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정원사 안나 Nov 19. 2023

생각이 많아지는 밤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서울에 상경해서 보금자리를 틀었던 동네에 갔다. 당시 우리집은 전역하는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예정에도 없던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첫 직업이었던 군대에서 20년의 생활을 마무리하며 피끓던 젊음또한 서서히 마무리를 하고 계셨다. 고된 훈련과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패기로 이겨내던 젊은이의 용기와 신체적 우월함은  도로에 매연을 뿜어내는 차들이 가득한 도시에 오자 얇은 종이서류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서울은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매력을 무시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모든 달리고 포획하는 능력을 모두 말살 당한 채 사람들은 활자로 싸웠다. 아빠의 튼튼하던 팔 다리의 근육은 물렁이는 홍시처럼 얇아졌다. 


아버지 옆에는 또한 독박육아와 가난으로 오는 어려움들을 기쁨으로 이겨내던 젊은 어머니가 있었는데 전국 곳곳을 이사다니고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그녀였지만, 군인 가족들의 끈끈한 우애와 사랑으로 역경을 이겨내고도 남을 만큼 그녀에게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했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온이상 이 부부를 굳건히 일어서도록 도와주던 끈끈한 유대감이라는 것은 사라지고 말았다. 낯선환경 속에서 오는 정서적인 고립과 외로움은 40에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해져서 가족을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한지붕 세가족에 나오는 것 처럼 집주인을 포함하여 세 집이 한 주택에 살았다. 주인이 살던 2층에서는 한강이 보일 정도로 강 가까이 집이 위치해 있었는데, 밤이건 낮이건 한강을 끼고 도로를 달리는 차와 지하철로 인해 창문을 열면 항상 거대한 소음이 집안으로 달려들어와서 서둘러 문을 닫아야 했다. 방이 두 개 있고 천장과 벽이 긴 나무로 되어 있는 집 천장에서는 가끔 바쁘게 쥐들의 발소리가 구르듯이 났다. 우리는 서울이 너무 낯설어서 집 안에서조차 조심조심 걸었던 것만 같다.  


그렇게 임시거주지같이 느껴지던 집에서 8살 11살의 아이었던 언니와 나는 티격태격하며 한 이불을 덮고 잠에 들고 함께 학교에 갔다. 학교는 주유소를 지나고, 어른의 걸음으로도 한참을 걸어야 건널 수 있는 고가대로 아래 큰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지나서 손을 잘못 뻗으면 달리는 차에 부딪힐 것 같은 좁은 인도를 겨우 지나서야 나왔다. 매일 8차대로를 달리는 차들 옆을 걸어서 학교에 등교하다보니 나는 언젠가부터 가래를 모아서 되는데로 길가에 뱉는 꼬마아이가 되었다. 엄마는 어린애가 담배피는 어른처럼 싯누런 가래를 끌어 모아서 시멘트 길가 위에 내뱉는 모습에 깜짝 놀라며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곤했다. 그당시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 했지만 나도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언니도 모두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참새가족 같던 우리 가족은 두 세번의 이사 끝에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돈을 벌어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부모님은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그 뒤로도 항상 희생하고 참고 인내하며 삶을 살아오셨다.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젠 조카가 우리가 그곳에 살던 8살의 나이가 되었다. 30년만에 우리는 다시 그때 그 동네였던 한남동을 찾았다. 그 당시는 내가 얼마나 부자들이 있는 동네에 세들어 살고 있는지 몰랐다. 학교가는 길에는 노란색으로 병아리처럼 옷을 맞춰입은 리라초등학교 아이들이 항상 보였고, 우리반에 어떤 친구는 항상 검정색과 흰색으로 맞춰진 예쁜 옷만 입고 왔었다. 어떤 친구는 가끔 집에 전화를 해서는 자기는 자기 방에 있는 전화기로 나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들으면서 '어떻게 저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지'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제는 그 친구의 말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30년이 지나서 다시 찾아온 한남동은 너무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우리의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중국집은 커피숍으로 변했고, 대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를 하던 대학교는 최고급 주택단지가 되었다. 허름하게 보였던 골목들은 핫플과 트렌드의 성지가 되었다.  


무수한 세월을 지나서 그때와 너무 달라진 그곳의 모습을 느끼며 다시 이곳에 돌아온 나는 그때와 얼마나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았다. 단지 키가 120cm 이던 8살 꼬마가 165cm의 성인이 되었다는 것 외에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남동이 내게 인식되었던 이미지의 변신만큼 나도 뭔가 달라지고 뭔가 변했던가? 

참새 가족은 지금 부엉이나 매의 가족 정도로 바뀌었을까? 



새삼스레 10대 20대를 거쳐 지난 오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들, 사랑으로 가득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 나는 과연 어떻게 성장하였을까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한남동이 내게 보여주었던 변신처럼 내 삶에도 변신이 일어날 예정인것일까. 


무엇이,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없는 삶일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을 다 가진다 한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