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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May 15. 2021

코스모스(칼 세이건, 2006)

시인의 감수성으로 써 내려간 차가운 과학

(재수 없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과목 성적이 평균 이상 혹은 상위권에 속했다. 유일하게 하위권 그것도 거의 전교 꼴찌 수준의 성적을  과목이 '지구과학'이다. 줄여서 '지학'으로 불렀는데,  '쥐약'으로 불렀다. 선생님도   가르치기도 하셨지만(스승의 날에 선생님 흉을 보다니 용서하세요), 지구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지극히 현실성도 없고 상상도  되는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지구 탄생부터 우주의 행성들의 이름들까지, 배우는 내용 족족 '쥐약' '지구와 우주' 대한 나의  호기심을 드로메다로 날려 버렸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칼 세이건, 2006, 사이언스북스)는 나의 '쥐약' 기억과 맞물리면서 쉽게 손에 잡을 수 없는 책이었고, 엄청난 책 두께 또한 읽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추천이 이어졌고, 못 읽으면 베개 용도라도 써야지 하는 심정으로 책을 사서 읽었다.


책은 정말 대단했다. 과학적 엄밀함은 말할 것도 없고, 천문학,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등을 넘나드는 스케일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책이 정말 대단했던 것은 저자에게서 시인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는 점과 '과학을 이렇게 아름다운 문학으로 변모시킬 수 있구나'하는 점에 있었다.

이 책을 요약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솔직히 나의 깜냥을 넘어서는 일이다. 여기에서는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만 정리해 둘 예정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수많은 책 읽기 프로그램이 있다. 아마 검색만 조금 해 보면 코스모스를 독해하는 자료가 엄청나다. 코스모스를 읽고 나면 아마도 더 궁금한 내용이 많아질 것이다. 이때 가장 좋은 유튜브 콘텐츠가 있다. 내가 유일하게 실제 아는 천문학자이며, '과학 책방 갈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명현 박사가 출현하는 '코스모스 깊이 읽기'가 참 좋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ELGcJOfNE-C2gAH-j5uqa6G1b6NVYQGW


지구와 우주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명에 대한 존재를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밝힌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위한 책이 어찌 보면 코스모스인 것이다. 코스모스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이고, 질서는 만물이 서로 연관되고 연결됨으로써 만들어진다. 인간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질서의 일부분이 되었는지 살펴보는 책인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그림이 필요하다. 전지적 시점을 갖지 못하면 딱 그 자리에서 확인되는 것만 볼 수 있다. 코스모스를 이해하는 것은 전지적 시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루 종일 날개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아는 것' 같은 정도 수준으로 우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의 문장이 참 좋았다.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코스모스를 알게 되어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게 된 우리가 대변해야 한단다.


책의 중간중간 과학적 용어와 설명 때문에 중간중간 멈칫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이 문학적이라 참 좋았고 위기의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책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시간 낼 만한 책이다. 책을 덮고나면 지극히 작은 나를 발견하고 겸손해진다.


사족 1.

몇 년 전에 읽고 책 소개를 위해 다시 책을 찾았는데, 없다. 털썩. 그래서 급하게 이북을 구매했는데, 아뿔싸 종이책에 있는 사진자료가 없다. 헉. 혹시 책 사시려는 분이 있다면 꼭 종이책으로 사시길!


사족 2.

다시 책을 보니, 처음 보는 책 같다. 한 번으로 끝낼 책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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