했었지.
(물론 미안하고 고맙게도 아내의 희생과 처가 어르신들이 보살핌 덕분에 지금껏 달려올 수 있었던 셈이니 이 점에서는 정말 한없이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이 있는 고백이기도 해)
과거 나의 일기장과 우리 아이의 첫 입학 소식이랑 어떤 관계길래
이렇게 서론에서 주저리주저리 개인사를 알렸냐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걸 하려든지
처음이라는 단계를 거치게 되지.
첫걸음이란 누구나 경험하는 동일한 패턴이랄까?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몰라.
그냥 챙겨주면 챙겨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과정이 있어.
실수투성이에 되돌아보면 이불 킥하게 될 사건들이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점차 이게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찾아보게 돼.
매뉴얼이라던가 과거의 기록, 책이나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원리와 노하우, 절차를 익히게 되지.
하다 보면... 눈에 익고, 손에 익고, 몸에 익혀져서
신기했던 일들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리고,
'우와'하던 업무들도 '대략'이러면 되는 일 되어버리지.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 알게 된 내용들을 실제로 행동으로 실행하면서 잦은 시행착오와 경험치가 축적되면서 점차 숙달되고 익숙해지게 되면서 그렇게 익숙해지는 거지.
그러다 슬슬 익숙한 걸음의 반복과 이렇다 할 감흥이 없어질 때 즈음에...
우리는 매너리즘을 마주하게 되지.
"이 정도면 충분하지, 문제가 없네, 괜찮으니까"
굳이 바꾸지 않아도, 변화를 주지 않아도 손바닥 보듯 뻔하다는 믿음과
딱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은 익숙함의 편안함이랄까?
일한 만큼만 받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에 덜 일해야겠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지난달 카드 명세서만이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가 돼버리지.
시간이 흘러가는 건지, 내가 흘러가는 건지 긴가민가할 거야.
그걸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위안 삼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 불편한 진실을 외치는 내면의 나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건 부인하지 못할 거야.
이러한 익숙함을 경험하게 될 때,
매너리즘으로 발전할지, 더 진일보하고 나만의 차별성을 가지게 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기로라는 걸 알아야 해.
익숙함에 대처하는 또 다른 행동양식이 있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 나만의 방법,
보다 효과적인 방식을 체계화하면서 노하우를 만들기도 해.
익숙할 때쯤 돼서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지.
"이 정도가 괜찮을 걸까? 이 방법 말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근데 이러한 시도는 대다수의 주변인들에게 환영받지 않아.
'뭣하러 저걸 바꾸려 하는 거야'
'왜 사서 문제를 만들려는 겁니까'
'그거 손댔다간 고생만 해요. 결국 원상태로 돌아간다니까요'
다들 알고 있거든.
무슨 일이든 다시 리뉴얼하고, 뭔가 바꾸려고 하면
예전 첫걸음 때, 실수하고 실패하고 힘들었다는 기억이 나는 거야.
지금에 와서 또 경험하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그냥 지금처럼 흘러가는 게 불편하지 않으니까.
근데 여기서 멈추는 순간이 나의 한계를 규정짓는 거야.
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의 차이는 달라
전자는 딱 그 정도에서 스스로 머무는 것이고,
후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나 외부의 요인으로 멈추는 것이야.
그리고
전자는 후회를 남기는 것이고,
후자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지.
익숙함에서 벗어나라는 게 아니라 뛰어넘으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
이전부터 경험해 온 일 또는 방법을 다 갈아 엎으라는게 아니라
그걸 토대로 더 나은 방법으로 개선시키라는 거야.
'처음부터 다시'가 아니라 해온 것을 자양분 삼아 더 발전하자고.
우리가 흔히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좋은 경험 했다'라고 자조하는 말은 참 무성의한 것 같아.
딴에는 위로의 말이고, 과거로 흘려버리라는 좋은 뜻에서 하는 이야기겠지만...
사실은 꽤 안 좋은 경험이란 걸 당사자는 잘 알잖아.
비싼 수업료라고?
비싼 수업료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었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저쨋든간에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야.
에둘러 좋게 포장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그걸 말로만 수업료라고 자위하는 게 아니라
진짜 수업료로 만들려고 부단히 애써야 해.
안 좋은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안 좋은 걸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게 첫 번째,
안 좋았던 거에서 빨리 멘털 잡고 얼른 정상궤도로 올라서는 것이 두 번째로 중요하다는 거야.
생각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서 수업료가 되게 해야 해.
요 근래 참 힘들었고,
멘털이 많이 망가지기도 하고,
여전히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어.
더 이상 코로나 때문이라는 핑계/구실을 둘러대기보다는
'그래서 어쩔 건데'라는 해답을 찾아다닌다고 잠시 글쓰기가 뜸했어.
모두 어렵고 고난의 시기겠지만...
우리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자.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더 뛰어다니자.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이겨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