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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Apr 02. 2024

[육아일기] 아프고, 다치고, 자라고

아이가 프리스쿨에서 다쳤다 

봄방학을 앞둔 금요일,

여행 준비를 위해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다민이 프리스쿨에서 전화가 왔다. 일과 시간에 연락이 온 건, 지난해 적응기간을 제외하고 처음 있는 일이라 다소 긴장한 채 전화를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 얼굴이 찢어졌는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으니 와달라’는 이야기였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몸이 벌벌 떨렸다. 나만큼 놀랐겠지만 이미 정신줄을 반쯤 놓아버린 내 앞에서 차마 표도 못 내고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 옆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하필 한인타운까지 나가있던 탓에 전화를 받고도 30분 이상이 걸린 터라, 도착하니 다민이는 한층 진정이 된 상태였다.


병원을 돌고 돈 끝에 다민이가 아빠와 응급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주원이를 픽업하기 위해 돌아 나왔다. 하이웨이를 타고 오면서도 울고, “주원아, 다민이가 다쳐서 지금 병원에 있어” 소식을 전하면서도 울고, 모르긴 몰라도 그날 내가 다민이 보다 더 많이 울었을 거다.




사건의 전말, 그리고 관련인들의 대처는 아쉬웠다

안 그래도 사고 소식을 듣고 ‘평소 얌전하게 노는 다민이가 어쩌다 그렇게 크게 다쳤을까?’ 의아했는데 역시 친구가 던진 버킷에 맞은 거였다. 나중에 목격자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당일까지만 해도 선생님이나 나와 대화를 나눈 친구 엄마도 직접 그 장면을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아이가 본인 잘못도 아닌데 크게 다쳐서 속상한데 방치당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뾰족해졌다.


사고 발생일로부터 열흘 남짓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다민이가 지목한 친구와 다른 목격자들이 지목한 아이가 달랐다. 선생님이 연루된 친구 A, B의 부모에게 알렸지만, 고작 서너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술(?)을 받는 게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심지어 사고가 봄방학 전 마지막 날 발생한 덕분에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며칠 동안은 분하고 억울했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고 우리 아이를 다치게 할 의도를 가지고 한 행위가 아니었다, 사고였다고 해도 이렇게 사과조차 안 한다고?’에서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가 동양인 이민자라 소송 같은 건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건가?’ 그러다 이건 너무 가는 거지 싶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도 아무 응어리 없이 마음이 풀렸다고 할 순 없지만, 방학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지켜볼 수는 있을 만큼은 진정이 된 상태다.




그럼에도 따뜻한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것에 감사하다

Co-op preschool이다 보니 다른 기관들보다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들도 서로 자주 보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여기 다른 가족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은 내가 딱히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나와 우리 가족이 얼마나 따뜻한 커뮤니티의 일원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고 당일, 우리 부부가 차를 몰고 오는 사이, 근처에 계신 아이 친구의 할머니(은퇴한 외과 의사)는 딸(아이 친구의 엄마)의 호출을 받고 와서 다민이 상처를 소독하고 밴드까지 붙여주셨다. 상처가 깨끗해서 잘 꿰매기만 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나를 안심시키고, 굳이 응급실에 가서 아이 고생 시키지 말고 성형외과의한테 바로 가라고도 조언을 해주셨다. 동일 친구의 엄마는 본인 친구를 통해 성형외과의를 찾아주고 병원에 미리 연락을 해줬을 뿐 아니라, 여러 차례 다민이와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다정한 사람이다.


수많은 엄마아빠들이 문자로 다민이의 상처와 수술 경과를 묻고, 다민이의 컨디션과 나의 상태를 염려해 줬다. 몇몇 친구들은 쾌유를 비는 영상 편지를 찍어서 보내줬고, 브라우니를 구워다 준 친구도 있었다. 누구 말마따나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현생에 치여 나 자신도 돌보기 힘든 마당에 타인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행위는 문자 한 통도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이렇게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고 위로하는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벌써 엄마 경력도 만 7년을 향해가는데 여전히 나는 엄마로서의 나 자신이 참 못 미덥다. 특히 아이들이 아프거나 다칠 때마다 난 쿠크다스 같은 나의 멘탈에 절망한다. 다행히 이번에도 엄마보다 훨씬 용감하고 씩씩한 다민이와 든든한 나와 아이들의 보호자 남편 덕분에 우리는 금세 평화와 웃음을 되찾았다. 우리 모두 이번 일로 한 뼘씩 자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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